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스피드 레이서' 이승현, "저는 행복한 축구 선수였습니다"(1편)

[포포투=정지훈(병점)]
현재 K리그를 대표하는 ‘스피드 레이서’를 꼽자면 엄원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원조는 따로 있다. 부산 아이파크, 전북 현대, 수원FC에서 맹활약하며 ‘스피드 레이서’라는 별명이 붙었던 이승현이 주인공이다.
이승현은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냈다. ‘축구 천재’ 박주영과 대구반야월초등학교, 청구중학교, 청구고등학교에서 함께 뛰며 최고의 유망주로 평가받았고, 이후 한양대로 진학했다. 이때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돼 2005년에는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 출전했고, 2008년에는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 전 경기에 출전하며 본선 진출에 일조했다. 비록 불의의 부상으로 본선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2009년 허정무 감독에 의해 국가 대표팀에 발탁돼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K리그 무대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2006년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해 K리그 데뷔 시즌부터 36경기에 출전해 7골 3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왕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2010년까지 부산 공격을 이끌었고, 폭발적인 스피드와 저돌적인 돌파를 보여주며 ‘스피드 레이서’라는 별명이 붙었다. 2011년에는 전북 현대로 이적해 데뷔 시즌부터 29경기에서 7골 3도움을 올리며 리그 우승에 기여했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CL) 결승전에서는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K리그 최종 기록은 348경기 49골 19도움. 2016년에는 전북을 떠나 수원FC로 이적해 곧바로 주장 완장을 차기도 했고, 2019시즌까지 수원FC에서 활약하다가 2020시즌 강릉시청에서 한 시즌 더 뛰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분명 이승현은 K리그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하나였고, 국가대표로 A매치 4경기를 치른 한국 축구의 레전드다. 그러나 비교적 조용하게 은퇴를 했고, 코로나19로 인해 팬들에게 인사를 전할 시간도 없었다. 은퇴 후 1년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아직은 ‘선수’가 어울리는 이승현을 뜻밖의 장소에서 만날 수 있었다. IT 회사 QMIT였다. 축구 선수 출신 이상기 대표가 있는 회사로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와 부상 방지를 도와주는 ‘플코’라는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화제가 된 곳이기도 하다.
IT 회사와 축구 선수 이승현의 만남. 뜻밖의 시너지를 만들고 있는 이승현을 만나 은퇴 후의 삶 그리고 축구 선수 이승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승현 인터뷰 일문일답]
-여전히 선수가 익숙하다. 부산, 전북, 수원FC에서 활약한 K리그 스타플레이어고, 국가대표로도 4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현역 은퇴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지냈는가?
2020시즌까지 강릉시청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은퇴했으니 1년 6개월 정도가 지난 것 같다. 은퇴하고 나서는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동안 축구를 오랜 기간했으니 1년 정도는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말을 했고, 실제로 최대한하고 싶은 것을 했다. 공부를 가장 많이 한 것 같다. 사실 축구 선수들이 축구를 빼면 잘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축구와 관련되지 않은 공부를 많이 했고, 축구 이외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생도 배우고, 친분도 쌓았다.
-어떤 것이 제일 하고 싶었나?
솔직하게 말해서 축구와 관련된 일은 잠시 하고 싶지 않았다. 지도자를 하게 되면 선수 시절과 비슷한 패턴의 삶을 살아야 하고,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축구와 관련 없는 공부를 제일 하고 싶었는데, 특히 경제와 부동산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책도 읽으면서 공부를 많이 했다. 평생 읽었던 책보다 지난 1년 동안 읽은 책이 더 많았다. 강의도 들었고, 축구는 가끔 즐기면서 했다.
-잠시 축구와 떨어져 보니, 그래도 축구가 가장 좋지 않은가?
사실 그렇다.(웃음) 쉽지 않더라. 지난 1년 동안 다른 삶을 살아보니 축구를 하면서 돈을 벌었던 것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졌다. 내가 제일 잘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축구였다. 감사하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고, 아직도 팬들의 환호가 떠오른다. 은퇴하고 돌아보니 참 행복한 축구 선수였다.
-연령별 대표를 모두 거치면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선수 생활을 돌아보면 어떤가?
매순간, 매순간이 감사했다. 축구를 통해 모든 것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모든 것이 어려웠다. 축구 선수가 아닌 이승현의 삶을 살아야 한다. 축구가 쉽지는 않지만 가장 잘 할 수 있었고, 정말 감사했다.
