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분간 이어진 박신혜의 보복 폭행, 이대로 괜찮은 걸까('지옥판사')
‘지옥에서 온 판사’, 사이다 판타지 중독의 끝은 어디인가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말했잖아. 이게 진짜 재판이라고." SBS 금토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에서 강빛나(박신혜) 판사는 심각한 교제 폭력을 저지르고도 300만 원의 벌금형을 받고 나와 또다시 피해자인 차민정(박정연)을 찾아가 끔찍한 폭행을 저지른 문정준(장도하)에게 그렇게 말한다. 바로 그 300만 원 벌금형 판결을 내린 판사가 바로 강빛나다. 판사의 몸에 들어간 악마 강빛나는 그렇게 의도적으로 문정준을 풀려나게 한 후, 직접 죄인을 처단해 지옥으로 보내려 한다. 1년 동안 죄인 10명을 지옥으로 보내는 게 그에게 내려진 벌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지옥이 등장하는 <지옥에서 온 판사>는 그래서 전혀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살인자 전담 재판관 악마 유스티티아(오나라)가 등장하고, 지옥의 총책임자인 악마 바엘(신성록)은 등 뒤로 여러 촉수를 지닌 존재로 등장한다. 거짓 지옥으로 갔어야 할 강빛나가 바로 그 살인지옥으로 들어왔고, 그곳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강빛나를 제 맘대로 재판한 유스티티아는 바엘에 의해 인간 세상으로 보내져 죄인 10명을 지옥으로 보내는 벌을 받게 된다. 이것이 <지옥에서 온 판사>이 갖고 있는 판타지 세계관이다.
현실이 아니라는 걸 대놓고 시작부터 드러냈지만 <지옥에서 온 판사>가 이러한 세계관을 굳이 가져온 건 오히려 지독한 죄를 짓고도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고 버젓이 살아가는 사법 현실을 꺼내놓기 위함이다. 그래서 보여준 첫 번째 에피소드는 끔찍한 교제 폭력이다. 문정준이 차민정에게 벌이는 폭력은 거의 살인에 가깝다. 강빛나의 말대로 육체는 살아있을지 몰라도 이미 정신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로 극으로 몰아세우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문정준은 차민정의 부모들까지 똑같이 만들겠다는 협박까지 한다.
<지옥에서 온 판사>는 바로 이러한 교제 폭력의 중대함을 꺼내놓으면서 그럼에도 벌금형 처벌을 받는 고구마 현실을 보여준다. 부모에게 자신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말하는 피해자의 눈물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첫 회에 이러한 교제 폭력에 대한 고구마 사법 현실을 적나라하게 꺼내놨다면 2회는 그걸 한 방에 날려 보내는 악마 판사 강빛나의 처절한 사이다 보복이 이어진다.
자신의 죄를 부정한 문정준에게 그가 저지른 짓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알려주기 위해 강빛나는 그가 차민정에게 저질렀던 폭력을 고스란히 문정준이 겪게 해준다. 일상적인 폭력은 기본이고 그가 결코 이 폭력의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마저 느끼게 만든다.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패고 칼로 위협하고 망치를 다리를 작신작신 부러뜨린다. 결국 절망감에 문정준은 피해자 차민정이 했던 것처럼 스스로 목을 매지만 그건 그저 그가 한 짓을 알려주기 위해 강빛나가 보여주고 체험하게 한 환상이었다.
본격적인 보복은 그렇게 환상을 벗어나온 문정준에게 시작된다. 어마어마한 괴력을 가진 강빛나에 의해 발로 차이고 목졸리고 유리에 찢기고 손가락이 꺾이고 발이 부러지기를 반복한 후 결국 잘못했다고 말하는 문정준이 "죽을 죄를 지었다"고 하자 강빛나는 드디어 때가 됐다는 듯 "그럼 죽어"라며 비수를 가슴에 찔러 넣는다. 그렇게 죽은 문정준의 영혼은 지옥으로 날아가 버린다. 그렇게 거의 15분 간 계속된 보복 폭행은 끝이 난다.
물론 이러한 사이다 보복이 들어간 건 그만큼 답답한 현실에 대한 반작용일 수 있다. 실제 교제폭력을 폭력이라 여기지 않던 시대는 이제 벗어나 있지만 그럼에도 솜방망이 처벌을 함으로써 피해자가 2차 피해를 겪는 일들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그 답답한 현실을 통쾌하게 풀어내려 하는 것이라는 건 이해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적인 사이다 보복의 양상이 갈수록 잔혹해지는 건 어딘가 불편함을 남긴다.
고구마 현실을 사이다 판타지로 풀어내는 사적 복수를 담는 콘텐츠들이 늘어나는 건 어찌 보면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모범택시>가 법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갖가지 범죄자들을 소환해내 사적 복수의 장을 만들었고 그 후로 무수히 많은 사적 복수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왔다. <비질란테>, <국민사형투표>, <노웨이 아웃> 같은 일련의 드라마들이 그것들이다. 그런데 그 사적 복수의 자극과 강도 또한 갈수록 높아진다. 그만큼 실제로도 벌어지는 불합리한 법 현실 앞에 국민 감정이 높다는 뜻이지만 과연 이러한 사이다 판타지는 괜찮은 걸까.
어찌 보면 이제 사적 복수를 담은 사이다 판타지 드라마는 하나의 공식이 자리잡힌 것 같다. 현실에서 공분을 일으킬만한 사건을 가져오고, 그 지독한 범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목구멍에 답답한 고구마를 밀어 넣은 후, 그만큼의 시원한 사이다를 쏟아 붓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폭력의 자극은 점점 강해지고, 그 사이다에 빠져들수록 정작 피해자의 입장은 소외되는 경향 또한 생겨난다. 무엇보다 법 현실에 대한 불신을 넘은 개선의 여지조차 찾지 않는 포기 정서가 담기는 건 위태롭고도 불편한 지점이다. 이 판타지로나마 느껴보려는 사이다 중독은 과연 그 갈증을 풀어줄 수 있을까. 더 큰 갈증을 유발하는 건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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