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잡한 파티 현장? 다들 뭘 뚫어지게 보는가했더니…끔찍하고 잔혹한 광경[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네로 편]
'영원한 도시' 로마에 최악 재난
"네로가 벌인 짓" 소문 일파만파
겁먹은 황제, 희생양 지목했지만
외려 역효과…씻을 수 없는 행보
2년 5개월 넘게 매주 토요일 발행하는 이 기사들은 이후 여러 매체가 비슷한 포맷의 연재물을 연달아 내놓을 만큼 업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가상의 시설 후암동 미술관을 세계관으로 두는 이 칼럼은 ▷이론편 ▷인물편 ▷현장편 등 기획을 선보이며 앞장서 도전과 실험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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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화마(火魔)의 등짝에 채찍질을 하고 있을까.
불은 그만큼 맹렬히 타올랐다. 화염의 아가리는 주택과 거리, 성소까지 삼켰다. 64년, 7월. 고대의 찬란했던 땅 로마는 그렇게 잿더미에 깔렸다. 지독한 불길은 아흐레간 이어졌다. 그동안 130만여명이 살던 대도시는 불에 그을리고, 연기를 뿜고, 잿개비를 내뿜었다. 사망자는 수만명, 집을 잃은 이는 수십만명이었다. 이 참사는 훗날 역사서에 '로마 대화재(Great Fire of Rome)'로 쓰인다.당시 로마 제국 황제는 네로였다. 재앙 소식을 접한 그는 휴가지에서 곧장 돌아와 수습에 힘을 쏟았다. 당장 자기 소유의 별장 문을 열었다. 이곳에 이재민 캠프를 지었다. 이어 외곽과 속주(屬州)를 향해 구호 물품을 보내도록 명령하고, 불이 잘 붙는 소재로는 건물을 짓지 못하게끔 법도 만들었다. 이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네로는 이번에도 적당한 선을 몰랐다. 황제는 어느샌가 들뜬 모습을 보였다. 검정 도화지가 된 도시 앞에서 오랜 기간 간직한 로망을 펼칠 마음이었다. 그는 기왕 폐허가 된 만큼 도시 곳곳에 그리스식 건물을 새로 짓겠다고 했다. 목 좋은 곳에는 도무스 아우레아, 이른바 '황금 궁전'을 올릴 것이라고 공표했다. 소문은 이쯤부터 피어올랐다. "네로가 로마를 제 취향으로 갈아엎으려고 일부러 불을 지른 게 아닐까"라는.
그러고 보니….
로마 시민은 떠올렸다. 재난 이전 "로마는 그리스만큼 아름답지 않다"며 마음 같아선 다 때려부수고 싶다고 말한 네로.재난 당시 "황제의 명령이야!"라며 불 끄기를 막아선 두건 군단…. 실제로는 극장 혹은 정원에서 우연히 불이 붙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것이 하필 주택으로 옮겨갔고, 건물이 몰린 당시 구조상 삽시간에 번졌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네로의 이름을 판 이들은 좀도둑 무리였다고 여기는 게 합리적이었다. 외려 네로는 50㎞ 넘게 떨어진 휴양 도시에서 즉각 복귀했다. 그사이 네로도 애장품을 상당량 잃었다. 로마를 재건하고 싶다느니 허풍을 떤 게 죄라면 죄였지만, 엄밀히 보면 그도 피해자였다.
그럼에도 민중은 의심했다.
이들은 공포와 분노, 불안과 허무의 감정을 쏟아낼 상대를 찾고 있었다. 표적을 정한 후부터는 물릴 생각이 없었다. 심지어 그 사이 "네로가 불타는 로마를 보고 시를 읊었다(실제로 그랬지만, 이는 비통함의 표현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리스 문학에 심취한 네로가 트로이 멸망 장면을 재현하기 위해 사고를 쳤다"는 식의 구체적인 억측도 만들어졌다. 소문이란 한 톨의 사실, 상상 밖 괴담이 버무려질 때 가장 강해지는 법이다. 네로는 어느 순간부터 희대의 방화범이 돼 있었다.
위베르 로베르의 〈로마 대화재〉가 당시 재난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체험하게 이끈다.
