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태평양에 뜨니 호주에 핵잠수함이 나타났다 [박수찬의 軍]
바다 깊은 곳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며 기습을 감행하는 핵추진잠수함은 세계 각국 해군이 도입하기를 원하는 전략무기다. 하지만 핵 비확산 정책, 기술이전 통제에 가로막혀 해외 판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이같은 기조를 깨고 핵추진잠수함을 손에 넣은 나라가 있다. 바로 호주다.
여기에 더해 호주는 2042년부터 2050년대 후반까지 영국이 설계하고 미국 원자로와 전투체계를 탑재한 새로운 오커스급 잠수함 8척을 추가 확보한다. 총 13척의 핵추진잠수함이 호주에 배치되는 셈이다.
동맹국과 전략무기를 공유해 중국, 러시아의 원양진출을 봉쇄하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중국의 해양진출에 미국 ‘반격’
호주의 핵추진잠수함 도입은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관련이 깊다.
남중국해 군사기지 건설과 대만 압박을 지속하는 중국은 지난해 4월 남태평양 솔로몬 제도와 안보협정을 체결, 호주와 미국을 놀라게 했다. 남태평양 섬나라들은 호주, 미국의 영향권에 있었으나 중국의 적극적인 진출로 정세가 바뀌고 있다.
이에 미국은 중국발 안보위협을 느끼는 호주와 연대하고, 호주가 속한 영연방의 수장인 영국을 추가해 오커스를 결성했다.
오커스 첫 정상회의가 열린 미국 샌디에이고는 미 해군 태평양함대의 핵심 기지 중 하나다.
샌디에이고를 오커스의 해양 연결고리 출발점으로 본다면, 샌디에이고에서 하와이 진주만을 거쳐 호주 동부 시드니와 서부 퍼스(이하 태평양)-영국령 디에고 가르시아(인도양)-바레인 미 제5함대 기지(걸프만)-키프로스 아크로티리 영국군 기지와 영국령 지브롤터(지중해)-영국 포츠머스(대서양)로 이어지는 군사 기지망을 연결할 수 있다.
이는 대륙국가(중국, 러시아)의 대양 진출을 원천 봉쇄하는 오커스의 포위망이나 다름없다.
미국령 괌과 일본 사세보, 요코스카, 싱가포르와 필리핀 미군기지에 오커스 포위망이 추가되면 중국과 러시아는 태평양으로 나가기가 어렵다. 이들 국가가 오커스에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다.
오커스가 작동하려면 호주의 핵추진잠수함 보유가 필수다. 본토 해안선 길이가 3만4000㎞인 호주는 장거리 순찰이 가능한 잠수함이 필요했다. 하지만 스웨덴에서 들여온 콜린스급 디젤잠수함은 누수와 과도한 소음 등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미국의 핵추진잠수함 공급은 이같은 문제를 단숨에 해결한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퍼스에서 호주 잠수함이 출동하면 작전기간이 싱가포르에서는 14일에서 78일, 인도네시아에선 23~28일에서 81~84일, 남중국해에선 11일에서 77일로 대폭 늘어난다. 콜린스급 잠수함이 진출할 수 없었던 대만에서는 73일간 작전이 가능하다.
호주 해군의 작전반경이 동북아까지 대폭 확장되는 것이다. 미국은 동중국해 등에서 중국을 견제할 새 동맹군을 얻을 수 있고, 중국은 새로운 적군의 출현에 직면하는 셈이다.
미국은 여기에 ‘상호 호환성’이라는 개념을 추가했다. 상호 호환성은 양측이 상대방의 무기·장비·탄약을 자주 사용하고 병참과 공급망을 효율적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각자의 시스템이 특별한 노력 없이도 서로 연결되어 작동하는 상호 운용성보다 높은 협력과 신뢰가 필요하다.
미국과 호주는 같은 종류의 무기 구매를 늘리며 상호 호환성을 키워왔다.
호주는 F-35, 에이브럼스 전차, 아파치·블랙호크 헬기 등 미국산 무기 구매를 확대해왔다. 구축함과 핵추진잠수함에 탑재할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220기 도입도 추진중이다. 미국도 호주가 먼저 도입한 E-7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구매했다.
