
현대자동차의 재고자산이 20조원을 넘기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생산 확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증가로 볼 수 있지만 판매로 소화되는 속도가 둔화되면서 완성차 재고 관련 부담은 오히려 확대되는 양상이다. 여기에 재고자산 평가충당금까지 감소하면서 재고의 양과 질이 엇갈리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만드는 속도가 파는 속도 앞질렀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차의 지난해 연결기준 재고자산은 20조6617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말(19조7910억원) 대비 4.4% 증가한 역대 최대 수준이다.
부문별로는 자동차 부문이 18조5644억원으로 전체 재고의 89.8%를 차지했다. 이 중 완성차를 포함하는 '제품' 재고는 11조1797억원으로 불과 1년 만에 2500억원 늘었다.
재고는 최근 수년간 가파르게 불어났다. 2020년 11조3338억원이던 재고자산은 △2021년 11조6456억원 △2022년 14조2912억원 △2023년 17조4003억원 △2024년 19조7910억원으로 매해 계단식으로 늘어났다. 글로벌 생산 확대와 사업 확장이 맞물린 결과다.

현대차는 현재 한국, 미국, 인도, 체코, 튀르키예 등 9개국에 생산 거점을 운영하고 있다. 생산 기반이 확대될수록 완성차와 부품 재고가 함께 늘어나는 구조다. 특히 2024년 가동을 시작한 미국 조지아 전기차 전용 공장(HMGMA)은 초기 가동 단계에서 생산과 판매 간 시차로 재고가 일시적으로 확대되는 구간에 놓여 있다. 실제로 지난해 생산능력 10만대 대비 생산량은 6만5320대 수준에 그쳤다.
이 같은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는 2028년까지 HMGMA 생산능력을 추가로 확대할 계획이며 인도 푸네 공장(연 25만대)과 울산 전기차 전용 공장(연 20만대)도 순차적으로 가동에 들어간다. 생산능력 확장은 중장기적으로 판매 확대 기반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생산과 수요 간 시차에 따라 재고 증가 압력으로 작용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주도 하에 추진 중인 '멀티 파워트레인' 전략 역시 재고 전략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현대차는 내연기관(ICE), 하이브리드(HEV), 전기차(EV)를 병행 생산하며 다양한 소비자 수요 변화에 대응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유의미한 판매 확대 성과도 냈다. 하이브리드 수요 강세를 앞세워 미국 시장에서 3년 연속 최다 판매를 기록한 게 대표적이다.
다만 파워트레인별로 생산 차종과 부품 구성이 달라지는 만큼 관리해야 할 재고 항목도 그만큼 늘어난다. 이 때문에 수요 예측이 빗나갈 경우 특정 파워트레인이나 차종에 재고가 집중될 가능성도 커진다. 멀티 파워트레인 전략으로 판매 측면에서는 시장 대응력을 높였지만 재고 관리 측면에서는 구조적 부담을 함께 키운 셈이다.
회전율 정체 속 충당금 감소…엇갈린 재고 신호
재고 증가의 배경은 일정 부분 설명되지만 재고 관리 효율은 별개 문제다. 현대차 재고자산회전율은 2023년 8.2회에서 2024년 7.5회로 하락한 뒤 지난해에도 7.5회에 머물렀다. 재고 회전 일수로 환산하면 48일이다. 재고가 매년 쌓여가는 속도에 비해 판매로 소화되는 속도는 개선되지 않았다.
재고 보유 기간이 길어질수록 보관비용과 금융비용이 누적되며 이는 원가 부담으로 직결된다. 현대차의 매출원가는 2023년 129조1792억원에서 2024년 139조4820억원, 2025년 152조375억원으로 3년간 17.7%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 증가율(14.5%)을 웃도는 수준이다.
이 같은 흐름에서 재고자산 평가충당금이 감소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평가충당금은 장부가 대비 실제 판매 가능 가격이 낮을 것으로 예상될 때 미리 손실을 반영하는 항목이다. 예컨대 10만원짜리 재고 상품을 8만원에 판매할 수밖에 없다면 차액 2만원을 충당금으로 적립하는 방식이다. 현대차 재고자산 평가충당금은 2024년 말 4344억원에서 2025년 말 3318억원으로 23.6% 줄었다.
통상적으로는 재고가 늘어나면 할인 판매나 가치 하락 가능성에 대비해 평가충당금도 함께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현대차처럼 재고 규모가 역대 최대 수준으로 늘어난 상황에서 평가충당금이 감소했다는 것은 회사가 보유 재고의 순실현가능가치를 전년보다 높게 판단했음을 의미한다. 회계적으로는 재고 가치 훼손 가능성이 완화됐다고 본 것이다. 지금 창고에 쌓인 재고 대부분은 결국 제값을 받고 팔릴 것이라는 자신감이다.
이러한 회계적 판단에는 최근 글로벌 판매 흐름도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하이브리드 라인업의 수요는 견조하게 유지되고 있고 아이오닉 시리즈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안정적인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현대차는 지난 3월 친환경차 판매 호조에 힘입어 1분기 기준 사상 최대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
다만 재고자산 평가충당금 감소를 재고 리스크 완화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평가충당금 총액 기준으로는 감소했지만 항목별 방향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완성차를 포함한 제품 재고 관련 평가충당금은 1210억원에서 1587억원으로 약 31% 늘어난 반면 원재료와 운용리스재고, 기타재고의 평가충당금은 감소했다. 결국 전체 재고자산 평가충당금 감소는 완성차 재고 부담 완화라기보다 비제품 재고 부문의 평가 부담 축소가 더 크게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국가별 시장 상황과 사업 여건 등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재고자산 증가와 평가충당금 감소를 단일한 요인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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