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차 전체에서 전세계 판매 1위 한 의외의 효자 모델
차명 '투싼'은 북미 지역 유명 휴양지에서 이름을 따왔던 '싼타페'처럼 이번에도 애리조나주에 위치한 동명의 휴양도시 '투손'에서 따왔습니다. 외관은 상/하단으로 나뉜 그릴, 원형의 안개등, 헤드램프에서 뻗어나와 뒤쪽으로 올곧게 뻗는 캐릭터 라인 등 앞서 출시된 상위 모델 싼타페와 유사한 느낌을 전달했지만, 선과 면을 깔끔하게 다듬어 우락부락한 육체미를 뽐내던 싼타페보단 한결 차분한 인상이었습니다.
디자인이 단정하니 오히려 더 튼튼해 보이기도 했는데요.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전/후면 범퍼, 넉넉하게 둘러진 플라스틱 가니쉬는 어떤 길도 거침없이 달려줄 것만 같은 든든한 느낌을 줬고, 단순하지만 견고한 디자인의 17인치 알루미늄 휠, 짧은 앞뒤 오버행이 역동적인 분위기를, 여기에 국산 SUV 최초로 듀얼 머플러 팁을 장착해 젊은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만한 스타일리시한 뒷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실내는 좌우로 펼쳐지는 거대한 T자형 레이아웃으로 실제 수치보다 넓어 보이도록 유도했고, 탁 트인 시야와 함께 전륜구동, 모노코크 바디의 이점을 살려 상위 모델 못지않은 쾌적한 공간감을 제공했습니다.
시선을 잡아 끄는 거대한 V자형 패널 위에 각종 장비들을 깔끔하게 정리해놓았고, 하위 트림에는 차가운 금속 느낌의 메탈 그레인으로 젊은 감각을, 고급형 트림에는 우드 그레인을 씌워 약간의 고급감을 더했습니다.
계기판은 속도계와 타코미터를 나란히 배치하는 보편적인 구성이 아닌 소형차들이 주로 사용하는 속도계가 중앙에 배치된 3-서클 타입으로 경쾌한 분위기를 연출했어요.
이 밖에 자동 변속기 레버가 센터페시아에 바짝 붙어 있는 게 눈에 띄죠? 완전한 세단형 레이아웃이었던 싼타페와 비교하면 MPV에 가깝다는 느낌이 드는데, 앞서 경쟁 모델 혼다 'CR-V', 포드 '이스케이프' 같은 컴팩트 SUV들이 실용성을 극대화한 설계로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의식한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덕분에 센터 콘솔의 높이가 낮아지면서 주차해놓고 조수석 쪽으로 넘어가기 좋아요.이 밖에 앞좌석 열선 시트, 풀오토 에어컨, 5.8인치 VCD 내비게이션은 물론 내비게이션과 차량 내 전화, 전용 웹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텔레메틱스 시스템 '모젠'을 적용하는 등 싼타페에 부럽지 않은 고급 사양도 탑재됐습니다. 최고급형에 한정하긴 했지만, 사이드 커튼 에어백을 옵션으로 장비해 승객 안전성을 강화한 점도 좋은 부분이었어요.
뒷좌석 공간도 쾌적했습니다. 꽤나 큰 폭의 리클라이닝이 가능했고 컵홀더를 포함한 센터 암레스트, 각종 차량 용품을 사용할 수 있는 12V 시거잭도 제공해 승객 편의성을 높였습니다.
특히 수평으로 접어지는 조수석 시트, 등받이를 접으면 방석이 함께 내려가 완전히 평평한 적재 공간이 만들어지는 다이브 방식의 뒷좌석 시트를 탑재한 것은 이 모델의 분명한 세일즈 포인트 중 하나였습니다. 덕분에 작은 차체에서 기대하기 힘든 넉넉한 적재 공간이 펼쳐지는데, 낚시나 캠핑 등 아웃도어 레저를 즐기는 소비자들에게 정말 유용한 기능이죠.
뒷유리만 따로 개방해 간단한 물건을 넣거나 꺼낼 수 있는 '플립업 글래스' 기능을 빼먹지 않은 것도 좋았고요.
파워트레인은 4기통 2.0L 커먼 레일 디젤 단일 사양으로 싼타페와 동일한 유닛이었지만, 급 차이를 위함이었는지 개선형 VGT 버전이 아닌 기존 WGT 버전만 적용됐습니다. 여기에 5단 수동 및 4단 자동 변속기가 맞물렸고 LSD를 포함한 전륜구동 사양을 기본으로 전자식 4륜구동 시스템을 옵션으로 장비했어요.
싼타페와 마찬가지로 듬직해 보이는 생김새와는 달리 내면은 여린 친구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오프로드를 즐기기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비포장길이나 인도 같은 가벼운 험로는 무리 없이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출력이 넉넉하진 않아도 차가 가벼운 만큼 실용 구간에서 딱히 모자람 없는 성능을 제공했고 차종과 차급을 막론하고 부드러운 승차감에 치중했던 당시 국산차 트렌드를 따라 일상 영역에서 쾌적한 승차감을 확보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무게중심이 높은 탓에 고속주행 안정성과 코너링 시 안정감은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출시 1년 후인 2005년에는 2.0L 베타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메트로 트림을 신설해 승차감과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에게 어필했습니다. 주력 사양인 디젤 엔진 대비 토크는 낮았지만, 대신 출력이 높아 의외로 무난한 주행 감각을 제공했기 때문에 가솔린 SUV는 그야말로 별종 취급을 받던 당시 분위기를 감안하면 꽤나 준수한 판매량을 이어갔어요. 최근에 와서는 오래된 디젤 SUV들의 숨통을 조여오는 노후경유차 문제로부터 자유롭다는 장점이 추가됐죠. 이 가솔린 사양은 겉모습에서의 차이는 사실상 없지만, 싱글 머플러팁이라는 점으로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2006년식부터는 기존 5단 수동 변속기를 6단으로, WGT 디젤 엔진 대신 업그레이드된 VGT 디젤 엔진을 장착해 눈에 띄게 늘어난 출력과 개선된 연비를 동시에 선사하면서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또 이 모델부터 순정 DPF가 적용되어 배출가스 4등급으로 분류되죠. 덕분에 차값이 약 200만 원 정도 오르긴 했지만요.