생생하게 재현한 이 그림에서 눈에 띄는 건 다리 위 동상이다. 불길을 등진 이 인물상은 어서 도망치라는 듯 한쪽 팔을 들고 있다. 다리 위와 아래에선 뒤틀린 시민이 각자 다른 모습으로 혼란상을 보여주고 있다. 어른이 아이 손을 잡고 뛰는 광경, 도망치기 전 배에 짐을 잔뜩 싣는 장면 등 다급함이 여실히 와닿는다. 노랗게 치솟은 화염이 장악한 안쪽은 무엇이든 뼈대 말고는 건질 게 없어질 것이다. 로마는 과거 27년에도 극장에서 불이 번져 일부 건물이 붕괴했다. 54년에도 대형 화재로 제국 차원의 대응을 한 적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일이 터진 건 처음이었다. 네로는 굶주린 들개처럼 달려드는 범죄 기획설에 겁을 먹었다. 당황한 그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고 만다. 그것은 훗날 누구도 변호하지 못할 최악 행보로 기록된다.
지금은 폭군의 대명사로 꼽히는 네로지만, 그가 처음부터 그런 면을 보이지는 않았다.
쾌활한 성격의 네로는 황제에 오른 직후 시민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로마 대화재 당시 초기 모습처럼 나름 행정력도 갖췄다. 그런 그는 혈육 살해, 이해할 수 없는 학살, 시와 노래를 끼고 산 기묘한 사생활 등 자해(自害)를 거듭했다. 네로를 이처럼 무너뜨린 건 그의 소심함과 인기에 대한 집착이었다.
네로는 로마 대화재가 발발하기 10년 전인 54년, 로마 제국의 제5대 황제에 올랐다.
나이는 열일곱이었다. 이는 그의 어머니인 소(小) 아그리피나가 만들어준 자리였다. 앞서 아그리피나는 제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의 네 번째 아내로 황궁에 입성했다. 그녀는 전임(제3대) 황제 칼리굴라의 여동생이었다. 아그리피나는 이러한 배경과 마성의 매력으로 황실을 휘어잡았다. 이때 그녀 손을 꽉 잡은 아이가 있었다. 과거 그녀의 첫 번째 남편(그녀 또한 클라우디우스는 세 번째 남편이었다!) 사이에서 낳은 자식, 네로였다. 아그리피나의 목표는 하나였다. 내 아들 네로를 황제로 만드는 것. 그리고, 그 뒤에서 막강한 권력을 쥐는 것. 아그리피나는 유한 성격의 클라우디우스를 구워삶았다. 끝내 네로를 황태자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클라우디우스는 얼마 후 갑작스럽게 죽었다. 목표를 이룬 아그리피나가 그를 독살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엉겁결에 소년 왕이 된 네로는, 초기 5년간은 그럭저럭 괜찮은 행보를 보였다.
특히나 친(親)서민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네로 체제에서 시민은 공공시설 확대, 귀족 중심이었던 공연 등 볼거리 전면개방 등 일상 속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스스로도 어느 정도 총명함이 있었고, 박식한 철학자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를 스승으로 둔 덕이기도 했다.네로는 인기의 맛을 봤다. 심약한 그에게 그것은 꿀처럼 달콤했다. 모든 결정의 기준이 신념도, 철학도 아닌 광장 속 환호가 되기 시작했다.
그사이 황궁 안에서는 끔찍한 사건이 여럿 발생했다. 가장 충격적인 건 네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의 죽음이었다.
병적인 소심함을 콤플렉스로 둔 일부 사람들은 외려 몇몇 상황에서 더 파격적인 면을 보이곤 한다. 의외의 모습을 보여 시선을 바꾸고 싶은 충동, 뿌리 깊은 자격지심을 떨쳐내고자 하는 욕망 탓이다. 네로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선을 넘고, 또 넘었다. 치세 5년 차. 인기에 취한 네로는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배급과 축제 등 대중 영합주의 정책을 더 크게 벌이고 싶었다.아그리피나가 맺어준 황후 옥타비아와의 연을 끊는 한편, 더 예쁘고 경박한 이와 결혼하고 싶은 욕심도 들끓었다. 하지만 아그리피나가 사사건건 간섭했다. "말 안 듣는 아들놈을 다른 녀석으로 갈아치울 것"이라고 말했다는 식의 소문도 퍼졌다. 네로는 모든 걸 잃을까봐 두려웠다. 측근들 또한 "이럴 때 강한 모습을 보여야 대중이 좋아한다"며 결단을 촉구했다. 그래서, 네로는 그녀를 죽였다. 처음에는 사고로 위장해 익사시키려고 했다. 그녀가 헤엄쳐 살아남자 다시 자객을 보내 숨통을 끊었다고 한다.
