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환자 수백명 밀려와…밤이 무서운 달빛어린이병원
동네 소아청소년과 병·의원이 문을 닫는 늦은 밤, 휴일에 아이가 '응급실에 갈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갑자기 아플 때 대부분은 대학병원 응급실을 떠올린다. 하지만 소아 응급실에 경증환자가 밀려들면 정작 위급한 아이가 진료받지 못할 게 뻔하다. 정부가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운영해온 제도가 '달빛어린이병원'이다. 야간 진료의 공백을 메꾼다는 취지로 '달이 뜨면 더 빛나는 병원'이란 뜻을 이름에 담았지만, 정작 달빛어린이병원장들은 "달이 뜨는 밤이 두렵다"고들 호소한다. 무슨 연유일까.
올해 1월1일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새롭게 지정받은 김포아이제일병원(경기 김포시)의 이홍준 대표원장은 21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달빛어린이병원 지정을 반납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달 뜨는 밤이 이제는 두려울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운영한 지 10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선택의 기로에 놓인 건 △의료진의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는 점 △진료할수록 적자만 심해진다는 점 △추가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점 등 때문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중 의료진의 피로도가 극에 달한 건 인근의 상급종합병원이 '준중증·응급'의 소아 환자들까지 떠밀듯 보내오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호소다. 이 대표원장은 "상급종합병원의 소아 응급실이 제 기능을 못해 무너진 현실에서 '경증'의 소아환자를 진료해야 할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준중증·준응급 소아환자가 이송되는 일이 잦아졌다"며 "심지어 최근엔 준중증보다 더 심각한 '중증·응급환자'도 떠밀려온다"고 밝혔다. 이 병원엔 하루 많게는 500명이 내원하는데, 그중 50여명이 준응급·준중증이거나 그보다 더 심각한 상태의 환자들이다.
경련을 일으키는 소아응급환자가 이곳을 찾아오는 건 다반사라고. 낮에 이 병원에서 상급종합병원으로 전원 조치했던 중증환자가 그날 밤 이곳 달빛어린이병원으로 되돌아온 사례도 있었다. 상급종합병원의 야간 진료 인력이 없어서다. 이홍준 대표원장은 "그나마 우리 병원은 상급종합병원에서의 중증·응급환자 재이송 건수가 지방보다는 적은 편"이라고 했다.
실제로 최근 지방의 한 달빛어린이병원에선 백일해로 숨을 쉬지 못해 청색증까지 나타난 생후 2개월 환아가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에 가지 못해 실려 왔고, 응급 처치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이 대표원장은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도 올까 두렵다"며 "모든 병원의 진료 업무가 그 아이에게 집중돼 부담이 가중될 뿐 아니라, 다른 아이까지 진료할 수가 없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 달빛어린이병원은 전국 소아청소년과 병·의원 95곳에서 지정받았는데, 이 가운데 2차 의료기관인 소아청소년병원(아동병원)이 37곳(38.9%)이다. 이홍준 대표원장은 "달빛어린이병원은 중에서 소아응급실 기능까지 떠맡은 병원(2차 의료기관)은 그런 기능을 감당하지 못하는 의원(1차 의료기관)보다 당연히 인건비 등 비용 부담이 더 큰데도 의원이든 병원이든 수가가 똑같다"고 지적했다.
달빛어린이병원이 소아응급실 역할까지 감당해야 할 경우 의사·간호사·원무·의료기사 등 근무 인력, 응급환아에 대한 치료재, 검사·처치 장비·시설을 추가로 갖춰야 해 병원으로서는 '나갈 돈'이 많아진다. 하지만 정작 정부에선 지급해주기로 약속한 국고보조금을 줄였거나 아예 주지 않고 있다는 게 달빛어린이병원장들의 하소연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전국 달빛어린이병원 상당수가 국고보조금을 약속분보다 적게 받았거나 아예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가 임의로 8곳을 조사했더니 3곳은 국고보조금을 올해 한 푼도 받지 못했고, 2곳은 보건소로부터 '국고지원금이 아예 없다'고 확인받은 상태로 나타났다. 소변패치·수액세트 등 치료재는 쓰면 쓸수록 손해다. 소변패치는 모든 환아에게, 수액세트는 8세 이상 환아에게 사용하면 수가가 아예 산정되지 않는 '산정불가품목'으로 지정돼 있어 달빛어린이병원이 오롯이 부담해야 해서다.
이 대표원장은 "우리 병원은 국고보조금의 4분의 1만 받은 상황"이라며 "직원의 근무환경, 병원의 지속경영을 위해 달빛어린이병원 운영을 그만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현재 운영 중인 달빛어린이병원이 본래 기능을 발휘하려면 검사실과 처치실을 가동하는 소아청소년병원에 대해 상급종합병원 응급실과 똑같은 수가를 적용하거나, 지원금을 확대해 준중증 환아에게 필요한 의료를 적시에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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