-2006년 부산 아이파크에 우선 지명돼 정말 좋은 활약을 펼쳤다. 스피드레이서라 불렸고, 이후 전북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 선수 생활 때 아쉬웠던 순간을 뽑아준다면?
아쉬웠던 순간은 2009년에 심각한 부상을 당했을 때다. 6개월 정도 쉬었다. 그때 올림픽 대표로 경기를 치르고, 공항에서 베어백 감독님께서 ‘너 국가대표까지 갈 수 있다. 몸 관리 잘해라’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그러나 당시 혈기왕성했다. 소속팀 감독님께서 대표팀 갔다 왔으니 쉬어도 된다고 했는데, 의욕이 넘쳐서 뛰겠다고 했다. 상무전으로 기억하는데, 후반 15분 정도를 남겨 놓고 들어가 큰 부상을 당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뛰지 말았어야 했다. 승부욕이 너무 강했다. 결국 올림픽 대표팀 최종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예선은 다 뛰었는데, 부상 여파로 큰 대회에 나가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 트라우마가 있었고, 부상이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를 뛰었던 것 같다.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 뛰지 않았을 것이다. 여유가 없었다. 제가 베테랑이 되고 나서 경험에 빗대어 조언을 많이 했다. 한 경기가 전부는 아니다.

-영광적인 순간은? 개인적으로는 2011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후반에 출전해 추가시간 헤딩 동점골이 기억에 남는다
가장 영광스러웠던 순간이다. 프로 생활을 하면서 2011년에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나갔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몸 상태가 좋았고, 당시 전북에는 이동국, 에닝요 등 최고의 선수들이 있었다. 아쉽게 아시아를 제패하지는 못했지만 결승전에서 극적인 골도 넣어봤고, 한국에서 열린 결승전이었기 때문에 팬들의 응원도 엄청 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때가 전성기였을까?
전성기를 누리기 위해 도약의 시간을 부산에서 보냈고, 전북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많은 경험을 했고, 이후 수원으로 향했다. 전북에서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수원에 와서 바로 주장을 할 수 있었다. 내 축구 인생에서 부산이 10대 시절, 전북이 20대 시절, 수원이 30대 시절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같은 질문이다. 부산, 전북, 수원FC 중에 한 팀만 꼽는다면?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도 꼭 한 팀이라면 전북이다.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가장 몸 상태가 좋았고, 전북에 가서 많은 것을 배웠다. 스피드는 빠르고, 기술도 있었지만 몸싸움을 피하는 선수였고, 안 좋은 습관들이 많았다. 전북에 와서 최강희 감독님께서 많은 것을 고쳐주셨다. 몸싸움을 안 하던 선수였는데, 전북에 와서 고쳐졌다.

-전북에서 레전드인 이동국 선수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김상식, 이동국 선배와 함께 했다. 최고 고참이었는데, 저의 멘토였다.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두 분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이동국 형 같은 경우에는 공격 포지션에서 함께 했다. 가끔은 쓴 소리도 하셨는데, 전혀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어쩔 때는 다독여주기도 하셨다. 인생에 있어서 큰 멘토였다. 그런데 딱 하나 안 가르쳐 주신 것이 있다. 발리 슈팅이다. 동국이형의 트레이드마크다. 따라할 수도 없다. 슈팅 타이밍 같은 것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은퇴 이후에도 인연을 계속 이어갔다. 안부 연락도 주고받았는데, 공도 같이 차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동국 선배님께서 축구 교실을 한다고 이야기를 들었고, 먼저 다가와주셨다. 그래서 그곳에서 레슨 코치로 잠시 일하기도 했다. 후배에게 먼저 다가오기가 쉽지 않은데, 정말 감사했다. 먼저 제안해주셨고, 대우도 좋았다.
-2016년에는 수원FC로 이적해 주장을 맡았다. 수원FC판 닥공의 주역이기도 했는데, K리그 300경기를 달성하기도 했다. 수원FC 시절은?