안토니오 리치가 〈네로와 아그리피나〉에서 둘의 관계와 최후를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네로일 것으로 보이는 남성이 쓰러진 여인의 몸을 살펴보고 있다. 이번에는 정말 죽어가는 게 맞는지 확인하는 양. 얼굴 쪽에서 피를 토한 그녀는 아그리피나일 것이다. 붉은 천, 손목에 걸린 액세서리는 한때의 권력을 의미하는 듯하다. 네로는 이후 아내 옥타비아를 도마 위로 올렸다. 옥타비아는 수수한 외모이긴 했지만, 품격과 현명함을 두루 갖춘 여인이었다. 그녀는 간통죄에 반역 누명까지 쓴 채 참혹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다.
네로 입장에선 앓던 이가 모조리 빠졌다. 방해꾼은 사라졌고, 귀염성 있는 아내도 새로 얻었다.
이제 대중의 환호를 위해 힘껏…. 그런데, 매번 그의 행복이 돼준 시민이 싸늘했다. 그간 로마 황실에서 친족 암살은 외우기도 힘들 만큼 잦았다. 하지만 황제가 친어머니를 죽인 건 처음이었다. 비참한 끝을 맞게 된 황후 또한 로마의 남녀노소 모두가 존경한 여인이었다. 황제가 그런 아내를 대놓고 죽인 일 또한 첫 사례였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이를 뒤늦게 알아챘지만, 무엇 하나 돌이킬 수 있는 게 없었다. 초조해진 그는 이를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할 생각이었다. 그런 그가 고심 끝에 택한 길이 있었다. 그것은….
네로의 노래가 끝난 순간, 기다렸다는 듯 박수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그가 악기를 든 팔을 번쩍 들자 이번에는 곳곳에서 휘파람이 넘실거렸다. 64년, 나폴리의 한 공연장. 네로는 가수로 공식 데뷔했다.
갑자기 왜 그랬을까.
사실 네로는 한참 전부터 그리스 문화에 심취해있었다. 특히나 그리스 노래와 문학을 좋아했다. 그는 이미 측근들 앞에선 수시로 노래를 불렀다. "이렇게 좋은 걸 우리만 듣기가 아쉽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아부했을지도 모른다. 바람이 들어간 네로는 본인을 위대한 예술가로 착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러한 파격 행보를 보인 것이었다.
네로는 감동한 민중이 그에게 다시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리라고 믿었다.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순회공연 또한 흥행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전이 있었다. 네로의 시에 감격하고, 네로의 음악에 감동하는 이 대부분은 박수부대였다. 5000명 규모의 이들은 행동 양식에 맞춰 3개 군단으로 나눌 만큼 체계적(!)이기도 했다. 그에게 열정은 있었지만 능력은 한 톨도 없었다고 한다. 눈과 귀가 가려진 네로는 치세 초기 인기를 완전히 되찾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정반대였다. 시민은 황제란 작자가 통치에 집중하지 않는 데 대해 좋은 말을 할 수 없었다. 외국물을 먹은 광대처럼 나서는 게 못마땅할 뿐이었다.
"촌스러운 로마를 어떻게 해야 그리스처럼 바꿀 수 있을지…."
그리스 문화에 더욱 빠져든 네로는 이 무렵 로마를 자주 깎아내렸다. 그럴 줄은 몰랐다. 생각 없이 뱉은 이 말이 즉각 부메랑이 돼 급소를 칠 줄은.
로마 대화재는 네로가 연예인이 된 그해 터진 일이었다.
나약한 네로는 난데없이 방화범으로 몰린 이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그가 들불처럼 퍼지는 의혹을 잠재우기 위해 쓴 수는 새로운 희생양 지목이었다. 네로가 이번 비극의 원흉으로 꼽은 이는… 당시 신흥 종교 세력이던 기독교도였다.