여기에 5.8인치 VCD 내비게이션을 상위 모델과 동일한 6.5인치 DVD 내비게이션으로, 동급 최초로 뒷좌석 열선 시트를 갖추는 등 실내 구성에서도 업데이트가 이루어졌어요.
이후 풀체인지를 앞둔 시점인 2008년 하반기에는 소소한 부분 변경을 진행, 새로운 디자인의 알루미늄 휠과 헤드램프 디테일을 손봐 약간의 신선함을 더했습니다. 이 모델부터 기존 MP3 오디오에 AUX 단자를 추가, 음악 감상이 더욱 편리해졌고, 그림의 떡이었던 DVD 내비게이션을 쏘나타 트랜스폼에서 선보인 100만 원대 인텔리전트 DMB 내비게이션으로 변경한 것이 돋보였어요.
1세대 투싼은 현대차가 독자 개발한 브랜드의 두 번째 SUV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어울리는 무난한 스타일과 상위 모델 싼타페 부럽지 않은 쾌적한 공간, 뛰어난 가성비를 앞세워 출시와 동시에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1세대 모델만 무려 글로벌 누적 130만 대가 넘게 판매되면서 싼타페와 함께 단숨에 현대차를 대표하는 모델로 자리매김했어요.
특히 이때부터 주력시장인 북미를 비롯 해외에서의 성과가 두드러졌는데요. 걸출한 경쟁 모델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눈에 띄는 세련된 스타일과 무난한 성능, 무엇보다 동급 대비 확연히 저렴한 가격은 해외 소비자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중국 시장에서도 쏠쏠한 성과를 거뒀고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자체적인 부분 변경을 거쳐 지난 2013년까지 판매됐습니다. 앞서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현지화를 거쳐 생명 연장을 했던 아반떼나 쏘나타의 사례가 있는데요.
국내에서의 분위기 역시 밝았습니다. 이전에도 국내 시장에 컴팩트 SUV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보디온 프레임 방식의 투박한 차들 뿐이었죠. 투싼 같은 본격적인 도심형 컴팩트 SUV의 등장은 소비자들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싼타페가 2005년 2세대로 거듭나면서 체급과 함께 가격까지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에 이 투싼 쪽으로 눈을 돌리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자금의 여유가 많지 않은 젊은 소비자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얻었고, 덕분에 연애할 때 타던 이 차를 결혼 이후 패밀리카로 활용하는 젊은 부부들도 꽤 많았어요.
특히 우락부락하고 투박한 생김새였던 기존 SUV들에 거부감을 느꼈던 여성 고객들이 선호했는데 컴팩트한 차체로 겉보기에도 부담이 적은 데다 탁 트인 시야와 준수한 승차감을 제공해 주행이 편리하다는 점이 강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고자 한때 톱스타 이효리를 광고 모델로 캐스팅 했고 아예 자동 변속기어 후방감지 센서를 기본 사양으로 탑재한 레이디 트림을 신설해 노를 저었죠.
하지만 뒤이어 기아 '스포티지'의 2세대 모델이 등장한 뒤에는 판매량을 나누어야 했습니다. 플랫폼 공유를 이제 막 시작한 초짜 회사다 보니 주요 부품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패키징까지 유사해 말 그대로 진짜 형제차였고, 생소한 '투싼'이라는 차보다는 이름이 익숙한 '스포티지'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었죠.
이후 소소한 마이너 체인지만으로 유지하면서 무난한 판매량을 이어가다 2009년 후속 모델에게 바통을 넘기고 단종됐습니다. 최근까지도 주변에서 흔하게 보일 정도로 개체 수가 많았는데, 이제 이 투싼도 예외가 없죠.
차체 부식은 이때 차들이라면 뗄래야 뗄 수 없는 문제고, 가솔린을 제외 한 대부분 차량들이 강화된 노후 경유차 운행 제한 조치로 안타깝게 운행 범위가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후기형부터 DPF가 들어가서 비슷한 연식의 경유차들보다는 꽤 보이는 편이긴 했는데요. 중고차 수출시장의 인기 차종이기도 했고, 올해 2024년부터 DPF가 장착된 차량은 4등급 조기 폐차 지원 대상이 포함되면서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친구들이 많아질 예정이라 앞으로 주변에서 보기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네요.
환경 문제도 물론 중요하지만, 차쟁이로서 디젤 올드카들이 우리 곁을 떠나는 게 참 아쉽기도 한데요. 차라리 원하는 사람들에 한해 검사를 더 자주 하거나 환경부담금을 더 부과하는 등의 방식으로 보다 오래 소유할 수 있는 규정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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