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명성 어디에…잊혀지는 ‘오프화이트·슈프림·나이키’[케이스스터디]
LVMH, 지분 인수 3년 만에 오프화이트 지분 매각
슈프림, 가품 논란으로 신비주의 잃고 희소성 상실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지역 진출 확대 '독'으로
이커머스 시대 따라가지 못한 나이키, 인기 하락
호카, 온홀딩 등 신흥 스포츠 브랜드 경쟁력 강화
[케이스 스터디: 실패에서 배운다]
모든 브랜드는 4단계를 거친다. 이름을 알리는 도입기를 지나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는 성장기를 맞는다. 이후 점유율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성숙기가 되면 브랜드는 안정적으로 운영된다.
다음은 쇠퇴기다. 대체품이 나오거나 이미지에 타격이 생길 때 또는 고객이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면 브랜드의 수명은 끝나게 된다. 인기가 떨어진 브랜드는 되살아나기 어렵다.
한때 유럽의 콧대 높은 명품 브랜드를 놀라게 한 오프화이트가 대표적인 위기 브랜드다. 창업자 버질 아블로의 영향력만으로 설립 1년 만에 파리 패션위크까지 진출했다. 명품 대기업 LVMH가 나서서 지분을 사들이며 회사의 잠재력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전 LVMH는 이 지분을 다른 업체에 넘기며 손을 뗐다. 버질 아블로가 떠나면서 정체성이 사라진 탓이다.
미국의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도 마찬가지다. 브랜드가 기업화되면서 희소성과 신비주의 전략이 사라졌고 이로 인해 충성도 높은 팬들이 떠났다. 나이키도 위기다. 쇠퇴기로 향할지 갈림길에 섰다. 운동화의 대명사이자 영원한 1등으로 불린 나이키의 몰락은 업계에 충격을 안겼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기존의 전략을 고집했으며 위기의식도 없었던 결과다. 이들은 왜 잊혀지고 있을까.
◆ 실패 요인 1. 정체성 상실
오프화이트의 하락은 정체성 상실 영향이다. 브랜드 설립자이자 미국 힙합가수 칸예 웨스트의 창작 회사 돈다(Dond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유명세를 얻은 버질 아블로가 2021년 사망하면서 브랜드 가치는 급격히 떨어졌다.
버질 아블로는 흑인 최초로 루이비통의 수석 디자이너가 될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고 2013년 자신의 브랜드인 ‘오프화이트’를 설립하면서 그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2007년 자신의 블로그 ‘더 브릴리언스(The Brilliance)’를 통해 “디자이너도 록스타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하며 패션 철학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오프화이트는 아블로가 디자인을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기를 얻었다. 아블로는 럭셔리, 예술, 음악, 여행 등 예술 분야와 관련한 생각들을 결합해 옷을 만들었고 설립 1년 만에 파리 패션위크에 진출하며 유럽 명품들과 같은 선상에 올랐다.
설립 초기부터 연예인은 물론 스트리트 브랜드 마니아들과 소매업체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친구인 칸예 웨스트를 시작으로 제이지, 비욘세, 리한나, 드레이크, 저스틴 비버 등이 오프화이트를 즐겨 입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2017년 나이키와 운동화 협업을 발표하면서 패션업계에서 경쟁력을 강화했다.
2021년 7월 LVMH가 오프화이트의 지분 60%를 확보하면서 경영에 관여한 것도 브랜드의 위상이 달라진 영향이다. LVMH는 오프화이트를 북미의 새로운 명품으로 키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2021년 11월 아블로가 사망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후임으로 데이즈드 매거진 편집장이자 아블로의 동료로 같이 활동했던 이브라힘 카마라가 발탁됐지만 아블로와 동일시돼온 브랜드의 영향력을 유지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LVMH는 지난 9월 30일 3년 전 인수한 지분 전량을 ‘블루스타 얼라이언스’에 매각했다. 거래 조건은 공개하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아블로가 없는 오프화이트 브랜드 가치에 대한 의문이 매각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는 “LVMH는 창립자 없이 오프화이트의 유산을 이어가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여기에 스트리트 웨어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고 글로벌 명품 시장이 침체되는 상황이 겹쳐 매각 결정이 나왔다”고 전했다.
나이키도 마찬가지다. 달리기 커뮤니티 기반으로 성장했지만 매출을 위해 한정판과 유명 연예인, 엘리트 선수 집중 전략을 확대하면서 상대적으로 커뮤니티 마케팅은 줄였다.
스포츠 브랜드의 커뮤니티 관리는 매출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하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잠재적인 고객 소통도 가능하며 충성도를 높여 타 브랜드로의 이탈도 막을 수 있다. 나이키의 성공 역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디지털 마케팅 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결과다.
실제 나이키는 소규모 러닝 커뮤니티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지만 파리 올림픽 후원에 치중한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그러나 이마저도 여성 선수복의 과도한 노출 논란이 일어나면서 실패한 후원으로 남게 됐다.
