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 연봉 투수가 보여줬다 “스트라이크는 이렇게 던지는 것”이라고

KBO 사상 처음으로 육성 선수가 데뷔전에서 승리 투수가 됐다. KBO 제공

선발 매치업의 극단적 불균형

일요일 낮 경기다. 무려 공중파 TV(MBC)가 중계한다. 그만큼 관심을 끄는 대결이다. 2025년 한국시리즈 상대가 다시 만났다. (10일 대전 이글스 파크, 한화 이글스 – LG 트윈스)

하지만 그건 작년 얘기다. 2026년 5월은 영 사정이 다르다. 원정 팀은 비슷하다. 여전히 막강함을 뽐낸다. 반면 홈 팀은 아니다.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성적만 나쁜 게 아니다. 평판도 바닥이다. 리더십에 거센 비판이 쏟아진다. 감독과 구단 수뇌부가 매일 도마 위에 오른다. 거친 반감, 직설적인 분노가 그곳으로 향한다. 성난 팬들이 점점 늘어난다.

그런 상황이다. 가뜩이나 기우는 전력이다. 그럼 선발 투수라도 비슷해야 한다. 그래야 비빌 언덕이 생긴다.

그런데 아니다. 매치업의 불균형이 극심하다.

잘 나가는 팀은 에이스가 등판한다. 라클란 웰스(29)다. 아시아 쿼터지만, 현재는 에이스 대우를 받는다. 그만큼 뛰어난 피칭을 뽐낸다.

홈 팀은 반대다. 처음 보는 얼굴이 나온다. 이른바 ‘땜빵’ 선발이다. 우완 박준영(23)이다. 올해 입단한 신인이다. 2군 몇 경기가 프로 경력의 전부다.

“얼마나 투수가 없으면….”

“1회나 넘길 수 있으려나?”

그도 그럴 법하다. 상대할 라인업은 리그 최강이다. 정확하고, 힘이 넘친다. 빠르고, 재능과 센스가 뛰어난 타자들로 포진됐다.

보나 마나 뻔하다. 너무 싱거운 게임이 될 것 같다. 솔직히 기대감은 1도 없다. 그렇게 ‘플레이볼’이 선언된다.

사진 제공 = 한화 이글스

1회를 넘기자 웅성웅성

첫 타자는 홍창기다. 유명한 출루 기계다.

초구, 2구, 겁도 없다. 배짱 좋은 패스트볼이 연거푸 들어간다. 겨우 137㎞짜리 스피드다. 그런데 스트라이크 존에 예리하게 꽂힌다.

어느덧 카운트는 1-2로 투수 편이다. 그리고 4구 째다. 슬라이더(132㎞)가 낮게 깔린다. 타자가 무릎을 움찔할 정도다. 가장 안쪽으로 바짝 붙는다.

ABS가 즉각 반응한다. 9번 존에 살짝 걸쳤다. 흔히들 ‘묻었다’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간신히 존을 통과한 것이다.

구심(박근영)의 삼진 콜이 울려 퍼진다. 홍창기는 깜짝 놀란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이글스 파크에 잠시 웅성거림이 생긴다.

“어? 나쁘지 않은데?” 그런 반응들이다.

‘혹시’ 하는 마음이다. 홈 팬들이 약간의 설렘을 갖게 된다. 그런데 오래가지 못한다. 2번 구본혁을 볼넷으로 내보낸다. 곧바로 오스틴 딘에게는 강렬한 한 방을 얻어맞는다. 펜스를 직격 하는 2루타다.

그럼 그렇지. 1회가 무사할 리 없다. 1사 2, 3루가 된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몇 점으로 막느냐. 그게 문제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놀라운 반전이 시작된다.

다음 타자는 오지환이다. 최근 타격감이 좋다. 덕분에 4번에 배치됐다. 그런데 공 3개를 버티지 못한다. 슬라이더-체인지업-슬라이더에 연거푸 헛손질이다.

이어지는 천성호도 비슷하다. 2구째 슬라이더에 당했다. 몸 쪽 꺾임에 스윙이 먹혔다. 유격수 머리 위에 뜬 팝플라이로 처리됐다. 1회 2, 3루는 잔루로만 남게 됐다.

사진 제공 = 한화 이글스

“1군 통보에 날아갈 것 같은 기분”

경기 후 인터뷰다. 기자들의 질문이 사방에서 날아온다.

기자 “선발 통보는 언제 받았나?”

