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갔던 신촌 상권은 왜 망했을까?
이 영상을 보라. 영화 속 디스토피아의 한 장면처럼 건물이 거의 무너져 가는 것처럼 부서져 있고, 바닥엔 이렇게 쓰레기들이 나뒹굴고 있다.
한때 패션의 성지로 불렸고, 아기자기한 옷가게들로 북적였던 서울 이화여대 앞 거리, 2000년대 강북의 핫플로 불리던 연세대에서 신촌역으로 이어지는 신촌 상권은 오래전부터 유령도시처럼 변해버렸다.
신촌 기차역 주변의 명물 거리도 이렇게 텅 빈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유튜브 댓글로 “신촌 상권은 왜 망했는지 궁금하다”
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만남의 장소’였던 지하철 2호선 신촌역 앞은 이미 트렌드를 선도하는 테스트베드 역할을 상실한 지 오래됐다.
20년간 신촌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던 프랜차이즈들, 맥도날드 투썸플레이스 크리스피크림도넛의 폐업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는데 최근엔 인근의 롯데리아마저 폐업했다.
특히 이 지역 상권은 홍대와 합정역, 연남동이라는 대체재가 생기면서 급속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도심으로 전락한 이후에도 과거의 명성에만 기댄 채 고가의 임대료가 계속되면서 이를 견디지 못한 자영업자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변 지역으로 이동하는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겪은 곳이다.
10여년전인 2013년 기준 신촌 이대 상권의 임대료 평균은 연남동과 2배이상 차이가 났는데 코로나를 거치면서도 신촌 지역의 역세권 상가들은 임대료가 월 4000만원 수준으로 일반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높은 가격대를 고수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게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나서 그 상권이 망가지는데 신촌이 그런 상황이 됐거든요. 신촌 1층은 다 프랜차이즈 업종이지 어떤 콘텐츠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제 임대료를 너무 올린다라는게 위험하죠.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
여기에 연세대 송도 국제캠퍼스로 신입생들이 1년간 의무적으로 통학하기 시작한 것도 이유로 꼽힌다. 매출이 급감하면서 점차 공실도 늘기 시작했다. 신촌 지역 소규모 상가들의 공실률은 20%로 서울시 평균의 4배 이상이다.
현재 텅텅 비어가는 서울 상권들의 경우 약간씩 다른 특징을 보이는데 공실률 자체는 신촌이 명동과 비슷했는데 최근 중국인 관광객 수요가 회복되고 있는 명동에 비해 신촌 상권은 청년층도 없고 외국인 관광객도 없어 수요가 전혀 회복되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다.
클럽 문화나 이런 것들이 유행을 타니까 신촌에 있던 사람들이 홍대로 오기 시작한 게 시작이거든요. 그다음에 시작된 게 뭐냐면거기에 철도를 공원으로 만들어요. 공덕역까지 다 이어서 만드는데 그쪽에 수혜를 가장 많이 받았던 데가 연남동이거든요. 그러니까 신촌이 이대 쪽에서도 상가나 가게 운영하셨던 분들이 가격이 좀 쌌던 연남동 쪽으로 많이 와요
-신촌 공인중개사-
건물주들은 공실이 발생해도 임대료를 낮추지 않는다. 임대료를 낮추면 건물의 자산가치가 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임대료하고 건물에 대한 가치하고 연동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만약 임대료를 떨어트리면 대출을 활용해서 건물을 유지하고 있다라고 하면 상환에 대한 부분도 있고요. 또 수익률하고 연관이 되기 때문에 임대료가 떨어지면 수익률이 떨어지고, 수익률이 떨어지면은 그 건물에 대한 매매가격이 떨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잘 안 떨어트려요.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
한번 가격을 낮추면 건물주 입장에서 원하는 만큼 다시 임대료를 올리기 힘든 ‘상가건물 임대차보호’의 영향도 있다고 했다. 한번 세입자와 계약을 하면 계약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이 최대 10년이고, 보증금이나 월세도 1년에 5%의 한도 내에서만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너무 낮춰서 계약하면 자산가치를 다시 끌어올리기 쉽지 않다는 거다.
한번 임대료로 세를 맞추게 되면 그다음부터 계속 법정요율로만 올려야 되는데 10년 동안 올려야 되잖아요. 그렇게 되면 임대인 입장에서는 그냥 한 몇 달 길게는 1년씩 그냥 공실로 놔두고 아예 제값을 받자 하는 생각이 더 크죠.
- 신촌 부동산 공인중개사 -
이화여대 앞 상권의 경우, 임대료 문제 말고도 책상머리 규제가 오히려 상권의 다양성을 방해했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는 2013년 이 지역을 ‘쇼핑·관광 권역’으로 지정해서 의류 및 잡화 관련된 특화 거리를 만들고 상권을 활성화하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옷가게 잡화 중심의 천편일률적인 거리가 되면서 매력을 높이지 못했고,
사드 문제로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기고 인터넷 쇼핑이 활성화되면서 하나둘 문을 닫게 됐다고 한다
의류 특화 거리는 2023년 3월이 돼서야 10년 만에 해제됐다.
40년간 이대 앞에서 맞춤 정장점을 운영하는 한 사장님은 주변에 공실이 많아도 여전히 임대료는 낮아지지 않는다고 했다. 더이상 상업지로서의 부활이 어렵다고 생각한 대부분의 건물주는 코로나 이후로 건물을 오피스텔로 많이 바꾸고 있다고 한다.
그냥 좋아질까 싶어서 버티는 거지... 지금 새로운 사람들은 그닥 없어요. 있어도 우리 또래들이 오는 거더라고 보니까. 임대료는 잘 안 내려가 보면...
- 이대 앞 옷가게 사장님 -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연세대까지 이어지는 연세로는 대중교통전용지구 해제를 놓고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에 전용지구를 임시로 해제해보니 일반 차량 통행 증가로 상권이 일부 살아났다는 분석이 나왔다고 하는데 서울시는 기존의 보행자 중심 지구 지정의 장점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