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 스위치 전략 따라가나, 밸브 스팀 덱 OLED 발표
밸브(Valve)가 휴대용 스팀 게임기 '스팀 덱(Steam Deck)'의 새로운 OLED 버전을 발표했다.
밸브는 스팀 홈페이지에서 판매되는 스팀 덱의 제품 구성을 새롭게 업데이트 했는데, 기존 LCD가 들어가는 스팀 덱은 256GB 용량으로 단일화하면서 새롭게 OLED 화면을 적용한 512GB 및 1TB 모델을 선보였다.
한국 시장에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밸브가 직접 판매하지 않고 아시아 주요 국가의 총판을 맡은 일본의 코모도(Kodomo)를 통해 판매되며, 11월 17일부터 구입할 수 있다.
더 커진 HDR OLED로 화질 향상
기존에 출시된 LCD 버전은 7인치 화면 크기에 1280x800 해상도를 지원하는 옵티컬 본딩 LCD 디스플레이가 탑재됐다면, 신형 모델은 더 커진 7.4인치 화면에 1280x800 해상도 및 HDR(High Dynamic Range)을 지원하는 OLED 디스플레이를 사용한다.
스팀 덱 OLED에 들어가는 새로운 HDR OLED는 화면 크기만 약간 커진 것이 아니라 OLED 특징을 통해 밝기와 명암, 색재현력, 재생률까지 모든 면에서 기존 LCD 디스플레이보다 업그레아드 됐다.
기존 LCD는 최대 밝기가 400nit(일반)였는데, OLED 버전은 SDR 모드에서 최대 600nit, HDR 모드에서는 최대 1,000nit까지 올라가 야외에서도 시인성이 개선되었으며, 명암비도 화소가 완전히 꺼지면서 블랙 표현이 향상되기 때문에 LCD 버전에서는 표시하지 못했던 것을 OLED 버전은 100만:1 이상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기존 스팀 덱 LCD 디스플레이 색재현률은 sRGB 60%로 알려졌을 만큼 컬러 표현이 좋지 못했다. ASUS ROG Ally와 같은 sRGB 100% 지원 화면과 동시에 보면 물 빠진 색감이라는 느낌이 확실히 들 정도였는데, OLED 디스플레이를 사용하면서P3 110%에 이르는 광색역을 표현할 수 있게 되어 HDR 게임이나 영상의 컬러감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다.
디스플레이 재생률(Refresh Rate, 새로 고침 빈도)도 LCD 버전은 일반적인 60Hz 기준에 맞췄는데, OLED 버전은 최대 90Hz로 향상되어 화면 움직임이 빠른 게임을 플레이 할 때 좀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스팀 덱은 하드웨어 성능 한계나 배터리 소모 등을 이유로 기존 LCD 버전도 재생률을 오히려 낮추고 게임을 할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90Hz 화면을 체감할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그 대신 디스플레이 반응 시간이 0.1ms 미만으로 거의 즉각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OLED 버전에서는 사용자 컨트롤에 대한 반응성이 크게 향상된다는 점이 기대된다.
OLED와 고용량 배터리로 사용 시간 증가
스팀 덱 OLED 버전은 기존 LCD 버전과 비교해 크기는 298 x 117 x 49mm로 동일하고 무게는 29g 정도 줄어든 약 640g이다. 외관상으로는 두 모델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액세서리도 호환된다.
7.4인치로 화면이 커진 것은 기존 LCD 버전의 베젤이 차지하고 있던 면적을 줄여서 해결할 수 있고 일반 LCD 디스플레이와 달리 백라이트 LED가 들어가지 않는 OLED 특성상 패널 두께도 슬림해지기 때문에 적절한 내부 설계 개선을 통해 배터리 용량을 늘리는데 유리해진다.
기존 스팀 덱 LCD 버전은 40Whr 배터리에 사용 시간은 게임 및 콘텐츠에 따라 2~8시간으로 나왔는데, 새로운 스팀 덱 OLED는 배터리 용량이 25% 증가한 50Whr 배터리를 탑재하며 사용 시간도 3~12시간까지 30~50% 늘어났다.
