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해” 韓 고소·고발 日의 40배…여론 우르르 ‘OOO법’ 남발도

이승윤 기자(seungyoon@mk.co.kr), 강민우 기자(binu@mk.co.kr), 이용익 기자(yongik@mk.co.kr) 2024. 10. 13.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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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밍법 급조 분위기 휩쓸려
졸속 윤창호법 두 번이나 위헌
수사검사 압박하는 ‘법 왜곡죄’
불리한 결과때 고소 남발 빌미
아동학대법은 교권 붕괴 우려
48만1231건 vs 1만481건.

유사한 사법체계를 갖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지난 해 피고소·고발인 숫자다. 인구가 한국의 2.4배에 이르는 일본이 피고소·피고발인 숫자는 한국의 40분의 1 수준에 그치는 것이다. 균형잃은 소송폭주는 사회적 비용을 지나치게 증가시킬 수 있다.

대한민국이 ‘고소고발 공화국’이 된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인 특유의 남소(소송 남발) 경향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국회의 과잉입법이다. 갈등을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증폭시키는 법들이 쏟아진 탓이다.

입법과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른바 ‘레카법’이다. 피해자의 이름을 딴 ‘네이밍’ 법안이 쏟아지면서 사건이 터질 때 레카차처럼 달려와 일단 법부터 만들고 본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용어다. 법 체계의 정합성이나 예산 등을 고려하지 않고 급하게 법안이 만들어지면서 본래의 취지는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사회적 비용만 증가시키는 경우가 많다.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단을 두번이나 받고 재심청구 소란을 빚은 ‘윤창호법’이 대표 사례다.

안성훈 법무법인 법승 파트너변호사는 “입법과잉 문제는 형사법 분야에서는 처벌만능주의, 행정법 분야에서는 규제 만능주의로 작용해 소송 남발 현상을 야기한다”며 “법이 복잡하고 많아지면 어겨서 처벌받는 것도 문제지만 어겨도 아무런 문제 없는 법들이 많아져서 법이 가볍게 여겨지는 문제까지 발생한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접수된 교권침해 관련 소송은 2014년에는 22건이었지만 지난해 179건으로 껑충 뛰었다. 이 중 87건은 ‘아동학대’ 관련 소송으로 3년 전보다 2배가 늘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아동학대에 정신적 충격을 주는 ‘정서적’ 아동학대도 처벌대상에 포함하도록 한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자리잡고 있다.

아동학대처벌법이 만들어진 계기는 ‘서현이 사건’으로 알려진 2013년 10월 울산 아동학대 살해 사건이다. 법안 심사는 여론을 등에 업고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공청회도 없이 첫 논의부터 국회 통과까지 걸린 시간은 단 2주였다.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 법안소위에서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 “심사를 하면서 보니까 혹시라도 미진한 부분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며 공청회 개최를 주장했지만, 법무부 반대에 간담회만 열렸다. 간담회에는 아동권리 전문가·로스쿨 교수만 참여해 교육계 목소리는 반영될 기회조차 없었다. 이후 해당법안이 교사를 고소고발하는 근거로 사용되면서 아동학대 소송이 급증하게 된 것이다. 교사들이 과도한 민형사적 책임에 노출되면서 일반적인 훈육지도도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법안이 만들어진지 10여년만인 최근에야 개정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의료계는 의료문제의 핵심으로 ‘의료수가’와 ‘의료소송(사법리스크)’을 지적한다. 의료소송의 경우 환자의 상태가 위독해 불가항력적인 경우를 인정하지 않고 의사의 입증책임을 강화하는 쪽으로 입법이 전개되면서 의사들이 생명이 위독한 환자들을 기피하는 등의 방어적 진료 풍토를 유발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신생아 의료사고에 12억5552만원의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한 지난해7월 수원지법 평택지원 판결은 의사들의 산부인과 선택을 기피하게 만든 사례로 꼽힌다.

보건복지부가 의료 사고로 인한 의사의 민·형사상 부담을 줄여주고 ‘소신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제정한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야당에서 세 번에 걸쳐 추진 중인 ‘법 왜곡죄’도 과잉입법의 사례로 거론된다. ‘법 왜곡죄’는 검사 등 수사 종사자가 범죄혐의를 발견하고도 수사·기소하지 않거나 증거를 조작하거나 법률 해석을 왜곡하는 등 법 왜곡 행위를 한 경우 10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에 대해 법원행정처는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가 도출될 경우 ‘법 왜곡’을 주장해 불필요한 고소·고발이 남발됨으로써 수사기관의 직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신중 검토’ 의견을 밝혔다.

남소로 인해 민간과 정부간 법적 다툼이 크게 늘어나면서 정부의 권위가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법조계 인사는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행정 소송이 많은 편”이라며 “정부를 대상으로 권리를 찾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일 수 있지만 행정소송 패소는 그만큼 정부 제재의 무게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3만6000여건이었던 행정소송 건수는 2020년 3만8000건, 2021년 4만건, 2022년 4만2000건을 거쳐 지난해인 2023년에는 4만6000건까지 치솟았다.

방문진 이사 선임에 관한 효력을 정지한 사건, 공무원 징계 처분에 대한 취소 사건, 개인정보위원회의 과징금 부과에 대한 취소사건, 사랑의교회 도로점용허가 관련 사건, 코로나19 사태에 ‘대면예배 금지’처분을 하고 이에 대해 불복한 사건 등이 모두 행정소송이다.

특히 한국 특유의 ‘소송을 하면 대법원 확정 때까지 가보겠다’는 기조가 행정소송에서 더욱 도드라지면서 행정소송은 무조건 대법원까지 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모성준 대전고법 판사는 저서 ‘빨대사회’에서 “권한과 책임의 분리와 무조건적인 책임부과는 국회가 각 영역별 문제해결 권능을 빼앗고 모든 영역에서 국회 권력을 확대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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