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핸들도 운전석도 필요없는 시대 온다… HL만도가 그리는 미래차

베이징=이윤정 특파원 2024. 10. 1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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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시장 중요성 반영, 베이징서 신기술 전시
‘수입차 무덤’서 생존 성공, 비결은 현지화

지난 14일 중국 베이징 밀운구에 있는 HL 만도 연구소. 현대차의 제네시스 G80 차량을 타고 1.7km 길이의 트랙을 달리던 중, 드라이버가 불쑥 태블릿PC를 꺼내 들었다. 그는 핸들에서 손을 떼고, 대신 태블릿PC에 띄워져 있는 핸들 모양의 그림을 좌우로 조금씩 움직였다. 그러자 자동차가 그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수석, 뒷자리에서도 태블릿PC로 핸들 조작이 가능해 사실상 운전석의 경계가 사라진 것이다. HL 만도 관계자는 “미래에는 자동차 내부 모습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며 “뒷좌석에서도 모바일 기기로 핸들을 움직일 수 있는 만큼 대화와 엔터테인먼트가 원활하도록 원형으로 좌석 배치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HL그룹 자동차 부품 주력 계열사인 HL만도의 베이징 법인이 지난 14일 ‘HL 트랙데이’를 개최했다. 오는 18일까지 5일간 열리는 트랙데이에서는 HL만도의 각종 신기술이 발표된다. 지난해 한국에서 조향 장치(스티어링 휠·운전대) 부문에 대해 첫 번째 트랙데이를 개최했는데, 올해는 자동차 전 분야로 확대했다. 특히 베이징을 무대로 정한 데 대해 HL만도 관계자는 “그만큼 중국 부문의 기여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며 “게다가 중국 시장은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을 피해갈 만큼 성장률이 높고, (완성차) 고객도 많다. 신기술 수용도가 높다는 점도 중국 시장에 공을 들이는 이유”라고 했다.

◇핸들 필요할 때 꺼내는 SbW 등 신기술 대거 공개

이날 만도는 현재 양산을 준비 중인 신기술을 주요 고객사 차량에 탑재해 대거 선보였다. 휴대전화 혹은 태블릿PC로 운전하는 기능인 ‘모바일 휠 컨트롤’ 기능 외에도, 핸들을 안쪽으로 집어넣었다가 필요할 때 꺼낼 수 있는 ‘자유 장착형 첨단 운전 시스템(SbW)’도 볼 수 있었다. 기존에는 자동차 섀시(뼈대)와 운전대 등 부품이 기계적으로 연결돼 있어 분리가 불가능했지만, HL만도는 전기 신호를 활용해 섀시와 운전대를 연결, 핸들을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기술은 지난 2021년 세계 최대 정보기술·가전제품 전시회 ‘CES 2021’에서 차량 지능·운송 부문 혁신상을 받기도 했다. HL만도 관계자는 “한국과 중국 모두 관련 법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 그때를 대비해 고객사와 함께 상용화를 준비 중”이라며 “중국의 경우 2025년 말 이후 법제화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승차감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인 서스펜션 최신 기술인 ‘전자제어 서스펜션(SDC) 70’도 인상적이었다. 서스펜션은 노면으로부터 차체가 받는 진동과 충격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중국 전기차 리오토의 ‘L9’ 모델에 탑승했는데, 다양한 크기로 굴곡져 있는 각종 도로를 부드럽게 지나갔다. 해당 기능을 차단하고 일반 차량 모드로 지나갈 땐 머리가 차량 지붕에 닿을 정도로 크게 출렁였다. 이렇게 울퉁불퉁한 길을 부드럽게 지나갈 수 있는 기능은 승차감뿐만 아니라 안전성도 높일 수 있다. 급브레이크, 급가속으로 인해 차체가 앞쪽으로 쏠리거나 앞부분이 들리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로 직선 도로나 커브 길을 달리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안정적으로 정지하는 ABS 기능도 공개됐다. ABS는 자동차가 급제동하거나 회전할 때 미끄러지면서 브레이크가 일시적으로 잠김 현상이 되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다. 이날 드라이버는 시속 60km로 달리다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몸이 앞으로 쏠리긴 했지만 자동차는 빠르게 정지했다. 몸에 크게 무리가 가지도 않았다. 드라이버는 “일반 차량은 이 속도에서 브레이크를 밟을 경우 직선주로에서는 미끄러지거나, 커브 길에서는 옆으로 튀어 나갔을 것”이라고 했다.

HL만도가 지난 14일 중국 베이징 밀운구 연구소에서 'HL트랙데이'를 개최했다. 이날 신기술 시연을 위해 준비된 차량들./이윤정 기자

◇지난해 中 매출 15% 증가… 현지화 전략 덕

HL만도는 ‘수입차의 무덤’으로 불리는 중국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다. 중국 자동차 시장은 전기차 열풍이 시작되면서 현대차는 물론 폭스바겐 등 다수의 수입차들이 중국 토종 기업에 밀려 공장 문을 닫거나 생산량을 줄였다. 하지만 HL만도는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있다. HL만도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회사의 지난해 중국 사업 부문 매출은 2조3068억원을 기록했다. 1년 전(1조9991억원)보다 15% 증가한 수준이다. 올해 상반기에도 1조556억원의 매출을 올려 지난해와 비슷한 성적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HL만도의 생존 비결은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이다. HL만도는 2002년 쑤저우 공장 설립을 시작으로 중국에 진출했다. 초반엔 핵심 고객사인 현대차와 기아차 등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지만, 지금은 다수의 중국 현지 완성차 업체를 고객사로 확보했다. HL만도가 현지에 연구개발(R&D) 연구소를 설립하며 기술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선 점도 고객 다변화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이다. HL만도 관계자는 “R&D부터 영업, 구매, 생산까지 중국에서 모든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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