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네시스가 초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V90 네오룬'의 핵심 기술을 공개했다. 앞뒤 문 사이 고정 기둥인 B필러를 없애기 위해 문을 움직이는 장치부터 차체 골격까지 새롭게 설계했다.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은 매끄러운 외관에는 정밀한 레이저 가공과 도장 공법을 적용했다. 문 하나, 색상 하나에도 세심한 개발과 검증 과정이 담겼다.
이달 28일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리조트에서 열린 'GV90 테크 데이'는 그 과정을 들여다보는 자리였다. 연구개발·제조 부문 실무 책임자 12명이 개발 일화를 풀어냈다. 1060㎡ 규모의 전시관에는 GV90 네오룬의 도장 전 차체와 전용 전기차 플랫폼 'eMP'와 개발 단계별 도어 힌지가 놓였다. 완성차에 가려지는 부품들이 이날은 기술의 주인공으로 나섰다.
70㎏ 문 여는 힌트, 교과서와 가구 박람회까지 찾았다
GV90 네오룬 '네오룬 아치 게이트'는 앞뒤 문이 각각 독립적으로 열리는 구조다. 두 문 사이의 고정 기둥인 B필러가 없어 승하차 공간이 넓게 열린다. 개발진에게는 까다로운 조건이 주어졌다. 뒷문이 앞문과 부딪히지 않아야 했고 작동 장치가 실내 공간을 차지하는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남진우 제네시스클로저설계팀 파트장은 "스윙과 슬라이딩을 하나로 묶어 자동으로 구현한 사례가 없어 대학교 기구학 교재를 다시 펴 보고 가구 박람회까지 찾아갔다"며 "결정적인 힌트는 자동차 밖에서 찾았다"고 말했다.
해법은 공작기계와 산업용 로봇에 쓰이는 '리니어 모션 가이드'였다. 무거운 물체를 정밀하게 직선 이동시키는 부품이다. 이를 도어 힌지에 적용해 뒷문을 바깥으로 밀어낸 뒤 회전시키는 '듀얼 모션 힌지'를 완성했다. 두 동작을 연결해 70㎏에 달하는 문이 흔들림 없이 부드럽게 움직이도록 했다. 전시관에 놓인 개발 단계별 힌지 샘플은 이 짧은 움직임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줬다.
문을 잠그는 방식도 바뀌었다. 도어 위아래에 잠금장치인 래치를 배치해 동시에 해제하거나 당겨 잠그도록 했다. 주변 장애물을 감지하는 레이더는 도어 하단 크롬 장식 안에 넣었다. 금속 도금층에 미세한 균열을 만들어 전파가 통과하도록 하는 기술도 적용했다. 매끄러운 외관을 유지하기 위한 작업은 도금층 내부까지 이어졌다.
B필러가 맡던 안전 기능은 차체와 문으로 나눴다. 문이 열리는 공간의 둘레를 하나의 고리처럼 연결하는 '히든 롤케이지' 구조를 적용했다. A필러부터 지붕까지 이어지는 골격 안에는 길이 2.5m의 고강도 스틸 튜브를 넣었다. 도어 내부에는 초고강도 스틸 빔을 배치했다. 문이 닫히면 도어 자체가 지붕과 측면의 하중을 차체로 전달한다.