준영 “상동에서 퓨처스 게임을 던지고 난 다음 날이다. 이대진 감독님께서 얘기해 주셨다. 정말 기쁘고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차분해지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기자 “많이 떨렸을 텐데.”

준영 “솔직하게 1회부터 5회까지 계속 떨렸다(웃음). 진짜 많이 떨렸는데, 최대한 즐기려고 했다. 그래서 잘 드러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기자 “1회 오스틴에게 맞았을 때 어땠나(먼 쪽에 잘 구사된 138㎞ 직구였다).”

준영 “아찔했다. 그래도 마운드에 있는 동안은 잊으려고 노력했다. 다음 타자를 신경 써서 상대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스렸다.”

기자 “4~5회 승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준영 “처음부터 5회를 목표로 하지는 않았다. 그냥 매번 ‘이번 이닝만 잘 막자’는 식으로 열심히 던졌다. 그러다 보니까 5회가 되더라.”

기자 “더 던지고 싶지 않았나?”

준영 “준비는 했는데, 코치님(박승민)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라고 하셨다. 사실 구위가 많이 떨어지기도 했다.”

기자 “팬들이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도 들었나?”

준영 “매회 마칠 때마다 들었다. 그 환호와 함성은 진짜 큰 힘이 됐다. 너무 감사드린다. 오늘 하루는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사진 제공 = 한화 이글스

신인 드래프트 3번 신청, 3번 탈락

달 감독이 오랜만에 웃는다.

“박승민 코치가 새로 오면서 2군에 괜찮은 투수가 있다고 추천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번 던지게 해 보자고 생각해서 오늘 선발로 쓰게 됐다.” (김경문 감독)

그는 별명이 여럿이다. 팀 내에 같은 이름도 있다. 동료들은 1준영(68번), 2준영(96번)으로 구분한다. 나이가 한 살 더 많은 그에게 ‘1’을 붙여줬다.

팬들에게는 ‘불꽃준영’ 혹은 ‘불준영’이라고 부른다. 그가 야구 예능 프로그램 출신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내세울 만한 이력이 부족하다. 고교(충암고), 대학(강릉영동대-청운대) 때는 그저 그런 투수였다. 드래프트에 3번이나 신청서를 냈다. 하지만 번번이 외면당했다.

결국 정식 입단은 하지 못했다. 대신 테스트를 거쳐 프로의 꿈을 향해 나아갔다. 예전에는 ‘연습생’으로 불리던, 이른바 육성선수 신분이다.

그리고 올해 2군 리그에서 알찬 성적을 유지했다. 7경기에서 4승 무패의 전적을 보였다. 28이닝 동안 사사구 11개, 삼진 22개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은 1.29로 우수했다.

스카우팅 리포트에는 패스트볼 구속이 140㎞ 중반까지 나온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이날은 130㎞ 중/후반 정도가 기껏이다. 140㎞를 넘긴 것은 몇 개 없다(최고 142㎞). 1군에서 경쟁력 있는 속도는 전혀 아니다.

하지만 문제 될 게 없다. 그의 장점은 뚜렷하다.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능력’이다. 가장 평범하고, 가장 기본적인 투수의 자격이다. 그걸 갖췄다는 말이다.

이날도 79개 중 48개(60.8%)를 존 안에 넣었다. 또 16개의 초구 중에 9개(56%)가 ABS의 인정을 받았다.

사진 제공 = 한화 이글스

150㎞, 160㎞ 던지면 뭐 하나

요즘 KBO리그가 그렇다. 특히 이글스가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볼, 볼, 볼, 볼…. 하는 투수들이다. 볼넷, 사구, 밀어내기. 같은 단어에 몸서리를 치게 만든다.

지명 순위에서 맨 앞자리에 뽑히면 뭐 하나. 스피드가 150㎞, 160㎞ 나오는 불 같은 공을 던지면 뭐 하나. 그 흔하고, 당연한 스트라이크 1개를 던지지 못한다.

마운드 위에서 전전긍긍, 진땀 흘리는 모습들이다. 너무나 안타깝고, 안쓰럽다. 팬들이 느끼는 답답함은 이미 한계치를 훨씬 초과했다.

그걸 말끔하게 해결해 줬다. 드래프트에서 3번이나 외면당한 듣보잡 투수가 말이다. 정식 입단도 아닌, 육성 선수가 말이다. 리그 최저 연봉인 3000만 원을 받는 루키가 말이다.

(KBO 1군 최저 연봉은 6500만 원이다. 박준영 같은 경우는 1군 등록일수만큼 차액을 환산해 지급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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