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전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은 “설마”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한국 U-23 대표팀이 베트남에 질 가능성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가정처럼 여겨졌다. 전적은 압도적이었고, 선수 개인의 이름값이나 대회 경험, 인프라 어느 하나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축구는 늘 숫자와 기록 위에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2026 AFC U-23 아시안컵 3·4위전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잔인하게 증명했다. 결과는 승부차기 끝 한국의 패배, 그리고 베트남 U-23 대표팀을 상대로 한 역사상 첫 패배였다.

이 경기를 단순히 “운이 없었다”거나 “승부차기는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덮기엔 남긴 흔적이 너무 크다. 슈팅 수 32대 5, 점유율 60% 이상, 크로스 61회. 숫자만 놓고 보면 일방적인 경기였다. 그러나 축구는 얼마나 많이 찼느냐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골을 넣느냐로 승패가 갈린다. 한국은 그 가장 기본적인 질문 앞에서 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경기 흐름은 베트남이 예고한 그대로였다. 베트남 언론이 경기 전 강조했던 “무실점 기록”과 “역사적 순간”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다. 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전반부터 명확한 계획을 갖고 나왔다. 라인을 낮게 설정하되, 공을 빼앗는 순간만큼은 주저 없이 속도를 올렸다. 한국이 공격 숫자를 늘릴수록, 베트남은 오히려 더 편안해 보였다. 수비는 조직적으로 움직였고, 공격은 단순했지만 날카로웠다.

한국은 전반 30분 응우옌 꾸옥 비엣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불필요한 부담을 떠안았다. 상대 진영에서의 미흡한 볼 처리, 그리고 측면 수비의 느슨함이 겹친 결과였다. 이후 한국은 점유율을 높이며 반격에 나섰지만, 공격은 지나치게 단조로웠다. 측면에서 올라오는 크로스는 많았지만 정확도는 떨어졌고, 박스 안 움직임은 답답했다. 전반 내내 한국이 쥔 공은 위협보다는 조급함에 가까웠다.
후반 들어 이민성 감독은 과감하게 변화를 줬다. 교체 카드 세 장을 한꺼번에 쓰며 분위기 반전을 노렸고, 김태원의 동점골은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불과 2분 뒤, 베트남은 프리킥 한 방으로 다시 리드를 가져갔다. 이 장면은 이번 대회 내내 한국이 반복해 노출한 약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세트피스 수비에서의 집중력 부족, 그리고 상대 에이스에 대한 관리 실패였다.

경기의 흐름이 완전히 한국 쪽으로 기울어야 할 순간은 후반 막판 찾아왔다. 응우옌 딘 박의 퇴장으로 베트남은 10명이 됐고, 남은 시간은 충분했다. 실제로 한국은 거의 모든 선수를 전진 배치하며 파상 공세를 펼쳤다. 결국 추가시간 신민하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지며 경기는 연장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 장면조차 한국이 ‘잘 풀어서’ 만든 골이라기보다는, 마지막 순간에 기대야 했던 간절한 한 방에 가까웠다.
연장전은 오히려 한국의 한계를 더 선명하게 보여줬다.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공격은 더욱 급해졌고, 선택은 단순해졌다. 중앙에서의 세밀한 패턴 플레이 대신 크로스에 의존했고, 베트남은 이를 차분히 막아냈다. 골문 앞에서의 침착함, 마지막 패스의 정확성, 한 박자 빠른 움직임. 이 모든 요소가 부족했다.

결국 승부는 승부차기로 넘어갔다. 여기서 베트남은 놀라울 만큼 냉정했다. 7명의 키커가 모두 성공시키며 단 한 번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반면 한국은 배현서의 슈팅이 막히며 무너졌다. 이 장면은 단순한 실수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압도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만들지 못한 120분의 축소판 같은 순간이었다.
경기 후 이민성 감독은 “아직 완성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번 대표팀은 분명 성장 과정에 있는 팀이다. 하지만 이 패배를 성장의 과정으로만 넘기기에는, 상대와의 격차가 너무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다가온다. 베트남은 더 이상 ‘한 수 아래’로 불릴 팀이 아니다. 박항서 감독 시절을 지나 김상식 감독 체제에 이르기까지, 베트남 축구는 꾸준히 자신들만의 색깔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이날 경기에서 그 색깔은 분명했다. 단단한 수비, 빠른 전환,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멘탈.

반대로 한국은 많은 것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점유율과 슈팅 숫자에 안주하는 축구, 상대가 내려섰을 때의 해법 부재, 세트피스 수비 문제, 그리고 결정력 부족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연령별 대표팀에서 반복되는 이런 패턴은, 단순히 선수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구조적인 고민을 던진다.
이번 패배가 올림픽 출전권과 직결되지 않았다는 점은 그나마 위안이다. 그러나 9월 아시안게임, 그리고 2년 뒤 LA 올림픽을 생각하면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베트남전 패배는 우연이 아니라 경고에 가깝다. 한국 축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우위가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가장 아픈 방식으로 확인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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