배터리 충전은 기존과 똑같이 45W USB-PD 3.0 고속 충전을 지원하는 Type-C 전원 어댑터가 제공되는데, 전원 케이블 길이가 1.5m에서 2.5m로 늘어나면서 OLED 버전 사용자들은 전원을 연결한 상태에서도 기기를 가지고 좀더 넓은 범위에서 자유롭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6nm 공정 APU 성능은 그대로? 메모리와 Wi-Fi 속도 개선
스팀 덱에 들어가는 APU는 여전히 Zen2 CPU와 RDNA2 GPU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하는 맞춤형 APU를 사용한다.
제조공정이 7nm에서 6nm로 미세화되긴 했지만 Zen2 아키텍처 기반 4코어 8스레드(4C/8T) CPU는 2.4~3.5GHz 클럭으로 최대 448GFlops FP32 연산 성능을, RDNA2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하는 8CUs 구조의 GPU는 1.6GHz 클럭으로 1.6TFlops FP32 연산 성능을 제공하고 있다.
APU 전력은 7nm와 6nm 공정 모두 동일하게 4-15W로 표시되어 특별히 저전력에 특화된 것으로 보이진 않으나 일반적으로 공정 미세화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칩셋 생산 증가와 단가 하락, 발열 및 소비 전력 개선이다.
밸브는 AMD APU의 전력 효율이 향상되었으며 더욱 커진 팬으로 발열 문제를 개선하여 OLED 버전이 작동 중 발열량도 다소 낮아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스팀 덱에 들어가는 16GB LPDDR5 온보드 메모리 속도가 기존 LCD 버전은 5500MT/s였는데, OLED 버전에서는 6400MT/s로 올라간 것으로 나타나 메모리 속도 및 대역폭에 영향을 받는 CPU 및 GPU 성능의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내부 스토리지는 여전히 PCIe Gen3 x4 인터페이스를 사용하겠지만, LCD 버전에서 스토리지 성능 하락의 주범 64GB eMMC 모델이 사라지면서 모두 NVMe SSD를 탑재하고 일정한 성능을 제공한다.
Wi-Fi 속도도 빨라진다. 기존 스팀 덱 LCD는 2.4GHz 및 5GHz 주파수 대역을 지원하는 Wi-Fi 5 규격을 지원했는데, 스팀 덱 OLED는 6GHz 주파수 대역이 추가되고 이론상 최대 통신 속도가 약 1.4배 빨라지는 9.6Gbps를 지원하는 Wi-Fi 6E 규격 무선 연결 기능을 탑재하여 대용량 게임 설치 및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잦은 스팀 덱에서 다운로드에 걸리는 시간을 줄여준다.
무선 컨트롤러 업그레이드에 따라 Wi-Fi와 콤보로 구성되는 블루투스(Bluetooth) 규격도 v5.0에서 v5.3으로 올라갔다.
OLED 넣고 가격 유지, 반투명 한정판도 출시
스팀 덱은 처음 출시될 때 가성비를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64GB eMMC 스토리지를 탑재한 모델을 기본으로 하고 상위 모델에는 스토리지 용량을 256GB, 512GB로 올렸으나 게임을 다운로드로 즐기는 스팀 특성상 AAA급 게임을 여러 개 설치하려면 저장공간의 압박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스팀 덱을 처음 구매하는 사람들 가운데 기기를 분해하고 SSD를 교체하는데 거부감이 없는 사람들은 아예 64GB eMMC 모델을 선택한 뒤 M.2 2230 규격의 1TB 또는 2TB SSD를 구입하여 저장공간을 늘리는 방식을 선택했다.
밸브는 스팀 덱 OLED를 발표하면서 기존 LCD 버전에서 가성비가 가장 좋았던 64GB eMMC와 지금은 프리미엄 가격을 받기 힘들어진 512GB 모델을 단종시키고, 일반 사용자가 SSD 교체없이 적당한 게임 설치 공간과 NVMe SSD의 빠른 속도를 경험할 수 있는 256GB 모델의 가격을 낮춰 399달러(국내 가격 기준 58만 9천원)의 기존 64GB 가격으로 포진시켰다. 그리고 스팀 덱 OLED 512GB 모델은 549달러(국내 가격 83만 9천원), 1TB 모델은 649달러(국내 가격 98만 9천원)으로 출시한다.