수원FC와 조덕제 감독님께 정말 감사하다. 감독님께서 많이 믿어주셨기 때문에 좋은 활약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전북에서는 좋은 선수들이 워낙 많아 로테이션이 불가피했다. 수원FC에서는 더 많은 경기를 뛰고 싶었다. 수원에서 300경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수원FC가 현재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데, 기반을 닦았다는 말을 해주셔서 감사하다. 우리가 처음 승격한 뒤 바로 강등됐는데, 승점을 보면 강등당할 점수가 아니었다. 마지막 인천전에서 아쉽게 강등됐는데, 2부로 가서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또한, 수원FC 구단주님께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주장을 했기 때문에 수원시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2020년 강릉시청에서 활약하다가 은퇴를 했다. 비슷한 연령대에 현역으로 뛰는 선수들도 있는데, 은퇴를 선택한 이유는?
2019시즌을 마치고, 은퇴 생각을 했다. 그 해에 경기를 거의 뛰지 못했다. 여러 상황이 있어서 경기를 뛰지 못했는데, 아쉬웠다. 더 뛰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강릉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워보자는 마음으로 향했다. 선배로서 모범이 되고 싶었고, 노하우를 전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15년 동안 프로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나태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강릉에서 훈련을 하며 몸을 사리고, 나태함이 느껴졌다. ‘노장이니까 경기만 잘 뛰면 되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은퇴를 결심했다. 몸 상태가 안 되는 것을 그때 느꼈다. 나태한 것이 아니라 몸 상태가 준비되지 않았었다. 후배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때 은퇴를 결심했다.
-절친한 친구인 박주영은 여전히 현역이다. 자주 연락할 텐데, 옆에서 지켜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나왔다. 몸 관리를 진짜 너무 잘하는 친구다.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지금도 뛰고 있는 주영이, 근호, 민수는 몸 관리를 잘하는 것 같다. 담배 피는 선수도 단 한 명도 없다. 주영이는 어렸을 때부터 몸 관리를 잘했다. 자기 관리의 신이다. 승부욕과 의지가 강한 선수다. 더 뛰었으면 좋겠다.
-K리그 최고의 스피드 레이서. 비슷한 유형의 선수들이 많은데, 후계자를 한 명 지목한다면?
작년과 올해를 보면서 이동준 선수를 유심히 지켜봤다. 깜짝 놀랐다. 빠른데, 돌파력도 있고, 도전적이다. 젊은 에너지가 있다. 무서움이 없는 것 같다. 올해는 엄원상이 잘하는 것 같다. 빠르고, 결정력도 있다. 제가 부산에 있다가 전북에 갔을 때 느낌이다. 원래 가지고 있는 것이 많은 선수가 더 좋은 팀으로 갔을 때 폭발하는 것이 있다. 찬스가 더 많이 오고, 스피드를 살릴 수 있는 패스가 온다. 큰 팀에 갔을 때 잠재력이 폭발할 수도 있고, 기가 죽을 수도 있다. 역량의 차이인데, 엄원상은 정말 잘하고 있다.
-K리그 선수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에는 슈퍼스타 손흥민도 있다. 스피드가 장점인데, 지켜보면서 어땠는가?
정말 놀랐다. 한국 선수가 맞나? 그 정도의 폭발력과 결정력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경이로울 정도다. 토트넘 경기는 다 챙겨봤다. 스피드, 결정력, 볼 터치가 정말 다르다. 잡기 어려운 볼을 쉽게 잡고, 슈팅으로 가져가는 것이 탁월하다. 스피드, 피지컬, 득점력은 이미 아시아를 넘어섰다.
-전북을 최고의 팀으로 꼽았는데, 은퇴를 하면서 은퇴식까지는 아니더라도 팬들과 인사할 수 있는 시간도 없었다. 아쉽지는 않았는가?
개인적인 욕심이다. 전북은 최고의 클럽이다. 제가 바라는 것은 없다. 마음속에 있는 클럽이고, 자부심도 강하다. 전북이 최고가 되는 과정에서 일조를 한 것 같아, 감사하다. (FFT: 만약 팬들과 인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고, 영광이다. 사실 수원FC에서 은퇴식을 해주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코로나도 있었고, 상황이 여유롭지 않았다. 만약 전북과 수원FC가 맞붙는 경기가 있다면 경기장에 가서 팬들에게 인사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주어진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한 축구 선수였다고 생각한다.

포포투의 말: 이승현의 인터뷰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2편에서는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진=QMIT, 한국프로축구연맹, 전북 현대
정지훈 기자 rain7@fourfourtw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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