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OTT에 AI 영화가…AI 영화 시대의 개막 [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볼 수 있는 유미. 그는 한 아파트로 새로 이사를 가게 되고 그곳에서 기묘하고 섬뜩한 사건들을 겪게 된다. CJ ENM이 구글 클라우드와 손잡고 제작한 영화 ‘아파트’이다. 지난 4월 30일 상영회가 열린데 이어 5월 1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에서 공개됐다. 60분짜리 작품임에도 투입된 제작비는 5억원에 불과하다. 연기만 실존 배우들이 했고 모든 배경과 시각효과는 인공지능(AI)으로 만들었다. 전부 실사로 만들었다면 제작비는 5배에 달했을 텐데 AI 영화로 만들어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아파트’뿐만 아니다. 국내에서 AI 영화가 잇달아 공개를 앞두고 있다. 5월 21일엔 AI 영화 ‘한복 입은 남자’, ‘아이엠 포포’가 나란히 극장에서 개봉한다.
관객들이 극장과 OTT를 넘나들며 AI 영화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기존엔 AI 영화제, AI 영상 공모전을 통해 소개되는 정도였다면 이젠 시장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영상 생성형 AI의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AI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덕분에 여러 창작자들과 제작사,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AI를 활용한 영화 제작에 나서고 있다. 산업의 패러다임 전체가 바뀔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100% AI 영화부터 하이브리드 영화까지
국내에서 AI 영화에 대한 인식이 형성된 것은 2024년 전후였다. 특히 권한슬 감독의 ‘원 모어 펌킨(One More Pumpkin)’이 두바이국제AI영화제에서 대상과 관객상을 차지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것이 계기가 됐다. 이를 기점으로 비오, 런웨이 젠, 시댄스와 같은 영상 생성형 AI를 활용하면 카메라, 배우가 없어도 충분히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평소 비용이나 시간 문제 등으로 영상 제작을 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AI로 머릿속 아이디어를 마음껏 구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후 AI 창작자들과 AI 제작사들이 생겨났고 AI 영상 공모전, AI 영화제도 잇달아 만들어졌다.
2024년이 초기 형성기였다면 2025년은 산업적인 변화가 나타난 해라고 할 수 있다. 넷플릭스가 아르헨티나 오리지널 시리즈 ‘엘 에테르나우타’에 AI를 처음 활용해 많은 화제가 됐다. 외계의 침공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건물들이 무너지는 순간을 AI로 구현했다. 이를 기점으로 넷플릭스는 AI를 시리즈와 영화 제작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국내 업계에서도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CJ ENM은 개별 AI 도구의 강점을 하나로 통합한 ‘시네마틱 AI’를 자체 개발했다. 이를 기반으로 AI 숏폼 애니메이션 ‘캣 비기’를 만들어 공개하기도 했다. 또한 ‘중간계’, ‘코드: G 주목의 시작’이란 AI 영화가 극장에서 잇달아 개봉했다.
AI 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배우, 배경, 음성 등 영상의 모든 요소를 AI로 만드는 ‘100% AI 영화’가 있다. 반면 배우는 실존 인물을 캐스팅하면서도 배경, 시각효과에 AI를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AI 영화’가 있다.
‘중간계’와 같은 경우는 하이브리드 AI 영화에 해당한다. 이 작품엔 배우 변요한, 김강우 등이 출연했다. ‘카지노’, ‘범죄도시2’ 등을 만든 강윤성 감독이 연출했으며 ‘원 모어 펌킨’의 권한슬 감독이 참여해 AI 작업을 진행했다. ‘코드: G 주목의 시작’은 100% AI 영화, 하이브리드 AI 영화가 함께 있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됐다. 100% AI 영화 4편, 이선빈 배우가 출연한 하이브리드 AI 영화 1편이 차례로 상영됐다.
2025년엔 이렇게 AI 영화 두 편이 스크린에 걸린데 이어 올해엔 상반기에만 벌써 두 편이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내용도 다채롭다. 100% AI로 만든 장편 영화 ‘한복 입은 남자’는 이상훈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작품이다.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가 실제 그린 ‘한복 입은 남자’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그림 속 인물이 장영실이라는 파격적인 가설에서 출발해 15세기 조선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넘나들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작품 배경 때문에 많은 제작비가 들 수밖에 없지만 AI를 활용한 덕분에 비용을 크게 줄였다. 같은 날 개봉하는 김일동 감독의 ‘아이엠 포포’는 인간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로봇 ‘포포’가 잠재적 범죄성을 지닌 인간을 살해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확률로 판단하는 AI와 희망을 믿는 인간 사이의 충돌을 그린다. 목소리 연기는 전문 성우들이 하기 때문에 이 또한 하이브리드 AI 영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정부도 본격적으로 AI를 기반으로 한 문화 산업 진흥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3월 문화미디어산업실 문화산업정책관 안에 ‘문화인공지능정책과’를 신설하기도 했다.

활용과 제약 사이…제대로 된 방향 설정해야
하지만 AI로 인한 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해외에선 AI를 둘러싸고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프랑켄슈타인’, ‘셰이프 오브 워터’ 등을 만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영화에 AI를 쓰느니 차라리 죽겠다”라고 말했다. ‘쥬라기 공원’부터 ‘레디 플레이어 원’ 등을 연출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내 영화에 AI를 사용한 적은 없다”며 “다양한 분야에서 AI의 활용은 지지하지만 창의적인 개인을 대체하는 데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2023년 미국 할리우드에서 일어난 대규모 파업 역시 AI로 인한 것이었다. 배우와 작가들이 콘텐츠 제작에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것에 반대하여 장기간 파업이 진행됐다. 이 같은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지난 5월 1일(현지 시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최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배우가 아닌 AI 캐릭터를 활용하거나 챗봇이 쓴 시나리오는 수상 후보에서 배제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했다. 연기 부문은 영화의 공식 출연진 명단에 기재되고 인간이 직접 연기한 역할만 심사 대상에 포함되도록 했다. 각본 부문에서도 인간이 집필한 시나리오만 심사 대상으로 삼는다는 요건이 명시됐다.
국내에서도 부작용이 나타나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엔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 영화 ‘검침원’이 배우 염혜란의 얼굴과 목소리를 당사자의 동의 없이 AI로 구현한 것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제작진 측은 배우로부터 초상권 사용을 허락받았다고 했지만 배우의 소속사 측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현재 작품은 비공개 처리된 상황이지만 언제든지 비슷한 초상권 침해 사례가 발생할 수 있어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구글의 최고경영자(CEO) 순다르 피차이는 이렇게 말했다. “AI는 인류가 작업하고 있는 가장 영향력 큰 것 중 하나이다. 나는 AI가 전기나 불보다 더 엄청난 것으로 생각한다.” 그만큼 AI는 인류사를 통틀어 손꼽힐 만큼 거대한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그 변화는 많은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체감하고 있듯 이미 도래했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빠른 속도로 발전해 모든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전망이다.
변화가 거세고 빠른 만큼 영화, 나아가 영상 산업 전체가 어떻게 활용하고 어떠한 제약을 둘지 하루빨리 방향을 정해야 한다. 대대적인 투자를 하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와 제도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게 된다면 AI가 K콘텐츠 산업 발전을 위한 새로운 문을 활짝 열어 주지 않을까.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kimhk@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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