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수주 경쟁력은 큰 도전을 받고 있다. 지난해 한국 유일의 항공기 체계종합 업체임을 내세우며 수주전에 나섰으나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본업인 항공, 신사업인 우주가 모두 부진한 가운데 주도권을 탈환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았다.
'수주 부진' 신사업 주도권 멀어졌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KAI는 지난해 주요 수주전에서 경쟁사에 밀리면서 성과가 부진했다. 특히 방위산업을 신사업으로 육성 중인 대한항공에 3연패를 당하면서 항공 경쟁력이 흔들렸다.
지난해 4월 사업비 9613억원의 육군 UH/HH-60(블랙호크) 성능개량 사업에서 대한항공 컨소시엄에 패했다. KAI는 블랙호크 원제작사인 미국 시콜스키와 이스라엘 엘빗시스템즈, 한화시스템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기술 경쟁력을 내세웠으나 창정비에서 강점을 지닌 대한항공 컨소시엄에 패했다.

또 9월 사업비 1조7775억원의 한국형 전자전 항공기(전자전기)를 비롯해 10월 약 3조원의 공군 차세대 항공통제기(조기경보기) 2차사업도 대한항공 컨소시엄에 내줬다. 이들 사업은 기존 항공기를 들여와 항전장비를 장착하는 개조 역량이 핵심인 만큼 수십 년간 군용기와 민항기의 창정비 경험을 축적한 대한항공이 유리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KAI는 양산 예정인 무기 체계를 개발하는 체계개발 역량을 가졌으나 대한항공은 창정비 역량에 더해 LIG넥스원과 미국의 L3해리스 등 항전장비 강자들과 컨소시엄을 꾸리며 우위를 점했다.
우주 분야에서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한국 최초의 민간 주도 정지궤도 위성 개발사업인 '천리안 위성 5호 시스템·본체' 수주전에서 LIG넥스원에 패했다. KAI는 차세대 중형위성, 국방위성 개발사업 등에 진출해 다수의 위성 완성체를 개발한 경험이 있어 수주가 유력해 보였으나 무산됐다. KAI는 LIG넥스원의 위성 역량이 자사 대비 부족함에도 기상청과 한국기상산업기술원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며 공식 이의를 신청한 상황이다.
KAI는 2023년 초 중장기 전략을 밝히며 2050년까지 매출 40조원을 달성해 세계 7위 방산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다만 전자전기, 항공통제기 개발 등 항공사업을 비롯해 천리안 위성 5호 등 우주사업에서도 수주가 부진하면서 주도권에서 멀어졌다. KAI가 패배한 모든 수주전은 업계에서의 위상 확보에 더해 후속까지 연계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사업이다.

KAI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지정학적 리스크를 타고 급성장을 이룬 4대 방위산업체 중 성장세가 가장 뒤떨어져 있다. 성장 모멘텀을 확보해야 하지만 수주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높아진 전투기 의존도 '매출 다변화' 관건
방산은 정부 의존도가 높은 만큼 국방비 예산에서 방위력 개선비가 얼마나 편성되느냐에 따라 대금 회수 리스크가 좌우된다. KAI의 연간 매출 중 약 절반은 방위사업청 등 내수에서 발생하며 지난해 내수 비율이 48.41%에 달했다.

한국 공군에 납품돼 내수 매출 성장을 이끌 KF-21은 KAI의 성장 모멘텀이지만 대금 지연 등의 리스크도 존재한다. KAI의 지난해 말 연결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609억원에 불과해 유동성이 고갈된 건 KF-21 등 최초 양산을 위한 선발주 투자로 현금을 사용한 데 따른 것이다. 올해 1분기 내에만 1조원을 외부에서 빌려 위기를 넘겼고 유동성 개선은 납품 대가 수령에 달렸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2024년부터 2028년까지 5개년으로 진행되는 KF-21 개발예산 8조3840억원 중 절반 이상을 내년 이후로 배정하기로 하면서 올해는 대금 회수가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KAI는 한국수출입은행이 최대주주라 공기업 성격이 강하지만 코스피 상장사이자 민간 법인이다. 실적과 재무구조 안정화에 나서려면 수주 확대로 매출처를 다변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50년까지 매출 40조원이라는 재무적 목표를 달성하려면 고정익·회정익과 기체부품에 치중한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신사업에 진출해야 한다. 지난해 KAI의 별도 매출 3조6252억원 중 90% 이상이 고정익·회정익과 기체부품에서 발생했고 무인항공기(UAV)과 위성 등의 사업 비중은 9.62%(3488억원)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수주 성과가 중요한 시점이다. 지난해 말 기준 수주잔고는 27조3437억원으로 주요 사업에서의 실주에도 불구하고 전년대비(24조6994억원) 10.71% 증가했다. 다만 이는 KF-21, FA-50 등 자체 개발한 전투기와 후속지원, 부품공급 등 기존에 독점적 지위를 지녔던 방산에서 나온 실적이다. 방산 수주잔고는 2024년 말 8조3618억원에서 2025년 말 10조9868억원으로 31.39% 증가했으나 같은 기간 위성사업 등 수주잔고는 7509억원에서 7837억원으로 4.37% 증가하는데 그쳤다.
KAI의 주력인 전투기는 러우 전쟁 이후 동유럽을 중심으로 국방비 확대 기조가 나타나며 수출이 증가할 수 있으나 최신 전투기의 높은 가격으로 인해 수요 증가 폭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반면 신사업 시장의 성장 전망은 가파르다. 군용 무인기 시장은 2026년 약 207억달러에서 2035년 665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10년간 연구개발(R&D) 등을 합친 총투자액은 25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위성 등 우주 시장은 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가 확대되고 재사용 발사체로 인해 발사 비용이 감소하면서 항공산업 대비 높은 성장세가 예상된다.
KAI는 2024년 11월 항전장비와 위성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제노코의 지분 37.95%를 취득했고 종속기업으로 편입했다. 위성통신부품 제조업을 하는 제노코와의 사업결합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한다는 계획으로 유동성이 말라간 가운데서도 545억원을 들여 경영권을 인수했다.
신사업에 투자한 성과도 내야 한다. 업종 특성상 대규모 R&D 부담에 비해 기술·사업 리스크가 크고 시장 수요도 제한적이다. KAI는 2023년 중장기 전략을 밝히며 2027년까지 R&D에 1조5000억원을 투자해 신사업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KAI 측은 "실제 R&D 투자 비용은 2023년 3738억원, 2024년 3029억원 등이며 2025년에도 유사한 수준을 유지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나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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