제네시스에 따르면 GV90 네오룬은 연구소 자체 시험에서 지붕을 누르는 14톤포스(tf) 이상의 하중을 견뎠다. 시속 60㎞ 측면 직각 충돌 시험에서는 차체 측면이 밀려 들어온 뒤에도 최소 320㎜의 탑승객 생존 공간을 확보했다. 모두 회사 자체 시험 기준이다.
차체 설계에는 충돌 순간의 움직임도 반영했다. 차량 전면 일부가 장애물과 부딪히는 스몰 오버랩 충돌에서는 충격을 옆으로 흘려 차가 장애물을 비켜가도록 했다. 정면 고속 충돌 때는 뒤로 밀린 서브프레임과 구동 시스템이 배터리 아래로 지나가도록 설계했다.
박지웅 바디아키텍처개발팀 팀장은 "3톤이 넘는 차량도 충돌 순간 설계한 대로 움직이며 탑승객을 보호하도록 만드는 것이 럭셔리 플래그십이 갖춰야 할 진짜 품격"이라고 말했다.
제네시스가 세계 최초 적용 기술로 소개한 루프 에어백은 전복 사고에 대비한 장치다. 천장을 따라 펼쳐져 유리 지붕을 통한 탑승객 이탈과 머리 부상을 줄인다. 1400㎜ 거리를 0.08초 만에 전개한 뒤 천장에 밀착되도록 개발했다. 실차 40대와 300회 이상의 단품 평가를 거쳤으며, 차량을 180도 이상 회전시키는 전복 시험도 도입했다.
색상은 48차례 조정, 나무 바닥은 골프화까지 고려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은 외관은 부품 사이의 경계를 줄이는 데서 출발했다. 소재와 공정이 다른 부품을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게 하려면 단차와 미세한 색 차이까지 다듬어야 했다.
헤드램프에 적용한 '컷리스' 공법이 대표적이다. 램프 바깥면에 차체와 같은 색을 칠한 뒤 빛이 나와야 하는 부분만 레이저로 깎아냈다. 램프와 차체를 하나의 면처럼 연결하면서 필요한 빛 투과율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개발진은 16종의 외장 색상마다 레이저 출력과 주파수, 가공 속도를 달리했다.

도장 과정에서는 도료 입자의 배열과 보는 각도에 따른 색감 등을 색상당 48차례 조정했다. GV90 네오룬 퍼스트 에디션의 투톤 컬러에는 도료와 코팅층을 세 차례 입히는 공법을 적용해 두 색이 만나는 부분의 단차를 줄였다.
실내 소재는 질감과 내구성을 함께 검증했다. 울 캐시미어 원단은 혼방 비율과 직조 구조, 후가공 조건을 달리한 200종 이상의 샘플을 평가했다. 도톰한 질감을 살리면서 승하차 때 반복되는 마찰을 견딜 수 있는 조합을 찾았다. 우드와 스톤은 디자이너가 무늬 방향과 색상별로 분류한 실물 견본집을 만들어 한 차량 안에서 조화를 이루도록 관리했다.
나무 바닥의 시험 조건에는 골프화도 포함됐다. 남택성 제네시스CMF팀 팀장은 "뒷좌석 우드 플로어는 스파이크가 달린 골프화를 신고 오르내리는 상황까지 고려했다"며 "고객 일상에서의 다양한 환경을 모사한 실험을 통해 내구성을 점검했다"고 말했다.

전시장 한편의 '사운드 익스피리언스 부스'는 정숙성을 확인하는 공간이었다. 실차 주변에 도로 소음을 재현하고 차량 안팎의 소음 수준을 데시벨(dB)로 표시하도록 구성했다. 문을 닫았을 때 외부 소음이 얼마나 차단되는지 비교할 수 있게 했다.
제네시스는 이 차폐감을 확보하기 위해 조립 순서까지 바꿨다. 배선보다 흡차음재를 먼저 장착해 적용 면적을 넓혔다. 차체 골격 안의 소음 전달 경로는 발포 공법으로 막았다. 모든 유리에 차음 유리를 적용하고 앞뒤 도어 유리에는 기존보다 두 배 두꺼운 차음 필름을 넣었다.
구동계에서는 소음이 생기는 순간을 직접 관찰했다. 모터와 감속기 하우징에 관찰 창을 내고 고속 카메라와 레이저로 회전축의 미세한 움직임을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축 구조와 기어 맞물림 면을 다듬었다. 소음 유발 성분과 반대 위상의 전류를 주입하는 제어 기술도 적용했다. 제네시스는 이를 통해 모터 소음의 원인인 가진력, 즉 구조물에 진동을 일으키는 힘을 최대 40% 줄였다고 설명했다.
바람 소리 저감 검증은 미국 캘리포니아와 독일 아우토반에서 이뤄졌다. 바람이 거센 환경에서 현지 적합성을 평가하고 시속 240㎞ 고속 주행 시험도 거쳤다. 최종 윈드 노이즈는 초기 목표보다 2dB 낮은 수준으로 완성됐다.
안세진 제네시스프로젝트2실 상무는 "장인이 오랜 시간 집중해 달항아리를 빚듯 GV90에는 수많은 개발진의 시간과 노력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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