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교제폭력 피해자 4명 중 1명만 보호조치…"보호제도 절실"
피해자 보호조치 '스마트워치'에 집중…실효성은 의문
"피해자가 '위험성' 판단 어려워…가해자 제재 강화해야"
경남 거제시에서 전 여자친구를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 서울 강남에서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 등 교제폭력·살인 사건이 올해에도 잇따라 발생하면서 그 심각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는 여전히 부실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가정폭력처벌법이나 스토킹처벌법처럼 연인 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한 별도의 법이 없어 가해자에 대한 제재와 감시가 어렵고, 오히려 교제폭력 피해자의 일상적 활동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보호조치가 이뤄지면서 그 활용률마저 떨어뜨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교제폭력' 급증하는데…피해자 보호조치 활용률 오히려 줄었다
교제폭력 피해자는 △2021년 1만 777명 △2022년 1만 2381명 △2023년 1만 2799명으로 2년 새 2천여 명 증가했다. 반면 피해자의 보호조치 활용률은 △2021년 34.1%(3679건) △2022년 25.7%(3180건) △2023년 24.7%(3157건)으로 오히려 떨어졌다.
지난해 기준으로 교제폭력 피해자 4명 중 1명만 보호조치를 받은 셈이다. 해당 조치는 피해자의 신청으로 이뤄진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만 해도 교제폭력 피해자는 7512명에 달했지만, 보호조치 활용률은 22.9%(1717건)에 불과했다.
교제폭력의 경우 가정폭력처벌법이나 스토킹처벌법처럼 '가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 조치할 수 있는 별도의 법이 없다. 경찰은 교제폭력 피해자에 대해 가정폭력처벌법이나 스토킹처벌법을 적용할 수 없는 경우 △112 등록 △스마트워치 지급 △지능형 CCTV △임시숙소 △보호시설 △맞춤형 순찰 △신변경호 △가해자 경고 △피해자 권고 △개인정보변경 등의 범죄피해자 보호조치를 신청을 받아 하고 있다.
보호조치 활용률 감소 배경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교제폭력은 따로 법규가 없다 보니 가해자 접근금지 조치 등을 하려면 교제폭력과 스토킹이 중첩되는 경우 스토킹범죄로 처리해야 피해자 보호조치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며 "스토킹범죄처벌법이 2021년 시행되면서 (일부 교제폭력 피해자를) 스토킹 피해자로 분류해 보호조치를 하는 경우가 있어 통계상으로 교제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사실혼 관계가 인정되면 가정폭력처벌법을 적용한다든지, 반복되는 연락이나 접근 행위가 있다면 스토킹처벌법으로 적용하는데, 그런 게 아니면 교제폭력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 접근금지 등 (적극적) 보호조치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제도적 한계가 있음을 설명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박예림 정책팀장은 "경찰이 교제폭력 현장에 왔을 때 구체적인 상황과 관계적인 맥락을 살피지 않고 단순 싸움이나 쌍방폭력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런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보호조치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에 신청하기 더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보호조치 절반 이상 '스마트워치'…"즉각적 범행 방지 어려워"
교제폭력 피해자에게 이뤄지는 보호조치의 절반 이상은 '스마트워치 지급'이지만, 해당 조치만으로는 피해자 보호에 공백이 우려된다는 진단이 다수다.
올해 1월~7월 이뤄진 보호조치 1717건 중 1025건(59.7%)이 스마트워치 지급에 해당했다. 연도별 스마트워치 지급 건수는 △2021년 1919건(52.2%) △2022년 1698건(58.4%) △2023년 1859건(58.9%)이었다.
스마트워치는 사건 발생 후 신고자의 위치를 경찰에 전송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즉각적인 범행 방지는 어렵다. 실제로 경북 김천 전 연인 살인사건, 충남 서산 아내 보복살인사건 등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은 이후에도 피해자가 목숨을 잃은 사례가 있다.
교제폭력 피해자 보호조치가 가해자에 대한 경고·제재보다는, 피해자에게 주의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올해 1~8월 전체 범죄피해자 보호조치 수단 중 피해자 권고는 1만 4974건으로 21.59%를 차지했지만, 가해자 경고는 1395건으로 2.01%에 불과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효정 부연구위원은 "현재는 범죄 예방, 피해자 보호, 가해자 처벌 등 세 가지가 별개의 얘기처럼 논의되지만,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잘 이뤄지기 위해서는 가해자에 대한 제재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죽음 이르기까지 도움 요청 못 한 피해자들…"가해자 제재 강화해야"
이 사건들 가운데 피해자 보호조치가 이뤄진 사건은 거제 교제살인사건 1건 뿐이었다. 사생활 간섭, 성관계 종용 등 사건 발생 이전에도 교제폭력의 신호가 있었지만,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건 특성상 살인에 이르기 전까지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 피해자도 다수였다.
김효정 부연구위원은 "친밀한 관계에서 이뤄진 폭력의 피해 당사자가 가해자의 고위험성에 대해 판단하기는 어렵다"며 "대부분 가해자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고 경찰 신고나 스마트워치 등 보호조치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용혜인 의원은 "피해자에게 조심하라고 요구하는 게 아닌 경찰이 가해자를 적극 모니터링하고 단호하게 제재하는 보호조치가 필요하다"며 "잠정조치, 임시조치 등 교제폭력 가해자에 대한 법적 제재 수단이 마련되도록 교제폭력 입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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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희영 기자 matt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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