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시골에서 모내기 하다가 친해진 선남선녀 스타
(Feel터뷰!) Apple TV+ '파친코'의 정은채& 김성규 배우를 만나다
8월 23일 삼성동의 한 호텔에서 정은채와 김성규의 페어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두 사람을 한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는 특별한 만남으로 캐릭터 해석, 케미, 해외 프로덕션의 차이를 들어볼 수 있었다.
-그동안의 연기와는 다른 캐릭터를 선보였다. ‘창호’를 만들기 위해 준비한 점은 무엇인가.
김성규: (이하 김) 창호는 고한수 밑에서 뒤치다꺼리하는 인물로 시키는 일이면 토 달지 않고 묵묵히 일한다. 선자네를 지켜보고 돌보는 것도 그 일환이다. 그동안 누군가와 관계 맺기 어려웠던 인물, 그러지 않아도 되는 인물이 많았다. 창호를 통해 인간 김성규를 비롯해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었다. 그게 새롭기도 하고 우려스러웠던 점이다. 창호가 선자 가족을 만나 변화되었듯 저도 드라마를 통해 성장했다.
시즌 1을 보면서 작은 배역까지도 세계관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더라. 여기에 합류해도 될지, 과연 내가 잘 소화할 수 있을지 막연했다. 원작도 열심히 읽어보고 은채 씨에게 관련 다큐도 추천받아서 보기도 하면서 역사를 더 공부하게 되었다.
실제 그때 살아보지 않아 상상만으로 부족해서 어려웠다. 인간으로서 역경을 헤쳐 나가는 데 중점 두고 저를 체화해서 연기했다. 다시 전쟁이 일어날 거라는 불안한 와중에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희망을 품게 되고 인생도 변하누 창호의 마음을 그려봤다.
-<파친코>를 위해 오디션을 봤다고 들었다. 어떤 연기를 준비했나.
김: 오디션을 준비할 때 개인적으로 고민도 많았고 자존감도 떨어져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데모) 영상 찍으면서도 큰 기대가 없었다. 원작을 읽으면서도 창호는 내가 할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 들었다. 경희와 제가 만든 창호가 매칭이 잘 안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오디션이 너무 깊게 들어가는 상황이 의아해지더라. 은채 씨와 케미스트리 오디션을 봤다. 그때도 제가 해왔던 역할들과 달라 당황했고 은채 씨도 (매체로만 보다 직접) 처음 봐서 낯설었다. 특히 수 휴 총괄 제작자까지 와서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시도하더라. 부끄럽기도 했고 비를 못 한 것만 같았는데 할 수 있는 건 다 하려고 노력했다.
-케미스트리 오디션이라는 독특한 경험을 한 것 같다. 경희와 창호의 어울림에 도움이 된 것 같다.
정은채 (이하 정): 시즌 2에 창호가 등장한다고 했을 때 저뿐만 아니라, 제작진도 누가 캐스팅될지 궁금했던 캐릭터였다. 성규 씨가 말은 겸손하게 했지만 즉흥 연기를 요구해서 어려웠을 텐데 유연하게 변주를 주며 해결해 나가는 시도가 놀라웠다. 그동안에 쌓아온 연륜과 노력을 제작진이 캐치한 것 같다.
성규 씨는 창호와 차분하고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실제로 연기할 때도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웠다. 현장에서도 억지로 친해지려 과한 노력을 하지 않는 태도, 현실과 현장의 적당한 텐션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창호에 어울렸다.
케미스트리 오디션은 연기력을 테스트하는 게 아니다. 개인의 개성과 매력이 캐릭터와 부합하는지 알아보는 자리다. 경희와 창호가 만났을 때 기대했던 호흡과 기대 밖의 호흡(전형적이지 않은)을 발견하는 오디션이었다. 뻔한 것보다는 신선하게 다가가는 자리다. 저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캐릭터라 저도 현장에 있고 대사를 주고받는데 ‘이 사람이 되겠구나’ 감이 오는 거다. 짜릿하고 놀라운 순간이었다.
-시즌 2의 시가는 7년이 지나있다. 경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떤 변화를 맞았나.
정: 7년 후의 외형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 욕심부리면서 과한 설정을 두기 보다 전체적인 톤 앤 매너를 시즌 1과 똑같이 이어가려고 했다. 프로덕션 때 여러 시도를 해나가면서 거리감을 좁혀 나갔다. 자연스럽게 인물의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세월의 풍파를 온몸으로 맞은 듯한 외모와 마음을 동시에 들도록 해야 했다. 시즌 1이 전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응원과 지지를 얻어 기쁘지만 시즌 2는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숙제도 있다.
시즌 2에서 생활 전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면서 의상의 변화, 얼굴도 생활감이 드러나는 모습이었지만. 척박한 상황 속에서도 꼿꼿한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여성이다. 아프지만 아픔을 바로 드러내지 않는다. 여러 역사적 사실도 직접적이고 폭력적으로 다루지 않고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연출 의도를 따랐다. 인물을 통해 치열하고 척박한 상황, 역사적 배경을 표현하려는 방향을 배우로서 잘 표현해야겠다고 느꼈다.
