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조건 만남을 강요 당했다…‘이젠 성매매 여성 처벌조항 삭제를’
심유연(가명·26)씨는 중학생이었던 2011년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를 피해 집을 나섰다. 남자친구라며 믿고 의지한 3살 위 고등학생은 “나와 사귀려면 ‘조건 만남’으로 돈을 벌라”고 강요했다. ‘조건’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심씨는 그가 모집한 성구매자들을 만나야 했다. 반년이 흘러 “이러다 죽을 것 같아”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고 경찰서를 찾았다. 그러나 국가는 그를 보호하기는커녕 처벌했다. 당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은 성매매에 유입된 미성년자를 ‘피해 청소년’과 ‘대상 청소년’으로 구분해,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했다고 판단하면 사실상 처벌인 소년법상 보호처분을 했기 때문이다.
심씨는 성매매 피해자 지원단체의 도움으로 성인이 되기 직전 성매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를 처벌한 법 조항은 2020년 사라졌다. 그제야 성매매에 유입된 모든 아동·청소년이 성착취 피해자로서 보호·지원 대상이 됐다. 현재 여성단체에서 탈성매매와 자활을 돕는 활동가로 일하는 심씨는 법의 변화로 “누군가 여전히 성매매 청소년을 손가락질하겠지만, 다수의 어른은 이들을 보호할 거라는 최소한의 사회적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매매를 강요당했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처벌하는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처벌법) 역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 13개 지역 반성매매운동 단체가 모인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이하 전국연대) 등은 2004년 제정된 성매매처벌법·성매매피해자보호법(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일컫는 ‘성매매방지법’ 시행 20년을 맞는 23일 성매매 여성 형사처벌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법 개정 운동에 나선다고 22일 밝혔다.
이들 단체는 “성매매방지법 시행으로 지난 20년간 성매매가 여성의 몸을 거래 대상으로 삼는 착취라는 인식이 확산됐고 피해 회복·자활을 위한 지원 체계를 갖추는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성매매 강요 행위가 잘 보이지 않는 등 착취 구조가 더 교묘해졌음에도 성매매처벌법(21조 1항)은 성매매 여성을 ‘성매매 행위자’와 ‘성매매 피해자’로 구분해 온전히 보호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현행법은 위계·위력 등에 의한 강요된 성매매임을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면 자발적 성매매로 보고 성구매자와 마찬가지로 1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전국연대 부설 성매매 피해 상담소인 ‘여성인권센터 보다’의 김수민 사무국장은 “업주·사채업자가 여성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몸을 촬영하곤 ‘도망치면 뿌리겠다’고 협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이런 피해를 개인이 증명하는 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심유연씨는 “일부 성매매 업소에선 ‘남자랑 자느니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낫지 않겠냐’며 ‘벗방’(벗는 방송)을 하도록 하면서 방송 장비를 사는 데 들어간 비용을 여성의 빚으로 달아 두고 시중 금리보다 훨씬 높은 이자를 붙인다”며 “이런 경우도 자발적 성매매로 보는 인식이 많은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성매매 피해자 지원단체들이 2022년 조사한 자료를 보면, 성매매에서 벗어나길 원하거나 업주 등을 고소하기 위해 법률 지원을 받은 여성 85명 중 45명은 성매매처벌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요구받거나 처벌받았다. 성매매 강요 피해를 인정받은 경우는 13명에 그쳤다. 성매매 과정에서 범죄 피해를 겪더라도 처벌을 우려해 신고를 기피하는 경우도 많다는 게 상담소 쪽 설명이다.
전국연대가 지난 7월 성매매를 경험한 여성 22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72.0%는 성매매 업주 등으로부터 성매매 강요나 폭행, 협박, 감시·감금, 불법촬영 등의 피해를 겪었다. 응답자 54.2%는 부모 등으로부터 폭력·방임 같은 학대를 당한 적이 있다. 대체로 사회·경제적 취약층이 성매매로 유입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처벌 조항의 존재는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 대한 사회적 착취를 강화하는 한편 성매매 근절에도 효과가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하영 전국연대 공동대표는 “성매매 여성 처벌 조항을 유지한다면 성매매방지법은 여성 인권이 아닌 ‘건전한 성 풍속’이라는 허상만 보호하는 법으로 남게 될 것”이라며 “수요가 사라지는 것만큼 효과적인 성매매 근절책은 없으므로 성구매자와 알선자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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