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터가 20년간 지켜본 증권사 수장들의 발자취를 돌이켜봅니다.

메리츠증권이 최근 20년 동안 세운 대표이사는 6명뿐이었다. 그중에서도 최희문 현 메리츠금융그룹 부회장 한 사람이 13년 9개월을 채우며 증권업계 역대 최장수 최고경영자 기록을 새로 썼다.
부동산금융이라는 수익 모델을 세운 설계자가 지주로 옮겨간 뒤 그가 남긴 자산을 관리하고 넓히는 일이 후임들의 과제로 넘어온 모습이다.
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05년 이후 메리츠증권 대표를 지낸 인물은 △김한 △김기범 △최희문 △김용범 △장원재 △김종민 여섯 명이다.
최 부회장은 2010년 2월 대표에 올라 2023년 11월까지 165개월 동안 자리를 지켰다. 이 기록은 이전 최장수 사례도 넘어섰다. 13년 동안 교보증권을 이끈 김해준 전 사장의 재임 기간이 153개월이었다. 최 전 부회장은 이보다 1년가량 더 길게 대표직을 유지했다. 퇴임 대표의 평균 재임 기간도 72개월로 20개사 평균인 50개월을 크게 웃돈다.
연임은 네 차례 이어졌다. 2022년 3월 네 번째 연임을 확정할 당시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그가 리테일과 세일즈앤드트레이딩, 투자은행 등 모든 사업부문을 고루 성장시켜 수익을 다각화했다고 평가했다.
앞선 두 사람의 임기는 짧았다. 2004년 1월 대표에 오른 김한 전 사장이 40개월, 뒤를 이은 김기범 전 사장이 33개월을 지냈다. 김기범 전 사장은 이후 대우증권 대표로 자리를 옮겼고 김한 전 사장은 JB금융 회장을 맡았다.
계열 이동도 잦았다. 2011년 1월부터 48개월간 최 전 부회장과 각자대표를 맡았던 김용범 전 사장은 메리츠화재 대표로 이동해 현재 메리츠금융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룹 안에서 증권과 화재, 지주를 오가는 인사가 반복돼 온 셈이다.
계보에는 흡수된 회사도 있다. 2015년 메리츠증권에 합병된 아이엠투자증권은 그 전까지 △차이웨이리 △김윤모 △윤경은 △정회동 △임재택 등이 대표를 지냈다. 대부분 재임 기간이 1~2년에 그쳤고 윤 전 사장은 10개월 만에 현대증권으로 정 전 사장은 12개월 만에 KB투자증권으로 옮겼다.
장기 재임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성과에 따라 보상하는 그룹 특유의 인사 기조가 자리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임기를 정해두고 순환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실적으로 재신임을 묻는 구조가 유지돼서다.
증권 대표 교체는 원 메리츠 통합 이후 지주 중심 경영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메리츠금융은 화재와 증권을 완전자회사로 편입한 뒤 그룹 전체 자산과 부채를 지주에서 통합 관리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이에 최 부회장은 증권 대표에서 지주 그룹운용부문장으로 옮겨 그룹 전체 운용을 총괄하게 됐다.
지금은 투톱이 나눠 맡는다. 2021년 1월 대표에 오른 장원재 사장이 세일즈앤드트레이딩과 리테일을 2024년 7월 합류한 김종민 사장이 기업금융과 관리 부문을 담당한다. 김 사장은 삼성증권을 거쳐 메리츠화재 자산운용실장과 메리츠금융 그룹운용부문장을 지낸 운용 전문가다.
후임 체제에서도 이익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 7883억원, 당기순이익 7663억원을 거뒀다. 올해 상반기에는 영업이익 5013억원, 당기순이익 514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각각 11.8%, 15.9% 증가했다.
부동산금융 경쟁력도 유지되고 있다. 회사에 따르면 지난해 프로젝트금융사업본부의 부동산 PF 자문·주선 실적은 약 2조9000억원으로 내부 목표의 157%에 달했다.
포트폴리오도 넓히는 중이다. 지난해 12월 메리츠제1호스팩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면서 2011년 이후 14년 만에 기업공개 주관에 복귀했다. 부동산 PF와 인수금융에 쏠렸던 수익 기반을 기업금융 전반으로 확장하려는 행보다.
부담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난해 3월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개시로 기업대출 6551억원이 고정이하로 분류됐고 우발부채가 자기자본을 웃도는 108.5%까지 올라섰다. 국내 부동산 PF와 부동산담보대출에 대한 대출확약 신규 취급이 늘어난 영향이다.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최 부회장은 신중하게 결정하되 남과 다르게 한다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부동산금융을 핵심 수익원으로 키웠고 성과를 투명하게 측정하고 보상하는 조직문화를 정착시켰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희문 체제의 가장 큰 성과는 시장이 부동산 PF를 일률적으로 위험하게 바라보던 시기에 선순위 대출을 중심으로 접근해 차별화된 수익모델을 구축한 것"이라며 "아이엠투자증권 합병과 메리츠캐피탈 인수, 상환전환우선주·신종자본증권 발행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본을 확충하면서도 높은 수익성을 유지한 실적이 장기 재임을 뒷받침했다"고 평가했다.
황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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