마침 당시 로마 제국에선 기독교인을 향한 시선이 좋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이교의 신을 믿지 않는다"며 국가 행사에 불참하는 이들을 곱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시민은 당시 이들을 비주류로 볼 뿐, 테러범으로 취급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이런 가운데, 네로는 분풀이하듯 기독교인을 학살했다. 역사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의 기록 등을 보면, 네로는 기독교인에게 다짜고짜 털가죽을 씌우곤 맹수 우리에 던져버렸다. 일부는 십자가에 못 박은 채 매달았고, 또 일부는 그 상태로 불에 태워지게끔 했다.
헨리크 시에미라즈키가 이런 광경을 상상화 〈네로의 횃불〉로 그렸다. 로마의 귀족, 그 틈에 섞인 시종과 노예들이 황금 궁전의 발코니에서 어우러져 있다. 대부분은 축제를 즐기는 양 악기나 술잔 따위를 든 상태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는 오른쪽 한 귀퉁이를 보고 있다. 그곳은 참극의 현장이다. 옷이 벗겨진 기독교인이 줄줄이 이어진 나무 막대기 끝에 매달렸다. 사다리를 탄 병사 혹은 노예는 이미 불을 들었거나, 곧 쥐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곤 이를 기독교인을 묶는 데 쓴 짚단에 가져다 댈 모습이다. 포박당한 이들은 곧 화르르 타오르는 인간 횃불이 되리라. 귀족들의 호화로운 연회, 누명을 쓴 희생양의 비극적 최후는 강렬하게 대비된다.
"잔혹함은 (…) 시민의 가슴을 동정심으로 채웠다. 시민은 알고 있었다. (…) 기독교도라고 불리는 이들에게 잔혹한 운명을 내린 건, 공공의 이익 아닌 한 사람의 욕구 충족을 위해서라는 걸."
타키투스는 이렇게 썼다. 네로의 얄팍한 수는 이처럼 역효과만 일으켰다. 시민은 이로 인해 황제의 여러 기행(奇行)만 열심히 곱씹을 뿐이었다. 로마 대화재 후 황실의 태양은 급격히 기울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르지 못한 채 몰락했다.
결정타는 로마 대화재 발발 1년 후 불거진 대규모 숙청 사건이었다. 고대 역사가들의 기록을 보면, 네로의 폭주를 보다 못한 몇몇 원로원은 거사를 치르기로 결의한다. 그것은 네로 암살이었다. 구상은 이랬다. 선발대는 네로가 보이면 곧장 달려가 그의 발 앞에 엎드린다. 간곡히 할 말이 있다며 방심하게 한 후, 그대로 넘어뜨린다. 숨어있던 후발대가 쓰러진 그에게 달려든다. 옷소매에서 단검을 꺼내 사정없이 찌른다. 모든 원로원과 시민에게 존경받는 인물,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가 때마침 등장한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피소를 새로운 황제로 추대한다.
늘 그렇듯 계획은 완벽해보이는 법이다. 변수가 생기기 전까지는.
일이 벌어지기 전날, 사건에 가담한 인사 중 한 명인 플라비우스 스카이비누스는 해방 노예 밀리쿠스에게 단검을 갈고 닦으라고 지시했다. 이상함을 느낀 밀리쿠스는 곧장 네로의 해방 노예에게 이를 알려버렸다. 네로도 처음에는 온전히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 증거라며 단검을 받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네로는 바로 스카이비누스를 포박해 무릎 꿇렸다. 결국 음모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네로는 공모자를 모조리 잡아들였다. 피소 등 핵심 관계자는 줄줄이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의문사를 당했다. 그렇게 피바람이 불었다. 소심한 네로는 여기서 또 잘못된 결단을 한다. 비교적 확실한 용의자와 함께, 평소 그에게 간언(諫言)한 몇 안 되는 인사까지 이참에 다 체포한 것이다.
여기에는 네로의 초기 선정에 큰 영향을 준 스승 세네카도 있었다.많은 이가 충격을 받았는데, 이는 네로가 기어코 마지막 통제력까지 잃었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
네로는 앞뒤 상황을 면밀히 따지지 않고 세네카에게 스스로 세상과 하직할 것을 명령했다. 연로한 세네카는 자해한 후 욕탕에서 죽어가길 택했다고 한다. 마누엘 도밍게스 산체스의 그림 속 마른 장작 같은 세네카의 모습은 비극을 극대화한다. 세네카의 동료들은 작품 안 모습처럼 슬퍼하며 네로를 향한 증오를 맹세했다고 한다. 피소 음모로 불린 이 일로 인해 로마 제국은 세네카를 포함해 최소 마흔한 명의 각계 유력자를 잃었다.
