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럽의 대명사’ 패리스 힐튼이 몰고온 나비효과…“저런 손녀한테 물려줄 바에는” [추동훈의 흥부전]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2023. 6. 3.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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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04] 콘래드 힐튼

끝 보이는 팬더믹, 뉴노멀 기다려온 호텔업계
2020년 설 연휴를 기점으로 3년 넘게 전 세계를 마비시킨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유행이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정부는 5월 31일 코로나19 확진자의 7일 격리 의무를 면제하며 코로나 19 위기경보를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했습니다. 즉 6월부터는 확진자의 격리 의무도 해제되며 선택적 격리와 함께 외출도 가능합니다.

본격적인 엔데믹이 다가오며 수혜주들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여행, 관광, 항공, 크루즈 산업이 대표적입니다. 올 여름 그간 억눌렸던 여행수요가 폭발하며 역대급 호황을 일찌감치 예고한 가운데 그간 움츠려왔던 호텔들 역시 본격적인 손님맞이에 나설 채비가 한창입니다.

힐튼 홈페이지
그래서 준비한 오늘의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 바로 콘래드 힐튼입니다. 힐튼은 메리어트, 하얏트 등과 더불어 세계 5대 호텔 체인의 하나로 ‘이름이 곧 브랜드’의 대명사입니다.

2000년대를 전후해 1세대 영앤리치라 불리는 힐튼가 상속녀 패리스 힐튼 덕에 그 유명세는 더했지만 그간 잘 성장해온 힐튼 가문의 명성에는 먹칠을 했다는 평가도 나왔죠. 오늘은 패리스 힐튼의 증조할아버지이자 힐튼 호텔의 창업자 콘래드 힐튼의 창업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콘래드 힐튼
전세계 7천개 호텔 보유한 호텔왕, 힐튼의 시작
현재 19개 브랜드, 122개국, 7215개의 호텔을 보유한 힐튼 그룹. 그 시작은 미미했습니다. 1887년 미국 뉴맥시코주에서 독일계 이민자로 태어난 콘래드 힐튼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운영해온 자그마한 잡화점에서 점원으로 일한 그는 장사의 기초를 배웠습니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콘래드는 뉴멕시코 주에서 공화당 소속 주 의회 의원으로도 일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제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육군 소속으로 참전해 복무를 마친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텍사스 시스코로 이주해 사업의 구상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은행업에 관심을 가졌지만 손을 대는 것마다 번번이 실패했고 좌절에 빠졌던 그는 텍사스 시스코에 있는 한 호텔에 투숙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호텔 주인과 대화를 나누던 그는 주인이 호텔 경영권을 넘기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호텔의 영업은 제법 잘 되는 편이었고 재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려본 콘래드는 호텔을 인수해 경영을 해볼 결심을 굳힙니다.

모블리 호텔 <출처=힐튼 홈페이지>
그는 그간 모아왔던 5000달러와 친구와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을 모아 인수에 성공합니다. 1919년 콘래드 힐튼이 인수한 호텔이 바로 지금 힐튼가의 모태라 할 수 있는 모블리 호텔입니다.
1919년, 첫 호텔 사업을 시작하다
이때부터 콘래드 힐튼은 호텔업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단순히 잠깐 쉬고 잠을 잘 공간을 제공하는 게 전부였던 당시의 호텔과 달리 튼의 호텔은 달랐습니다. 부족했던 방을 더 늘리고 작은 상점을 호텔안에 열어 칫솔, 신문, 잡지, 면도기 등을 팔았습니다. 잡화점에서 일해본 경험이 빛을 발하며 이 작은 잡화점에서 꽤나 짭짤한 수익이 나왔습니다. 힐튼의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습니다. 1년 뒤 포트노스에 두 번째 호텔을 인수한 데 이어 호텔 개수를 늘리고 힐튼의 경영철학을 녹여냈습니다.

첫 호텔을 인수한 지 6년 만인 1925년, 콘래드 힐튼은 텍사스의 대도시 댈러스에 객실 300실 규모의 댈러스 힐튼 호텔을 개장했습니다. 이 호텔은 ‘힐튼’ 브랜드가 처음으로 들어간 첫 호텔로 최초의 고층호텔입니다.

댈러스 힐튼<출처=힐튼 홈페이지>
가장 볕이 들지 않는 서쪽편엔 엘리베이터와 세탁물 이송 장치, 환기구 등을 설치해 공간 활용도를 극대화했습니다. 이어 1927년엔 댈러스 웨이코에 세계 최초 에어컨을 설치한 호텔을 선보이며 또다시 최초의 기록을 세운 호텔이 됩니다. 10년간 호황을 누려온 호텔 산업은 대공황을 맞으며 크게 어려워졌습니다. 사람들은 코로나19 대유행때 처럼 여행을 다니지 않기 시작했고 호텔업자들의 줄도산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전체 호텔업자의 80%가 대공황에 파산했습니다. 힐튼 역시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 콘래드가 직접 고객을 맞아가며 겨우 위기를 넘겼습니다. 얼마나 딱해 보였던지 호텔에 근무하던 벨보이가 콘래드 힐튼에게 돈을 꿔주기도 했습니다.

