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진아, 용서는 없어"…임지연의 진정한 '더 글로리'[인터뷰S]

장진리 기자 2023. 3. 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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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글로리'에서 박연진을 연기한 임지연. 제공| 넷플릭스

[스포티비뉴스=장진리 기자] 박연진, 그리고 임지연. 2023년 대한민국을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 이름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은 악녀 박연진을 연기한 임지연은 반성을 모르는 끝없는 악행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연기하며 오히려 거침없이 비상하며 배우로 새로운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더 글로리’ 속 박연진은 임지연에게 첫 악역 도전이다. 임지연은 “대본이 너무 재밌었다. 잘 짜여진 소설을 보는 느낌이었다”라고 김은숙 작가가 만들어 둔 ‘더 글로리’ 속 견고한 세계를 처음 마주한 당시를 회상했다.

임지연은 “연진이 아니었어도, 동은이였어도, 혜정이였어도, 현남이였어도, 아니면 아주 작은 단역이라도, 그 어떤 캐릭터라도 무조건 했을 것 같다”라며 “그간 악역을 제대로 한번 도전해보면 좋겠다,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런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40대~50대 정도에 좀 더 내공이 쌓인 배우가 된다면 악역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막연한 희망이 있었는데 너무 큰 기회를 이렇게 젊은 나이에 하게 됐다”라고 웃었다.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박연진을 연기하며 임지연도 박연진의 감정에 동화됐다. 스스로 ‘왜 이렇게 성질이 나빠졌지’ 고민할 정도로 독한 악역 연기의 후유증도 톡톡히 겪었다.

그는 “하루종일 촬영하면 박연진의 성질머리로 지낸다. 감정신이 몰려 있는 날도 있었다. 이런 걸 찍고 집에 오면 세상 모든 게 짜증 났다”라며 “하루종일 그런 감정으로 있다 보면 미간에 주름도 막 생겨있고, ‘왜 이렇게 화가 나지?’, ‘왜 성질이 안 좋아졌지?’ 생각이 많이 들었다”라며 “화도 많고 소리도 너무 많이 질러서 실제로 예민해졌다. ‘더 글로리’ 현장 스태프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저 다음엔 진짜 착한 것 할 것’이라고도 했다”라고 고백했다.

‘더 글로리’는 임지연이라는 배우의 진가를 세상에 확실하게 알린 작품이다. ‘알아들였으면 끄덕여’ 등 임지연의 대사 하나, 행동 하나가 화제가 됐다. 문동은(송혜교)을 향한 비릿한 미소도, 문동은이 애지중지하는 딸 하예솔의 담임 교사로 부임했다는 사실을 안 후 담배를 무는 떨리는 손가락까지, 임지연이 세심한 준비가 시청자들이 열광한 박연진을 만들었다.

임지연은 담배를 피우는 간단한 장면 하나에서도 계산된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박)연진이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금연하신 분들이 담배를 생각하셨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스태프들이랑 우스갯소리로 하기도 했다. 디테일하게, 맛있게 보이기 위해 이왕 하는 것 고민을 많이 했다. 남편 앞에서 피우는 담배, 혼자 있을 때 피우는 담배 등의 차이를 디테일하게 생각했다”라고 했다.

문동은이 생을 걸고 설계한 복수가 성공하며 ‘더 글로리’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문동은에게 수치스럽게 춤을 추라고 명령하던 박연진은 감옥에 갇혀 기상 예보를 하며 조롱당하는 처지가 된다. 눈은 울고, 입은 웃는 기괴한 박연진의 표정은 수치스러운 춤을 돌려받은 그의 심경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여러 감상을 하게 했다.

임지연은 “연진이한테는 최고의 벌이라고 생각했다. 자기의 저지른 일을 그대로 돌려받는다는 게 제가 생각했을 때는 최고의 벌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 더 최고의 벌을 받지 않았나 생각한다”라며 “감옥 장면을 찍었을 때는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저도 모르게 연진이로서 연진이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었나 보다”라고 고백했다.

이어 “애정하고 있었던 캐릭터라 마지막은 그간 연진이가 악행을 저질렀을 때랑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많이 울고, 많이 무너졌다. 짧은 찰나였지만 대본이 나온 순간부터 몇 달을 준비한 순간이었다. 감독님이 많이 도와주셨고, 살려주셨다. 원한 만큼 나와서 뿌듯하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임지연은 ‘더 글로리’의 인기를 예상하긴 했지만, 박연진을 향한 반응이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차마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이런 사랑을 받은 건 처음이다. 너무 신기하고 해외 팬분들도 좋아해 주신다고 하니 자랑스럽다”라고 얼떨떨해했다.

