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예뻤던 엄마의 외모 유전자를 이어받은 딸의 모습
(Feel터뷰!) 넷플릭스 '기생수'의 전소니 배우를 만나다
넷플릭스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는 기생생물이 한반도에 떨어지면 어떨지 상상으로 시작된 이야기다. 원작 <기생수>는 이와아키 히토시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했으며, 일본에서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오랜 팬이라는 연상호 감독이 류용재 작가와 한국적인 상황과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 [기생수: 더 그레이]를 내놓았다. 때문에 원작과는 컨셉만 공유한 전혀 다른 세계다.
원작에서는 주인공 ‘신이치’와 ‘미기(오른쪽이)’가 한 몸처럼 티키타카 호흡을 맞추는 과정을 보여주었다면, 한국판에서는 ‘수인’의 몸에 기생하는 ‘하이디’가 일정 시간만 등장할 수 있다는 차별점을 탁했다. 따라서 오리지널 이야기, 캐릭터로 한국적인 색깔을 더해 혼자서 살 수 없는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의 ‘공존’과 ‘공유’를 기생생물과 고민하는 철학이 담겼다.
원인불명의 기생생물이 한국에 출연해 인간을 숙주로 삼아 세력을 확장하려고 한다. 이를 저지하기 위한 ‘더 그레이’라는 전담팀이 꾸려져 ‘준경(이정현)’은 팀장으로 활약한다. 한편,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기생생물과 엮이게 된 ‘수인(전소니)’은 가끔씩만 등장하는 기생생물 ‘하이디’와 공생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러던 중 세력을 넓혀가는 기생생물은 변종으로 취급되어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우연히 조직에서 배신당한 것도 모자라 가족이 몰살당한 ‘강우(구교환)’와 파트너가 되어 기생생물이 지배하려는 세상에 당당히 맞서며 성장한다.
그중 우울한 수인과 차가운 하이디 1인 2역을 소화한 전소니를 지난 4월 9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 나누었다. 전소니는 본인 얼굴이 여러 모습으로 바뀌는 독특한 선택을 했다. 삼십 대 초반인데 또래 배우와는 다른 노선이라 두려움이 없었을지 묻자 “하나라도 더 새로운 캐릭터와 만나고 싶은 마음이다"라며 의욕적으로 답했다.
그래서일까. 얼굴의 반이 열리면서 촉수가 쏟아져 나오는 기이한 모습이 혐오스럽다가도, 완전히 하이디가 잠식한 모습으로 등장하면 발그레한 눈 주변과 볼이 새침해 보이기도 했다. 전소니의 원래 얼굴보다는 수인과 하이디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몰입감을 높였다.
전소니는 2017년 영화 <여자들>로 데뷔해 독립영화계의 전설로 불렸다. <죄 많은 소녀>(2018), <악질 경찰>(2019), <소울메이트>(2023)에서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어려 번 소화했다. 드라마 [화양연화- 삶이 꽃이 되는 순간](2020), [당신의 운명을 쓰고 있습니다](2021), [청춘월담](2023) 등 다채로운 연기 변신을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특히 어머니 고재숙은 1970년대 활동한 여성 듀오 ‘바니걸스’의 멤버였으며, 동생 전주니까지 뮤지션으로 데뷔해 두 자매가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로 경력을 쌓아왔다.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에서 전 세계로 동시 공개되는 첫 작품이다. 참여 배우들은 그 인기 척도를 개인 SNS의 외국어 댓글이나 팔로워로 실감한다고 한다.
“아.. 저는 아직 댓글을 보지 못해서.. 그 부분은 잘 모르겠는데.. (웃음) 엄마하고는 아직 연락을 안 해봤다. (웃음) 드라마는 보시고 모니터링을 해주시는데 넷플릭스는 사용법을 몰라서 못 보신 거 같다. 제가 가서 틀어 드려야겠다.