대공황의 위기를 넘긴 힐튼 그룹은 다시 성공 가도를 달렸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미국 경제에 온기를 불러일으킨 데 이어 미국을 제1의 강대국으로 변모시키면서 미국 경제는 부흥했습니다.

모든 것이 업계 최초였던 호텔 왕의 꿈
1943년 힐튼은 뉴욕 맨하튼에 진출합니다. 영화 ‘나홀로 집에’의 배경으로도 유명한 플라자 호텔과 루즈벨트 호텔을 인수한 것입니다. 이어 1945년 콘래드는 미국 동북부 최대 도시 시카고의 스티븐슨 호텔을 매입했습니다. 객실 규모만 3000여개로 세계 최대 규모의 호텔도 힐튼의 손에 들어옵니다. 이후에도 호텔산업계의 최초 기록은 힐튼의 독차지입니다.
호텔 객실 최초로 TV를 설치한 힐튼 <출처=힐튼 홈페이지>
1947년 힐튼은 객실에 최초의 TV를 설치합니다. 1955년엔 중앙 예약 사무소 ‘힐크론(HILCRON)’을 만들어 세계 최초의 객실 예약 시스템을 만들었고 1959년엔 300실 규모의 샌프란시스코 에어포트 힐튼 호텔을 만들어 최초의 공항 호텔을 도입합니다.

힐튼은 1946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데 이어 호텔 경영자로는 처음으로 1949년 미국의 타임지 표지모델로 발탁되며 그의 명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립니다.

호텔경영인 최초로 타임지 표지모델에 발탁된 콘래드 힐튼
규모의 성장을 이뤄낸 힐튼의 경영철학은 ‘가볍고 따뜻한 접대(light and warm hospitality)’에서 시작합니다. 로비에 작은 쇼핑 시설을 설치하고 호텔 객실에서 외부로 바로 전화할 수 있는 직통 전화의 도입 등 세세하고 섬세한 배려는 고객들에 큰 감동을 줬습니다.

고객을 최우선하며 공간에 서비스 개념을 결부시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온 힐튼식 호텔 경영은 현재 모든 호텔업의 표준이 될 만큼 혁신적이며 핵심을 관통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콘래드 힐튼은 1964년 미국 내 호텔 체인 사업을 아들인 배런 힐튼에게 넘겨줬습니다. 그는 은퇴를 선언한 대신 글로벌 호텔 체인 사업확장에 공을 들이며 노년까지 왕성한 사업역량을 발휘합니다. 1970년대엔 카지노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의 플라밍고 호텔을 인수해 미국 최초로 게임사업과 호텔사업을 겸한 상장사로 등극하기도 합니다. 이 호텔이 지금의 라스 베거스 힐튼입니다.

라스 베거스 힐튼
콘래드 힐튼은 1979년 92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습니다. 유수의 재벌가 가문 중 가장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힐튼 가문은 이렇게 콘래드 힐튼의 작은 손에서 시작됐습니다. 힐튼 그룹은 1982년 창업자를 기리며 콘래드 호텔 브랜드를 전 세계 주요 상업 도시와 관광도시의 럭셔리 호텔 체인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구상을 발표합니다. 서울 금융의 중심, 여의도에 있는 콘래드 호텔이 바로 이러한 콘래드의 정신이 담긴 호텔인 셈입니다.

콘래드 힐튼의 경영철학은 그의 말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비전이 크면 경쟁자도 없다’

‘크게 생각하고 크게 행동하고 크게 꿈꿔라’

콘래드 힐튼(왼쪽)과 아들 배런 힐튼<출처=힐튼 홈페이지>
‘비전이 크면 경쟁자도 없다’는 힐튼의 경영 철학
그의 말은 항상 크고 넓습니다. 그릇의 크기가 결국 사람의 크기를 결정짓는다란 이야기처럼 항상 넓고 큰 세상을 바라보며 더 큰 꿈과 목표를 향해갔던 힐튼의 철학이 있었기에 지금의 힐튼 가문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글을 마치기 앞서 팩트체크 한가지. 오늘의 이야기 서두에 다뤘던 힐튼가 상속녀 패리스 힐튼. 그녀는 사실 자신의 할아버지로부터 땡전 한푼도 상속받지 못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패리스 힐튼의 할아버지 배런 힐튼은 콘래드 힐튼의 아들이자 지금의 글로벌 힐튼 브랜드로 성장시킨 인물입니다.

힐튼 창업자 콘래드가 전 재산의 97%를 사회에 기부하며 3%만 자식에게 상속한 것과 마찬가지로 배런 역시 전 재산의 97%를 힐튼 재단에 기부하고 3%만 자녀들에게 상속했습니다. 헌데 원래 배런은 자신의 재산을 전부 자녀들에게 상속할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을 바꾸게 한 사건이 있었으니 그게 다름아닌 사고뭉치 손녀 패리스 힐튼의 기행이라고 합니다. 패리스 힐튼이 흥청망청 돈을 쓰고 사치와 유흥으로 점철된 삶을 방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본 배런 힐튼은 기존의 생각을 바꾸고 부친과 마찬가지로 전 재산의 97%를 기부하기로 결심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특히 이러한 상속 재산 중 패리스 힐튼에게 직접 상속한 재산은 한 푼도 없었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입니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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