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까지 올랐던 팀이 왜 무너졌나…페퍼저축은행 하락 곡선의 해부

2025~2026시즌 페퍼저축은행의 흐름은 한 단어로 요약하기 어렵다. 시즌 초반에는 분명 ‘돌풍’이라는 표현이 어울렸고, 중반 이후에는 급격한 하강 곡선이 나타났으며, 지금은 다시 반등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 구간에 서 있다. 이 팀을 단순히 “연패에 빠진 하위권 팀”으로 규정하기에는, 시즌 전체의 서사가 너무 극적이고 또 분명한 원인과 해법이 함께 보인다.

시즌 초반 페퍼저축은행은 확실히 달랐다. 한때 선두까지 올랐다는 사실은 단순한 결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외국인 공격수 조 웨더링튼은 높이보다 타점과 폭발력으로 점수를 쌓았고, 아시아쿼터 미들블로커 시마무라 하루요는 블로킹과 속공에서 용병급 영향력을 보여줬다. 여기에 국내 베테랑 윙 스파이커 박정아, 고예림, 이한비가 상황에 따라 공격과 리시브에 가담하면서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배구”가 가능했다. 시즌 초반 페퍼는 단순히 에너지가 넘치는 팀이 아니라, 전술적으로도 상대가 준비하기 까다로운 팀이었다.

하지만 리그가 한 바퀴 돌기 시작하면서 균열이 생겼다. 가장 먼저 흔들린 건 리시브 라인이었다. 최근 연패 구간에서 평균 리시브 효율이 22% 안팎까지 떨어졌다는 점은, 숫자만 봐도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여자부에서 리시브 효율이 20% 초반으로 내려가면, 세터는 네트 앞에서 사실상 선택지를 잃는다. 속공은 사라지고, 중앙은 봉쇄되며, 결국 높고 예측 가능한 오픈 공격 비중이 늘어난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 상대 블로킹은 한 박자 늦기는커녕, 미리 기다리고 손을 올릴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세터 운용의 불안정성도 함께 드러났다. 주전 세터 박사랑은 성장 과정에 있는 자원이고, 이원정은 부상 복귀 이후 컨디션과 출전 시간을 조율하는 단계다. 리시브가 안정적일 때는 큰 문제가 드러나지 않지만, 리시브가 무너지는 순간 세터의 부담은 급격히 커진다. 이때 안전한 콤비 플레이나 고정된 탈출 패턴이 부족하면 공격은 단순화되고, 팀 전체 리듬이 무너진다. 페퍼의 연패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됐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조 웨더링튼이 38점을 올리며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음에도 팀이 패했던 경기였다. 이 장면은 “조이가 못해서 진다”가 아니라, “조이가 잘해도 이길 구조가 아니다”라는 현실을 드러낸다. 공격이 단순해질수록 조이의 비중은 더 커지고, 그만큼 상대의 대응도 쉬워진다. 목적타 서브로 리시브를 흔들고, 조이를 중심으로 블로킹과 수비를 짜면 페퍼의 공격 루트는 급격히 좁아진다. 조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조이를 관리하지 못하는 팀 구조의 문제다.

국내 자원들의 역할도 이 악순환과 맞물려 있다. 박정아는 여전히 팀 내에서 가장 경험 많은 해결사이지만, 리시브 부담이 커질수록 공격 효율이 함께 떨어지는 경향이 뚜렷하다. 공격이 막히면 다시 조이 쪽으로 공이 쏠리고, 그 결과 박정아의 존재감은 더 줄어드는 구조가 반복된다. 고예림 역시 주장으로서 리시브 라인의 중심을 맡고 있지만, 부상과 컨디션 저하 이후 완전한 안정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한비는 공수 균형이 좋은 자원이지만, 팀 전체 리시브가 무너질 때 혼자 흐름을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박은서는 연패 국면에서도 비교적 꾸준한 에너지를 보여주며, 조이 의존도를 조금이나마 분산시키는 카드로 기능하고 있다.

수비에서는 리베로 한다혜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다혜는 팀 수비의 중심축으로 평가받는 선수지만, 리시브 라인 전체가 흔들리면 리베로 혼자서 모든 것을 커버하기는 어렵다. 결국 리시브는 개인 능력 이전에 조합과 전술의 문제다. 상대가 목적타 서브로 특정 선수를 집요하게 공략할 때, 이를 분산시키는 로테이션 대응과 초반 전술이 마련돼 있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연패가 길어질수록 또 하나의 문제가 드러난다. 바로 세트 후반의 집중력이다. 20점 전후에서 범실이 늘어나고, 한 번의 실점이 연속 실점으로 이어지는 장면이 반복됐다. 이는 기술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기 운영의 문제다. 리스크가 낮은 선택을 할 구간과, 과감하게 밀어붙일 구간을 명확히 나누지 못하면 팀은 쉽게 뒷걸음질 친다. 타임아웃과 교체 역시 분위기 전환이 아니라 전술 스위치로 사용돼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도 아직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고 페퍼저축은행의 시즌이 이미 실패로 규정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해법은 비교적 명확하다. 리시브 효율이 25~30%대만 회복돼도 팀 구조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리시브가 안정되면 세터의 선택지가 늘고, 시마무라의 중앙 활용이 살아나며, 윙 자원들의 부담이 분산된다. 그렇게 되면 조이는 다시 ‘막기 어려운 해결사’가 된다. 시즌 초반 페퍼가 보여줬던 배구는 결코 허상이 아니었고, 그 출발점은 언제나 리시브였다.

지금의 페퍼저축은행은 다시 바닥에서 출발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초반에 보여준 전력과 선수 구성, 그리고 분명히 드러난 문제와 해법을 함께 놓고 보면, 반등의 여지는 여전히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연패를 끊는 한 경기보다, 그 이후에도 무너지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리시브를 살리고, 공격을 다시 분산시키는 것. 이 단순해 보이는 과제가 해결될 때, 페퍼저축은행의 시즌은 다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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