기존 LCD 버전의 64GB 및 512GB 모델은 단종되며 재고 소진 시까지 각각 349달러, 449달러에 구매 가능하므로 LCD 버전에서는 256GB 모델만 남게 된다.
단순히 가격만 놓고 보면 중간급 모델 가격을 소폭 인상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스토리지 용량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최초 649달러에 나왔던 스팀 덱 LCD 512GB 모델을 OLED와 개선된 하드웨어를 적용하고도 100달러 저렴하게 파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649달러에는 1TB 용량을 제공한다.
또한 1TB 모델에 반투명 커버와 주황색 포인트 컬러를 적용한 한정판도 미국과 캐나다에서 한정 수량으로 출시한다. 스팀 덱을 구매해서 스킨을 붙이거나 반투명 커버로 교체하는 튜닝 유저들의 니즈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밸브는 FAQ에서 한정판이 실험적으로 소량만 제작되었으며 이러한 제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 향후 더 다양한 색상을 시도할 거라고 밝혔다.
교체 부품 구매 지원도 LCD 버전처럼 이뤄질 예정이다. iFixit과 협력해 스팀 덱 OLED의 교체 부품과 수리 안내서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므로, OLED 버전에서 바뀐 배터리팩이나 일부 소모품으로 구분되는 부품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OLED 디스플레이가 일반 LCD에 비해 번인 현상에 취약하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스크린(OLED) 부품도 교체할 수 있다면 사용자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PC가 아니라 콘솔이다, 닌텐도 스위치 전략 따라가는 밸브
밸브가 만든 스팀 덱은 PC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스팀 덱이 성공하면서 기존 UMPC 제조사들도 가성비를 재설정한 제품을 출시하고 AMD의 최신 라이젠 Z1 시리즈를 탑재한 ASUS ROG Ally나 Lenovo Legion Go와 같은 기기들이 스팀 덱이 개척한 시장에서 프리미엄 게임기를 자처하며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스팀 외에 다양한 게임 플랫폼과 윈도우가 아니면 실행하지 못하는 게임도 지원한다.
하지만 스팀 덱보다 고성능 AMD 최신 APU도 밸브가 휴대용 게임기 스윗스팟으로 설정한 TPD 15W 기준에서는 스팀 덱보다 우월한 성능을 보여주지 못한다. 소비 전력을 늘려서 성능을 향상시키면 그만큼 발열과 배터리 사용 시간에서 스팀 덱보다 불리해지고 게이밍 노트북에 게임패드를 붙이는 것과 차이가 없게 된다.
매년 성능이 향상된 부품을 가지고 하드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 PC와 달리 콘솔 게임기는 한번 정해진 스펙은 수명 주기가 끝날 때까지 바꾸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 Series X|S와 소니 PS5, 그리고 닌텐도 스위치가 여기에 해당한다.
심지어 스팀 덱과 UMPC 게임기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 닌텐도 스위치는 기본형 모델 이후 라이트 버전, 배터리 개선 버전, 그리고 OLED 버전이 나올 때까지 하드웨어 성능에는 아무 변화를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닌텐도 스위치 OLED 버전은 지금도 높은 판매량을 유지하면서 닌텐도 실적에 기여하고 있다. 워낙 스펙이 낮아서 하드웨어 판매로도 이익이 남기 때문이다.
스팀 덱 OLED는 휴대용 콘솔 게임기에서 닌텐도 스위치 OLED 전략을 따라가고 있는 제품이다. 닌텐도처럼 낮은 하드웨어 스펙으로 높은 이익을 가져가는 건 어렵지만 밸브의 수익원은 하드웨어 판매가 아니라 스팀 플랫폼에서 판매되는 게임을 통해 나오니 더 많은 유저들이 스팀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끌어들이는 것으로 스팀 덱은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셈이다.
이미지 출처: Val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