▲ '더 글로리'에서 박연진을 연기한 임지연. 제공| 넷플릭스

제목처럼 ‘더 글로리’는 임지연에게 훈장처럼 영광스러운 작품이다. 다만 ‘더 글로리’의 흥행이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라,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인생의 가장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성공 공식을 스스로 이뤄냈다는 점에서 ‘더 글로리’로 인한 칭찬과 응원은 자랑스러운 영광이자 두려운 부담감이다.

임지연은 “항상 모든 작품을 열심히 했다. 성장하려고 발버둥 쳤고, ‘언젠가 알아주시겠지’라는 느낌보다는 느리더라도 나만의 길을 가면서 성장해가는 제 모습이 좋아서 지금까지 온 것 같다. 칭찬을 받고 노력의 결과물을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더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이어 “이렇게 많은 칭찬이 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더 글로리’만큼이나 모든 작품을 절실하게 했다. 현장에 가면 아직도 무섭고 못 할까봐 무섭고, 잘 해내고 싶고,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배로 생기는 것 같다”라며 “부딪히고 좌절하더라도 뭔가 해냈을 때의 성취감으로 연기를 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칭찬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더 노력해야겠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크다”라고 힘줘 말했다.

세상 모든 도전에 빛나는 영광만이 따르지는 않는다. 영화 ‘인간중독’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후 임지연에게도 ‘연기력 논란’이라는 아픈 수식어가 있었다. ‘더 글로리’ 속 임지연을 본 일부 시청자들이 “임지연이 이렇게 연기를 잘 했나” 놀란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전 타고난 배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임지연은 “제 주위에 너무 끼가 다분한 친구들이 많았고, 저는 그냥 가진 게 많지 않으니까 노력해야 된다는 생각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하게 어린 나이에 역할에 맡는 마스크를 가졌다는 이유로 좋은 상업 영화에 캐스팅이 됐고, 파격적인 신들이 많아서 화제가 됐고, 주목받으면서 너무 감사하게 일찍 데뷔를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때는 사회 초년생이었고, 경험도 전혀 없고, 연기를 잘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데뷔를 하다 보니까 힘든 부분도 사실 많았다. 하나하나 혼자 더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나가면서 조금씩 성장하자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저는 현장에서 데뷔하고 나서 정말 많이 혼났고, 정말 많이 울기도 했다. 그랬지만 ‘그만해야지’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캐스팅 기회가 많지 않아서 힘든 것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이렇게 젊은데, 나중에 아줌마, 할머니가 돼도 연기할 생각인데’라는 각오로 어떤 작품이든 노력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이러다 보니 저한테 칭찬받는 날도 온다”라고 감격을 전했다.

▲ 임지연. 제공| 넷플릭스

‘더 글로리’는 그렇게 어려웠던 시간을 견디고 버틴 임지연에게 찾아온 진정한 ‘더 글로리’, 영광이다.

임지연은 “모든 배우가 그럴 것 같다. 원하는 작품, 원하는 캐릭터를 만날 기회가 오지 않을 때가 있다. 같은 결의 작품만 들어오는 것 같고, 무기력하고 기회가 오지 않는 것 같고, 무너지는 순간이 분명 있었다. 그것도 기회로 삼았던 것 같다. 그때는 정말 영화를 몇백 편을 혼자 보거나 공연을 많이 보거나 할리우드 배우의 연기가 성숙해져가는 과정들을 보거나 책을 봤다”라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들이 물론 힘들었지만, 너무 도움이 됐다. 앞으로도 분명 그런 순간이 또 찾아올 것 같다. 지금은 연기 칭찬을 받았지만 앞으로 연기력 논란이 또 생길 수도 있다. 그걸 이겨내는 성취감으로 살아가는 게 내가 배우가 되고 이 직업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라고 했다.

임지연은 박연진을 떠나보내며 연진이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요청에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한참을 망설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긴 고민 끝에 뒤늦게서야 온 답은 짧고 강렬했다. 임지연은 박연진의 최후에 “연진아, 용서는 없어. 평생 죗값 치르고 네가 한 일에 대해 후회하고 반성하길 바랄게”라는 따끔한 한 마디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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