-촬영하면서 힘든 상황도 많았겠지만 유독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무엇인가.
정: 동고동락했던 배우들과 다시 만나 더욱 돈독해졌고 친해져서 진짜 가족 같았다. 모든 신이 힘들었지만 가족과 밥상 앞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졌다. 우리끼리 마주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가족 같은 분위기를 느꼈다. 모내기나 농장 신의 경우 고요하게 흘러가는 아름다운 장면이었지만 실제로는 너무 더워서 졸도할 것만 같았다. 논에 들어가면 다리가 점점 빠져서 움직일 수도 없고 화장실도 못 가서 힘들었다. 그래도 함께하는 장면인 만큼 서로 다독이며 견딜 수 있었다.
김: 모든 게 어려웠지만 시골 농장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창호도 유일하게 행복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특히 경희와 감정이 잘 스며들길 바랐는데 현장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한국의 역사를 통과하는 이야기인 만큼 고증이 중요한 작품이다. 다국적 제작진이 참여했기 때문에 한국 제작 시스템과 달랐던 점이 많았으리라 본다.
정: 정말 고증을 위해 자료조사가 철두철미했다. 오사카 방언 같은 경우 현장에 전문가가 상주해있었다. 현실감과 시대상을 담으려고 애쓰는 게 보였다. 그래도 100% 확신하기 힘들어 배우에게 의지할 때도 있고, 촬영을 멈추고서라도 (전문가에게) 연락을 취해서 완벽을 향해 나가려는 게 신선했다.
현장에 전문가가 매일 등장했다. 연날리기 장인, 모심기 장인 등을 섭외해서 가르쳐 주셨다. 내일은 또 어떤 장인이 올까 기대될 정도였다. (웃음) 한국 프로덕션과 가장 큰 차이점은 (인력이) 파트별로 나뉘어 있다는 거다. 토론토에 세트가 있었는데 배낭 하나 메고 여행 가듯이 세트장에 도착하면 몇 개월 동안 학교 가듯이 스태프들과 출퇴근도 같이 한다. 각자 트레일러가 있어서 쉬는 공간에 식사 등이 제공되고 스태프가 개별적으로 붙어서 순차적으로 일하는 부분이 달랐다.
감독이 세 분이라 8회 중 2회, 2회, 3회를 나눠 촬영했다. 배우는 몰아서 촬영해야 하는 스케줄이라서 하루에도 여러 감독과 소통해야 했다. 연출과 연기 방향의 소통이 유연해야 했다. 계속 질문하고 답하면서 조율했다. 국내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어려운 경험이었지만 익숙함보다는 알아가고 배운다는 입장이었다.
김: 다국적 제작진과 협업하다 보니 신기했다. 세부적으로 나누어져 있고, 정확한 시간 안에서 촬영하려 했다. 주말이 가까워지면 뭐 할지 계획하는 분위기가 달랐다.
현장에서는 각기 다른 디렉팅을 최대한 이해하고자 했다. 이상일 감독님 에피소드를 작업할 때는 (한국어도 조금 해서) 언어를 넘어 정서적으로 가까웠다. 세 감독님의 장단점을 모르는 상태에서 촬영했었는데 완성본을 보니 세 분일지 알겠더라. 각각의 장점이 에피소드별로 잘 담겨 있어 놀랐다.
-경희와 창호는 서로에게 어떤 관계인가. 고한수의 집착과 욕망의 사랑법과 선자의 내어주는 아가페 사랑과는 다르다.
정: 둘은 요즘 생각하는 관계와 다를 수 있다. 그때는 개인의 욕망보다 가족, 나라 안에서 위치와 책임감이 중요했다. 사랑을 선택할 때도 감정 보다 시대의 무게감이 컸다. (후반부에) 경희가 창호에게 하는 말도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걸 입 밖에 내는 게 힘들었다. 창호를 설득하고 뒤돌아 보내야 했지만 스스로를 다지는 대사여서 마음이 아팠다.
김: 누구나 본인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고 선택하는 게 어려운 시대였기에 창호처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창호는 가족이 없이 어린 시절 일본에 왔고 고한수 밑에서 일하게 된 친구다. 어쩌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친구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이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순하고 더 많은 걸 배우지 않았을까.
‘파친코’에서 이야기하는 희망, 사랑, 보편적 감정의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았다. 오디션을 볼 때는 저와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촬영을 하면서) 저와 닮은 구석도 있다 생각 들더라. 제가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려서 그게 창호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좋은 여행을 마친 여운이 큰 작품이다. 누군가와 소통하는 태도를 배웠고 앞으로의 연기에도 변화가 있을 거라 믿는다.
한편, ‘파친코’의 시즌 2는 총 8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8월 23일(금) 첫 번째 에피소드 공개를 시작으로, 10월 11일(금)까지 매주 금요일 새로운 에피소드를 Apple TV+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글: 장혜령
사진: Apple 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