◆ 실패 요인 2. 희소성 상실
악동 브랜드로 유명한 슈프림의 문제는 ‘희소성 상실’이다. 희소성은 슈프림이 설립 초기부터 내세운 핵심 전략으로 브랜드의 가치관과도 직결된다. 진출 국가는 전 세계 8개국(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대한민국, 중국)에 불과하고 판매하는 제품도 많지 않다. 이 모든 것은 슈프림이 신비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최우선 정책이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슈프림의 가품이 인기를 끌었다. 2010년대 국내에서는 상표권 등록을 하지 않아 단속 대상에서 제외됐고 동대문패션타운, 남대문시장, 명동 등에서 가품 슈프림을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슈프림의 신비주의는 최근 들어 약화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슈프림이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과 협업한 2017년 정점을 찍었고 이후 브랜드 이미지가 쇠퇴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주된 요인으로는 △진출 국가 확대 △과도한 이미지 소비 등이다.
슈프림은 지난해 서울에 한국 1호점을 냈으며 올해 3월에는 중국 상하이에도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다. 1년 사이에 아시아 시장에서만 2개의 신규 매장을 오픈했다. 그간 슈프림은 일본에서만 6개 매장을 운영해왔으나 최근 들어 아시아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진입 장벽을 허물었다. 이에 따라 슈프림은 전 세계 총 17개 매장을 운영하게 됐다. 슈프림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향후 남미 시장에도 적극 진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높아진 접근성 탓에 희소성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의 패션 웹매거진 ‘하이스노비어티(HIGHSNOBIETY)’는 “세계 최대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슈프림이 사라질 수 있다”며 “슈프림은 스트리트 용어로 ‘죽었다’고 표현할 수 있다. 브랜드는 더 이상 쿨하지 못할 만큼 커졌고 문화적 관련성도 줄었다”고 전했다.
슈프림의 모기업이자 노스페이스를 소유한 VF코퍼레이션이 지난 7월 아이웨어 그룹 에실로 룩소티카에 슈프림을 매각한 것도 브랜드 가치 하락의 영향이다. 2020년 슈프림을 인수한 지 4년 만의 매각이며 당시 룩소티카가 지불한 금액(21억 달러)에 훨씬 미치지 못한 15억 달러에 매각했다.
포춘은 “VF코퍼레이션의 슈프림 인수가 처음에는 혁신적이라고 여겨졌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간 것”이라며 “15억 달러는 인수 3년간 브랜드 가치가 약화한 것을 반영한 금액”이라고 전했다.
◆ 실패 요인 3. 전략의 상실
나이키는 이커머스 시대에 맞는 전략을 내놓지 못했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제품 또는 브랜드를 한 공간에서 비교하고 구매할 수 있는 아마존, 알리익스프레스 등에 익숙해졌고 이로 인해 자사 몰(기업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쇼핑몰)의 인기는 감소했다.
그런데 나이키는 최근까지도 소비자직접판매(DTC) 전략을 유지했다. DTC는 제조사가 중간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방식이다. 입점 수수료, 판매 수수료 등을 줄일 수 있어 비용 절감이 가능하며 고객 데이터를 직접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타 브랜드와 비교가 어렵고 나이키 제품만을 위해 가입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탓에 편의성이 떨어진다.
국내 1위 온라인쇼핑몰 무신사 입점 시기만 봐도 경쟁사인 아디다스와의 전략 차이가 드러난다. 아디다스는 2013년 무신사에 처음 입점하며 소매점 판매 전략을 온라인에 도입했다.
나이키가 무신사에 입점한 것은 올해 4월이다. 나이키는 2025년까지 매출의 60%를 DTC에서 발생시키겠다고 선언하는 등 DTC 전략을 강행했지만 수익성이 악화하자 뒤늦게 이커머스 판매처 다변화를 결정했다. 2021년 미국 메이시스 백화점을 비롯한 여러 유통점과 관계를 끊으면서 DTC 강화에 나선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또 코로나가 끝나면서 MZ세대를 중심으로 운동 트렌드가 확산됐지만 여기에 대응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달리기 시간 등 기록을 측정할 수 있도록 나이키가 2014년 출시한 러닝앱 ‘나이키 런 클럽(NRC)’을 사용하면서도 러닝화는 호카, 온러닝, 뉴발란스 등 다른 브랜드를 착용하는 러너들이 많아졌다.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나이키의 가장 큰 위협은 호카, 온 등과 같은 젊은 브랜드에서 촉발됐다”고 보도했다.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신흥 브랜드들은 나이키를 위협하면서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 韓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 선출…여섯번째 임기
- 농협은행, 140억 부동산 담보대출 이상 거래 발견...형사고소
- “떨이?” 테슬라, 추천인에게 66만원 추가 할인 혜택 시행
- 고려아연, 영풍·MBK 가격경쟁 포기 선언…"시장 교란행위"
- 폴란드에 수출용 잠수함 선보인 HD현대重…"오르카 참여 준비 완료"
- '남성'인지 '여성'인지 스스로 결정...독일, 파격 제도 시행
- 알파벳, 고개가 끄덕여지는 AI 투자 [돈 되는 해외 주식]
- 공감과 감성지능이 만드는 리더십의 힘[IGM의 경영전략]
- “설마가 현실로”...‘충격’ 빠진 반도체 업계
- "트럼프가 진다"...英 일간,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반전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