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한자산신탁이 설립 이후 처음 내놓은 공모 회사채로 원래 목표의 2배에 가까운 1500억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이렇게 손에 쥔 돈 전부를 책임준공형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소송의 배상에 쓰기로 하면서, 결과적으로 리스크 비용을 위한 회사채 시장 데뷔전이 됐다.
신한자산신탁이 떠안은 부실만 2년여간 27배 넘게 불어나며 6000억원에 육박한 가운데, 이른바 책준형 PF에서의 균열과 이를 막기 위한 부동산신탁사들의 자금조달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신한자산신탁은 최근 총 1500억원 규모로 회사채를 발행했다. 신한자산신탁이 창립 이후 최초로 내놓은 공모 회사채였다. 신용등급 A-에 만기는 3년물로만 이뤄졌다. 대표주관은 교보증권과 삼성증권이 맡았다.
최초 희망 모집액은 800억원이었지만 수요예측에서 이보다 많은 1590억원의 주문이 확인되면서 증액 한도를 채워 발행됐다. 이에 따른 경쟁률은 1.99대1이었으며 금리는 연 5.47%로 정해졌다. 신한자산신탁이 제시한 희망 밴드였던 5.00~5.60% 구간 평균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렇게 모은 자금의 사용처다. 신한자산신탁은 1500억원 전액을 부동산 PF 책임준공 미이행에 따른 소송의 배상금 충당에 사용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올해 중 1심 판결이 예상되는 사업장의 PF 대주단에 대한 가지급 등을 우선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설정한 PF 사업장별 원금은 △신라스테이 658억원 △원창동 575억원 △내강리 560억원 △산호동 524억원 △어연리 300억원 △동명동 281억원 등 총 2897억원이다.
문제는 이 같은 책준형 부동산 PF의 부실이 앞으로 더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PF에 따른 리스크가 누적되는 가운데 특히 부동산신탁 업계가 얽혀 있는 책준형 토지신탁 사업이 핵심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어서다.
책준형 토지신탁은 신탁사의 보증을 기반으로 부동산 PF 대출을 일으키는 형태다. 부동산 PF 사업에서 시공 건설사의 규모가 작고 신용등급이 낮을 때 신탁사가 신용공여를 제공하는 계약이다.
책준형 투자신탁은 신탁사가 준공기한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확약이 따르므로 부동산 활황기에는 공사가 중단되는 일이 거의 없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반신탁 대비 보수가 높아 신탁사에는 효자상품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그런데 최근 고금리 장기화와 그에 따른 미분양 등으로 부동산 PF를 맡은 건설사들이 흔들리면서 불씨가 책준형 토지신탁을 타고 부동산신탁 업계로 옮겨붙었다. 공사가 지연되거나 미완성되는 사업장이 많아지면서 신탁사가 공사기한을 책임지고 맞추거나 대출 금융기관의 손해를 대신 배상해야 하는 사례가 많아진 것이다.
신한자산신탁 역시 이런 풍파의 중심에 있는 부동산신탁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신한자산신탁에서 발생한 고정이하자산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5901억원으로 불과 2년여 전인 2022년 말과 비교해 2670.4% 폭증했다.
고정이하여신은 금융사 여신 중 통상 3개월 넘게 연체된 대출로 부실채권을 분류하는 잣대로 쓰인다. 금융사들은 대출자산을 건전성에 따라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다섯 단계로 나누며 이 중 고정과 회수의문, 추정손실에 해당하는 부분을 고정이하여신으로 부른다.
전체 자산 규모를 봐도 신한자산신탁의 부실채권은 눈에 띄는 수준이다. 신한자산신탁에서 건전성 분류 대상이 되는 자산 중 고정이하여신의 비중은 76.9%로 부동산신탁 업계 평균인 59.6%보다 17.3%p 높다.
결국 책준형 투자신탁의 리스크와 이를 감당하기 위한 자금수요는 신한자산신탁은 물론 부동산신탁 업계 전반의 과제가 될 공산이 크다. 향후 이들의 자금조달 행보에 더욱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책준형 부동산 PF의 리스크 비용이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된 만큼, 이제는 해당 부실자산을 소화할 수 있는 신탁사별 여력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신한자산신탁은 대형 금융그룹 소속이라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