아직 조심스럽지만 팀 분위기가 좋아서 다행이다. 지인들이 재미있게 봤다고 해줄 만한 작품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웃음) 오랜만에 해외에 있는 친구들이 여기 사람들이 좋아하더라며 전해주는 소감이 그저 신기하고 감사했다.
시사로 봤었는데 그전까지는 ‘재미있는데 내가 다른 감각을 가졌으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들었다. 공개 후에는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조마조마했다. 재미있게 봐주는 것 같아 다행이다. 하이디가 귀엽다는 반응이 은근히 있어서 기분 좋았다. (웃음)”
-원작이 있는 작품은 환호와 실망이란 피치 못할 호불호가 생긴다. 잘해도 못해도 부담이다. [기생수: 더 그레이]의 어떤 부분이 매력적으로 끌렸나.
“너무 여러 가지인데 일단 하이디와 공존이라는 컨셉이 욕심났고, 놓치면 안 되겠다 싶어서 고민 없이 선택했다. 원작을 좋아했고 한국을 배경으로 한 게 뿌듯했다. 장르물에 최고인 연상호 감독을 믿었다. 저라는 배우를 데리고 어떤 인물을 만들어 낼지 궁금했다.
원작의 부담감이 당연히 있지만 어쩌겠나. 어차피 100%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으니 걱정은 일단 미뤄두고 작품 자체를 해석하고 소화하는 데 집중했다.
그래도 작품을 통해 어느 정도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원작 팬도 어느 정도는 만족시킬 성공이라고 봤다. 각자 다르게 해석할 수 있어 장담하기 힘들지만. 서로 다른 존재를 바라보고 인식하고 마주쳤을 때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있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던 수인이 전혀 다른 존재인 하이디와 만나, 다른 사람들과도 소통과 교류하면서 달라진다는 점이 좋았다. 일종의 사회화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원작과는 확연히 다른 설정이 바로 기생생물이 침투한 신체 부위다. 한국판에서는 1인 2역을 해야 했다.
“애초에 1인 2역인 줄 몰랐다. (웃음) 원작 기생수를 생각하고 기생생물을 연기하는 성우분과 호흡 맞춰가면 되겠고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제가 든 다 해야 한다고 들으니 덜컥 겁이 났었다. 그래도 혼자 하면 힘들 테지만 하이디의 표정이나 움직임을 만들어 주시니까 재미있었다”
-수인과 하이디는 외모뿐만 아니라 목소리나 성격도 확연히 다르다.
“하이디가 사람이었으면 훨씬 어려웠을 거다. 어떤 성격이든 인간과 기생생물이다 보니 서로 다른 존재처럼 보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욕심낸 부분은 인간일 때는 최대한 인간적으로 그렸다. 사회생활에 어렵거나 힘든 삶의 방식을 탄탄하게 쌓으면 같은 몸을 쓰더라도 달라 보일 거라 믿었다.
하이디의 외모는 연상호 감독님이 촉수를 뻗을 때와 아닐 때의 하이디도 차별점이 있어야 한다는 조언을 수용한 분장팀의 결과물이다. 하이디는 붉은 얼굴을 했고 수인은 피로하고 지쳐 있고 모든 게 권태로운 사람으로 해석해서 거칠고 생기 없는 톤의 분장으로 도움받았다”
-수인은 아버지를 폭력에 못 이겨 경찰에 신고했었다. 돌봐줄 사람이나 주변에도 사람이 없이 외로운 아이다.
“철민 아저씨(권해효)가 옆에서 가족처럼 챙겨주고 어려울 때 찾아오라고 했지만 아저씨가 막상 해결해 줄 부분은 적었을 거다. 인생이 오롯이 혼자라는 외로움이 컸을 거 같았다. 다행히 강우를 만나면서 다른 에너지를 발견하고 함께 각성해 나가는 게 좋았다. 같은 생각으로 무언가를 해 나간다는 게 수인을 강하게 만드는 거 같아서 반가웠고 기특했다”
-배우라면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텐데. 항상 캐릭터와 작품 선택에 도전 의식이 느껴진다.
