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독자에게 말을 붙여보니[편집실에서]

2024. 10. 1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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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수 편집장



일주일에 한 번 발행하는 주간지에는 어떤 기사를 실어야 할까요. 주간지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항상 품에 안고 사는 고민입니다.

요즘 독자들은 ‘뉴스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한 표현이 아닙니다. 매일 온라인을 통해 수많은 뉴스가 쏟아집니다. 이런 치열한 경쟁을 뚫고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는 쉽지 않습니다. 기자가 아무리 많은 공을 들인 기사라도 독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게다가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새로 나온 뉴스에 바로 묻혀버리니 다시 기회를 잡기도 어렵습니다.

주간지는 태생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뉴스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따라가면서 기사를 생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주의를 게을리하면 애써 취재한 기사가 ‘시의성 떨어진다’는 오명을 쓰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시의성만 챙겨서는 안 됩니다. 그건 매일 기사를 내보내는 방송과 일간 매체들이 훨씬 더 잘하는 일입니다. 주간지만의 무기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기사를 어떻게 써야 할지 통 감이 오지 않을 때는 ‘가상의 독자’를 불러보곤 합니다. 기자 일을 하면서 터득한 요령입니다. 예전에 스포츠부에서 프로야구를 담당했을 때는 매일 밤 그날의 야구 결과를 종합해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매일 5경기씩 열리는데 어떤 경기를 맨 앞에 내세워야 하는지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또 그 경기 중에서도 어느 상황을 전달해야 독자들이 재밌게 읽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상의 독자에게 말을 붙여보았습니다. “너, 그거 봤어? A팀이랑 B팀이랑 붙었는데 7회에 이런 일이 생겼지 뭐야” 제 기사를 볼 독자에게 제일 먼저 알려주고 싶은 일을 앞세워 보니 기사 쓰기가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주간경향에 쓸 기사를 선택할 때도 가상의 독자에게 도움을 받아봤습니다. 일간지, 방송 기사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간 깊이 있는 뉴스를 원하는, 그런 뉴스에는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는 독자를 상상하며 이번 호를 만들었습니다.

주간경향 이번 호는 표지 이야기로 ‘전세 사기’를 다룹니다.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는데도 비슷한 사기 범죄는 계속 벌어집니다. 전세 대출의 허점부터 전세라는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까지 차근차근 다시 짚어봤습니다.

지난 7월에 정부가 발표했지만, 다른 이슈에 묻혀 주목받지 못한 의료급여 정률제 개편이 저소득층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봤습니다. 또 2027년부터 개 식용 금지법이 전면 시행되는데, 지금 전국 육견업자들이 사육하는 개 46만마리는 어디로 갈지도 알아봤습니다. 어떤가요. 진짜 독자님들의 귀도 솔깃해지셨나요.

홍진수 편집장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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