68년 초.
전임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오랜 친구였던 갈바가 스스로를 황제로 칭하기 시작했다. 네로의 숙청에 학을 뗀 원로원과 군대가 힘을 보태줬다. 네로는 어느덧 혼자였다.강골 어머니와 지혜로운 아내, 영악하지만 노련했던 스승과 그나마 쓴소리를 할 줄 알던 이들 모두 죽었다.존 윌리엄 워터하우스가 외로운 네로의 모습을 상상해 그렸다. 침대에 엎드린 네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눈 채 넋을 놓고 있다.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있다. 지난날을 되새기고 후회하는 양미간에는 주름이 깊이 패였다. 넓은 황궁은 쓸쓸해보인다. 언뜻 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장식물 또한 허전함을 채우지 못한다.
그해 6월8일.
평소처럼 잠을 뒤척이던 네로가 또 호위병을 불렀다. 그러나 이날 밤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곧 자신에 대한 암살이 있을 것을 직감한 네로는 황궁에서 탈출했다. 그가 피신한 곳은 한 노예의 집이었다. 겨우 숨을 돌리려는 그때, 네로는 원로원이 자신을 '국가의 적'으로 선포했다는 걸 전해들었다. 그는 이제 살아날 구멍이 없었다. 저 멀리서 기병들의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네로는 노예에게 칼을 건넸다. 자기 머리를 찌르도록 명령했다. 쓰러진 네로는 "참으로 훌륭한 예술가인 내가 죽는구나"라는 말을 내뱉었다. 다급히 달려온 병사들이 그의 죽음을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늦었어. (이런 최후가)내 절정의 상징이야." 네로는 이 말을 끝으로 죽었다고 한다. "네로가 가진 특징은 대중의 인기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이었다." 네로보다 한 세대 늦게 출생한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는 이런 글을 썼다. 실체 없는 인기에만 매달린 나약한 자의 말로였다.
〈참고 자료〉
타키투스와 연대기, 타키투스, 범우
하이켈하임 로마사, 프리츠 M. 하이켈하임, 현대지성
네로황제 연구, 안희돈, 다락방
〈후암동 미술관 역사편 읽는 순서〉
①“아빠! 저게 뭐야?”…8세 딸 ‘매의 눈’ 학계 난리났다, 믿기 힘든 광경 포착 - 알타미라 동굴 벽화 (24. 8. 17.)
②“볼거리·노리갯감 전락 지긋지긋”…근육男들 격분에 모두 벌벌 떨었다, 무슨 일 - 스파르타쿠스 (24. 9. 14.)
③난잡한 파티 현장? 다들 뭘 뚫어지게 보는가했더니…끔찍하고 잔혹한 광경 - 네로 (24. 10. 19.)
④“18세 소녀가 軍지휘관이라니!” 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했던 그녀 행보…어땠길래 - 잔 다르크 (24. 9. 21.)
⑤“단두대 못 찾겠어요” 18살 소녀 사형수 울컥…눈 가린채 울음 삼킨 사연 - 제인 그레이 (24. 8. 10.)
⑥“제발 그만” 子아내 마구 때려 유산시킨 父…항의하는 아들에게도 똑같은 짓 - 이반 4세 (24. 8. 31.)
⑦“문신 어딨어!” 여인 옷 강제로 벗기고 손가락질…다음이 더 끔찍했다 - 마녀사냥 (24. 10. 5.)
⑧“실패하는 순간 죽습니다” 이판사판 도박, 이게 먹혀들었다?…역사 통째로 바꿨다 - 조지 워싱턴 (24. 9. 28.)
⑨“저도 사람이에요!” 절규에도…‘인간 사냥’ 최악의 흑역사, 대체 무슨 일이 - 노예선 (24. 9. 7.)
⑩“보정 해도 너무했다” 늠름한 초상화의 충격적 진실…실상은 어땠나했더니 - 나폴레옹 1세 (24. 8. 24.)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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