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배드민턴을 이야기할 때, 이제는 굳이 “세계 최강”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일 필요가 없어 보인다. 안세영이라는 이름 자체가 곧 기준이 됐기 때문이다.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2026년 BWF 월드투어 인도 오픈 여자 단식 결승전은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보여줬다. 상대는 세계랭킹 2위 왕즈이였고, 결과는 2-0 완승이었다. 점수만 놓고 보면 21-13, 21-11. 팽팽함보다는 일방에 가까운 경기였다.

이번 우승이 더 인상적인 이유는 과정에 있다. 안세영은 이번 대회에서 단 한 게임도 내주지 않았다. 32강부터 결승까지, 그 누구도 안세영의 리듬을 끊어내지 못했다. 일본의 오쿠하라 노조미, 대만의 후앙위순, 인도네시아의 푸트리 쿠수마 와르다니, 태국의 랏차녹 인타논까지. 이름만 들어도 쉽지 않은 상대들이었지만, 안세영 앞에서는 모두 비슷한 결말을 맞았다. 짧고, 빠르고, 정확했다.
결승 상대 왕즈이는 이번에도 넘지 못한 벽을 마주했다. 세계랭킹 2위라는 숫자가 무색할 정도로, 두 선수의 간극은 분명했다. 안세영은 왕즈이와의 맞대결에서 통산 18승 4패를 기록 중이고, 결승전에서는 10전 전승이다. 더 무서운 건, 이 숫자가 우연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기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왕즈이가 무너지는 장면은 단순한 실수 때문이 아니다. 안세영이 만들어낸 흐름에 갇혀서 선택지가 사라지는 순간들이 반복된다.

이번 인도 오픈 결승에서도 그랬다. 1게임 초반부터 안세영은 헤어핀과 수비로 왕즈이의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았다. 7-1까지 벌어지는 동안 왕즈이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보였다. 잠시 추격을 허용했지만, 안세영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점수가 좁혀질수록 더 정확해졌다. 2점 차까지 따라붙자, 곧바로 5연속 득점으로 흐름을 끊어버렸다. 이 장면에서 이미 승부는 기울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었다.
2게임은 더 명확했다. 안세영은 수비로 상대 체력을 깎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공격으로 마무리했다. 왕즈이는 계속 뛰어야 했고, 안세영은 그 움직임을 한 발 앞에서 읽고 있었다. 점수는 17-9까지 벌어졌고, 마지막엔 힘의 차이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기술도, 체력도, 집중력도 모두 안세영 쪽이었다.

이쯤 되면 이런 질문이 나온다. “도대체 안세영은 어디까지 가는 걸까.” 지난해 덴마크 오픈부터 시작된 연승 행진은 어느덧 공식전 30연승에 도달했다. 월드투어 6개 대회 연속 우승이라는 기록도 이어지고 있다. 단일 시즌 최다승 타이기록, 단식 최고 승률, 누적 상금 최고액까지 이미 한 번씩은 다 갈아치웠다. 그런데도 새해 첫 두 대회에서 다시 우승이다.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여자 배드민턴계에는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누군가는 “안세영이 있는 한, 다른 선수들은 2등을 놓고 싸운다”고 말한다. 과장처럼 들릴 수 있지만, 지금 흐름만 놓고 보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다. 특히 왕즈이처럼 반복해서 결승에서 막히는 선수라면 그 생각이 더 강할 수밖에 없다. 하태권 해설위원이 말한 것처럼, “왜 하필 이 시대에 선수 생활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하지만 안세영의 강함은 단순히 상대가 못해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가장 큰 차이는 안정감이다. 점수가 앞서도 서두르지 않고, 밀려도 흔들리지 않는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되는 순간이 빠르고, 무엇보다 실수가 적다. 배드민턴이라는 종목에서 이 ‘실수 관리’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안세영은 그걸 가장 잘하는 선수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변화다. 말레이시아 오픈에서는 끌려가다 뒤집는 장면이 많았다면, 인도 오픈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경기를 쥐고 있었다. 위기에서 버티는 단계에서, 이제는 위기를 아예 만들지 않는 단계로 넘어간 느낌이다. 이게 바로 독주 체제의 신호다.

인도 오픈 2연패, 새해 2개 대회 연속 우승. 이 결과는 단순한 트로피 하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여자 배드민턴의 중심이 완전히 안세영에게로 이동했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제 누가 우승하느냐보다, 누가 안세영을 흔들 수 있느냐가 화제가 되는 시대다.
물론 스포츠에는 언제나 변수와 부침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안세영은 ‘컨디션이 좋다’는 말로 설명하기엔 너무 안정적이다. 기술, 체력, 멘탈, 경험까지 모든 요소가 한 지점에 모여 있다. 이 흐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안세영은 이미 한국 배드민턴의 역사 한 페이지를 넘어, 세계 배드민턴의 기준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6년의 시작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다. 그리고 이 시작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여자 배드민턴 팬들은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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