“수인과 하이디의 얼굴은 캐릭터의 얼굴일 뿐이다. 저도 평소에는 예쁘지 않지만 예쁘게 보이고 싶다. (웃음) 그런 면에서는 무딘 편이다. 회사에서도 제가 외모적인 부분에 신경 쓰지 않을 걸 안다. 작품 안에서 예쁘게 보이기 보다 어떤 것을 더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어디서 이런 얼굴을 보여줄 수 있겠나? 다른 얼굴을 드러낼 좋은 작품이었다”
-연기 경력을 차근차근 쌓아 왔지만 넷플릭스라는 대자본, 원작의 인기, 글로벌 스트리밍 등 주연으로서 6화를 끌고 가야 하는 부담감과 책임감도 느껴졌을 것 같다.
“첫 상업영화를 했을 때도 비슷한 질문을 들었는데, 제가 리드해야 하고 작품 전체를 책임져야 의식보다. 제 역할을 책임지는 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작품이 혼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 혼자서 책임질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연차가 쌓여가면서 태도의 변화는 확실했다. 현장에서 분위기를 잘 만들어주는 게 중요한데 다행스럽게도 좋은 배우, 선배님들과 일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고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고, 그걸 보고 배웠다”
-과거 <소울메이트> 때 인터뷰에서 작품 하나하나에 용기를 내서 임한다고 했었다. 이번 작품은 유독 용기가 필요한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그때 그런 답을 드린 건 타고난 저의 기질 같은 거다. ‘기생수’에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기보다, 매번 욕심나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니까 항상 두려운 마음인 거다. 그래도 막상 현장에 가서는 물러설 수 없으니까. 매일 최대한의 용기를 내고 있다. 모든 신에 용기가 필요하다. (웃음)”
-이번에 본격적인 액션을 해야 했다. 머리에서 촉수를 뻗어내는 장면은 연기하기에 쉽지 않은 작업이었겠다.
“<악질경찰>이나 [청춘월담]도 액션 장면이 있어서 약간의 흥미를 느끼고 있었는데 [기생수: 더 그레이]는 그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웃음) 왜냐하면 몸의 움직임 보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었기 때문이다.
다들 저를 우습게 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이겨내야 했었고, 보이지 않는 데 같이 움직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히 다른 기생생물 배우들과 같이 의지하면서 해나갔다.
하이디의 목소리 톤에 대한 것도 여러 버전이 있었는데 감독님의 원하는 톤에 맞추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지금 하이디의 톤이 완성되었다”
-함께 독립영화계 스타였던 구교환, 캐릭터 소화력이 탁월한 이정현과도 호흡을 처음 맞춰봤다.
“너무 재미있었다. 사실 구교환 배우가 연기하는 걸 눈으로 보고, 대사를 주고받고 싶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았고 촬영이 늘 기대되었다. 애드리브가 많아서 어떤 걸 던져 줄지 몰라 기분 좋은 긴장감이 생겼다.
이정현 배우는 (출산 후) 충분히 쉬지 못했던 상황인데 액션 분량도 많아서 걱정되었다. 그런데 항상 웃는 얼굴로 현장 분위기를 리드해 주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사랑스럽고 다정하고 좋은 면을 찾아주는 배우셨다”
-연상호 감독의 캐스팅 이유가 수인과 하이디에 어울리는 그림체라는 표현을 했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나.
“처음에 감독님은 독립영화를 보고 함께 일하고 싶었다면서, 어떤 작품으로 함께 하게 될지 고민하다가 ‘기생수’가 될 것 같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얼마 전에는 또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림체만 보고 선택해서 기대가 없었는데 작업해 보니 좋았다고. (웃음) 저도 만족스럽다. 하이디는 캐스팅 후 만드신 캐릭터라 저와 하이디의 조화가 마음에 들었다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배우는 본인 연기를 객관화하다 보면, 늘 불만족스럽다고 말한다. 기회가 된다면 재촬영하고 싶다고도 한다. 혹시 만족스럽지 못한 장면이 있었나.