호주에 공급될 버지니아급 잠수함은 양국간 상호 호환성의 정점을 상징한다. 향후 수십년간 미 해군 수중전력의 핵심으로 활동할 잠수함을 호주와 공유하는 것은 그만큼 양국의 상호 호환성이 높다는 의미다.
오커스 합의에 따라 호주가 미국 및 영국 조선업계에 투자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외신에 따르면, 호주는 향후 4년간 미국과 영국 핵추진잠수함 관련 산업에 30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냉전 이후 잠수함 수요가 줄어들면서 공급망이 축소됐고, 코로나19 펜데믹과 노동시장의 혼란이 더해진 탓이다.
미 해군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조선소 역량과 공급망 회복을 추구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일렉트릭 보트는 지난해 4000명을 신규 채용했고, 올해는 5700명을 추가 채용할 계획이다.
호주의 투자가 더해지면 핵추진잠수함 공급망의 최하위 단위까지 일감과 고용 증대 효과가 미칠 수 있다. 호주 군인과 조선업 종사자들이 미국에서 교육을 받음으로써 상호 호환성 확대도 가능하다.
영국도 호주와의 상호 호환성을 늘리는 기회를 얻는다. 2040년대 호주가 도입할 ‘SSN 오커스’ 핵추진잠수함은 영국이 설계하고 미국 버지니아급 잠수함 원자로와 전투체계를 탑재한다.
오커스 잠수함은 영국 해군이 운용중인 아스튜트급 핵추진잠수함의 후속 프로그램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영국과 호주가 같은 전략무기를 운용하면 상호 호환성이 증대된다.
미국이 오커스를 통해 호주에 핵추진잠수함 보유를 지원에 나섰지만, 한국에는 관련 기술 제공 의사가 없다.
앤서니 와이어 미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 부차관보는 국무부 외신기자클럽(FPC) 기자간담회에서 ‘호주처럼 한국에도 핵 잠수함을 허용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미국은 미 해군 핵추진 기술을 추가로 공유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처음부터 분명히 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16일 전했다.
이와 관련해 핵추진잠수함 관련 협력이 어렵다면, 다른 분야에서 상호 호환성을 증대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핵추진잠수함이 주목받고 있지만 오커스는 인공지능(AI)과 사이버, 무인 기술 등에서의 협력도 중시한다. 이는 미국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미군과 방산업계에서도 관련 기술 개발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국도 AI를 비롯한 4차 산업혁명 기술을 국방 분야에 전면적으로 적용하는 ‘국방혁신 4.0’을 추진하고 있다. 사이버, 우주 분야 기술 개발 욕구도 강하다. 핵추진잠수함 외에도 상호 호환성 증대를 위해 협력할 분야가 많다.
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미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는 16일(현지시간) ‘반도를 넘어서는 한미동맹 강화’ 보고서에서 “한국형 3축 체계를 뒷받침하기 위해 미국은 관련 국방 기술 판매, 공조, 공유 계획을 구체화해야 한다”며 “오커스의 핵잠수함 판매 계획이 발표된 만큼 미국은 핵잠수함을 제외하고 가능한 선진 무기 목록을 한국에 설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북한과의 전면전에 대비해 방위산업을 육성해온 한국으로서는 국내 방위산업 기반을 유지하면서 산업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받는 것이 한·미 국방상호조달협정(RDP)이다. 체결국 상호 간 조달 제품 수출 시 무역장벽을 없애거나 완화하는 협정으로 ‘방산 FTA’로 불린다.
미국은 무기 도입 시 수출 희망 업체에 금액 기준 전체 원가의 55% 이상을 미국산 부품비로 채우도록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출원가에 50%가량 할증을 부과한다. 다만 RDP 체결국은 미국이 국익에 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할증을 피할 수 있다.
RDF를 체결하면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과 무기체계를 미군에 납품하는 길이 열린다. 미 공군 전술훈련기 및 미 해군 훈련기 사업 등에 TF-50의 참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RDF는 방산 수출과 양국 간 상호 호환성 증대에 긍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오커스의 결성과 호주의 핵추진잠수함 도입은 중국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견제와 더불어 ‘내편 만들기’가 뚜렷해지는 현 정세를 반영한다. 한국도 이를 활용한다면, 중국과의 갈등 우려를 국익 증대를 위한 기회로 바꿀 수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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