“배우라는 직업이 좋은 건 촬영이 종료되면 진짜 끝이라는 거다. 고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안심이다. 변명한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찍어서 잘할 거면 누가 못하겠나.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겠지 생각할 뿐, 다음번에는 더 잘해야지, 저번처럼 하지 말아야지를 생각할 따름이다”
-만약 시즌 2가 제작된다면 어떤 상상을 해봤는지 궁금하다. 신이치와 미기의 감정 교류만큼, 수인과 하이디는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있겠다.
“시즌 2가 만들어지면 주인공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신이치와 미기를 작품 안에서라도 꼭 만나보고 싶다. 저랑 함께 담기는 장면을 눈으로 보고 싶다. (웃음)
아무래도 원작 팬들은 그 부분이 아쉽게 느껴질 것 같다. 저도 신이치와 미기처럼 수인과 하이디가 좀 더 친해지는 계기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나마 다행인 게 강우라는 연결점이 있다는 거고, 또 어쩌면 강우 없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생겼으면 좋겠다”
-이야기를 나눠 보니 일어나지 않은 일의 기대를 섣불리 한다거나 과거에 얽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성격은 아닌 것 같다. 현실을 추구하는 게 강하게 느껴지면서도 스스로에게 엄격한 것 같다.
“여러 가지를 상상하고 기대해 봤자 크게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성격이다. 그게 작품을 선택할 때도 그게 반영되는 거 같다. 하이디는 닮은 점이 없었는데 닮고 싶을 만큼 멋있는 캐릭터라서 좋아하는 건 있다.
스스로 미덥지 못한 사람이라서 그렇다. 배우는 대본을 받고 뭘 해야 하는지 대부분 몰라 한다. 전에 했던 과정을 똑같이 밟아서 도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르, 감독에 따라 준비 과정이 다를뿐더러 성공에 도착하기도 어렵다.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도 잘 모르겠고 그게 불안해서 그때그때 열심히 한다고 말한 거다.
항상 불안한 마음이 꼭 싫지만은 않고 또 불안에 잠식당하는 건 아니다. 첫 촬영을 기다리면서 일주일을 보내고, 공개 날짜를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게 습관이 되어버려서 잘 안 고쳐진다. 적당히 기대하고, 적당히 노력하고 싶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불안을 즐기면서 연기해야 하는 것 같다”
-차기작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멜로무비]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
“기존의 멜로와는 다른 멜로일 것 같고 그동안 해왔던 캐릭터보다는 가장 저와 닮았다. 현실적인 인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연기가 좋았다는 주변의 칭찬을 안 믿는 눈치다. (웃음)
“평소에 쓴소리하는 사람이 하는 칭찬은 믿고 좋은 면을 칭찬하는 건 쉽다고 여기는 게 싫다. 알면서도 잘 안된다. 주변에서 절 아는 친구들이 좀 진심으로 칭찬해 주면 믿고 좋아해 주라고 조언해 준다. 근데 저는 또 누가 칭찬해 주면 기죽어 보여서 그런가 싶어서 그대로 못 받아들이겠다. (웃음) 노력이 필요한 성격이다.
나쁜 말은 잘 퍼지고,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고, 시끄럽고 밉다. 좋은 말은 반대인 게 속상하다. 그래서 저도 앞으로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여기저기 말하고 싶다. 지나가 버리면 모르고 사라지는 아까운 감정이라 저는 되도록 칭찬을 많이 하려고 한다. (웃음)”
-이제 어엿하게 대세 감독, 작가의 선택을 받는 배우로 성장했다. 앞으로 꿈이 있다면?
“최대한 저를 재료로 한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 저도 나이 들면서 변해가니까 여러 방면으로 활용해 보고 싶다. 모두가 인정하는 작품에 캐스팅되거나 큰 스케일이 문제가 아니다. 저를 믿고 찾아주시는 것에 감사하고 여러 창작자와 다양한 시도를 해봤으면 좋겠다”
글: 장혜령
사진: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