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사랑'에 위기 내몰린 임종룡 우리은행 회장
“이복현과 용산 주요 경제 라인이 전직 회장의 친인척 부실대출 사고 관련 경영진에 대한 날 선 비난을 쏟아내자 내부 임원들은 반색하고 있다.”
“현 회장의 레임덕이 시작된 지 오래된 상황. 이미 은행 임원들은 현재 경영진을 비방하는 투서를 곳곳에 뿌리고 언론사로 제보하면서 일을 더 키우고 있다.”
“외부 출신인 현 회장을 낙마시키면 결국 내부 출신으로 인사 주도권이 넘어올 텐데 ‘두 계파’가 기존 체계를 유지해 자리를 나눠 먹을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있다.”
최근 금융권에 나도는 우리금융의 지라시(정보지) 내용이다. 한일·상업은행 출신으로 나눠진 내부 임원들이 똘똘 뭉쳐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사태를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과 조병규 우리은행장 흔들기의 빌미로 쓰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어디까지나 지라시일 뿐이다. 다만 이 같은 지라시가 나돌 만큼 우리금융, 우리은행에는 ‘파벌’이 현존하고 있다. 파벌 간 갈등은 금융지주 회장 선임 때 극에 달하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파벌 갈등에 낙하산까지 겹쳐 지배구조 되레 퇴보
은행권 파벌의 시작은 1997년. IMF 외환위기의 한파는 은행권도 피해갈 수 없었다. 부실은행 정리에 따라 대형은행의 인수합병이 진행됐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합병으로 탄생한 한빛은행(현 우리은행), 주택은행과 합친 국민은행이 대표적이다. 이후에도 2002년 조흥은행을 흡수한 신한은행, 서울은행을 흡수합병한 후 2015년 외환은행과 합병한 하나은행이 구조조정의 풍파에서 살아남았다. 1990년대까지 국내 금융시장을 주름 잡던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지금의 ‘국신하우’(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체제로 자리 잡게 됐다.
큰 조직 간 인수합병이 이뤄진 곳에선 파벌 싸움을 예측 가능한 일이다. 결국 ‘자리 싸움’이기 때문에, 합병 후 통합공채가 이뤄져도 기존 파벌 간 ‘줄 세우기’가 이뤄진다. 은행권의 합병 역시 30년 가까이 흘렀지만 잊을 만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간판들이 인사철이 되면 슬그머니 등장한다. 일선 영업현장에선 통합공채 세대들이 대세를 이뤄 출신 구분이 의미없다. 하지만 이들보다 이전 세대가 은행의 고위층에 남아 있어 발생하는 현상이다.
특히 우리은행. 옛 상업과 옛 한일은행 출신 모두 자부심이 높았고 주력 사업 모델도 둘 다 기업금융이었다. 거대 은행이 작은 은행을 삼킨 흡수합병이 아니라 비슷한 은행끼리의 대등합병이다 보니 통합 후에도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나서서 ‘파벌 엄단’이라는 발언까지 했다.
여기에 외풍도 작용했다. 우리은행은 오랜 기간 정부를 대주주로 모시고 있었다. 합병과 지주회사 설립 과정에서 공적자금만 12조원 넘게 투입됐고 예금보험공사가 최대주주로 정부가 20년 넘게 주인 역할을 했다. 정부의 의중이 행장은 물론 임원 인사에도 영향력을 줬고 실력도 실력이지만, ‘실세’들과 학연·지연으로 줄을 댄 인사들이 승승장구하는 일도 있었다. 행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는 물밑에서 치열한 쟁투가 벌어졌고 내로라하는 후보자들 뒤에는 정부에서 힘깨나 쓰는 ‘후견인’이 따라 붙는다는 소문도 붙었다.
‘리더십의 정치화’가 고착화하면서 상업과 한일은행 간 화학적 결합은 더욱 어려웠다. 한쪽 계파가 득세하면 다른 한쪽은 때를 노렸다. 2017년 불거진 우리은행 채용 비리 사태도 상업은행 출신 인사가 연달아 행장에 선임되면서 핵심 주요 보직을 상업은행 출신이 장악, 이에 불만을 품은 한일은행 출신들의 내부고발로 비롯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옷을 벗은 이광구 전 행장을 비롯해 직위해제된 인사들 모두 상업은행 출신이었다. 이때 새 행장에 오른 인물은 한일은행 출신 손태승 전 회장이다. 손 전 회장 재임 시절에는 이원덕 전 행장 등 한일은행 출신이 득세했다.
최근 인사에서는 조병규 행장을 비롯해 국내영업부문, 자금시장부문 등 우리은행의 주요 부문장들은 모두 상업은행 출신 인사들이 맡고 있다는 점에서 한일은행 출신들의 볼멘소리가 나온다.
금융감독원이 제보를 받아 수면 위로 드러난 손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사태도 사건의 핵심은 부당대출과 내부통제 실패지만 이면을 들춰보면 우리은행의 파벌 싸움이 자리 잡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아직도 파벌? 우리금융, 외풍과 줄대기 30년의 악순환
이번엔 타깃이 현 경영진이라는 시각도 있다. 전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사고는 단순히 해묵은 계파 갈등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으나 금융당국이 현 경영진에 책임을 묻고 있는 상황에 편승해 외부 출신인 임종룡 회장을 몰아내는 것이 양 파벌에 이득이라는 해석이다.
파벌 싸움을 끝내겠다던 임 회장이 첫 인사에서 모교인 연세대 후배를 중용한 게 갈등의 불씨가 됐다는 분석이 있다. 외부 영입 인사인 장광익 부사장(브랜드 부문장)을 비롯해 지주 경영진 절반이 연세대 출신 임원들로 꾸려졌던 것. 요직이라 할 수 있는 경영지원부문장에도 연세대 출신이자 임 회장이 내정자 시절 비서실장으로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이해광 본부장이 선임됐다. 장 부사장은 우리은행 부행장도 겸직하고 있다.
일부 자회사 인사도 분쟁의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은행 계열의 수장 자리는 은행 출신이 아닌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원칙하에 10년 만에 증권업 재진출을 선언한 우리투자증권(옛 우리종합금융)의 지휘봉을 남기천 대표에게 넘겼다. 그는 임 회장이 증권사 인수를 염두에 두고 영입한 인사다. 회장 취임 후 우리자산운용 대표이사로 대우증권(현 미래에셋증권) 출신인 남 대표를 데려왔고 올해 합병 준비 과정에서 다시 우리종합금융 대표 자리에 그를 올렸다. 임 회장이 2004년 주영국 한국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할 때 남 대표가 대우증권 런던 법인장으로 근무하면서 친분을 쌓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요직에 자기 사람을 꽂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우리투자증권 이사회도 구성원 6명 가운데 남 대표와 조성부 사외이사를 제외한 4명이 연세대 출신이다.
이번에는 양 파벌이 합심해 외부 출신인 임 회장을 밀어내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일각의 해석일 뿐이다.
최근 우리금융에 도는 긴장감은 최고조다. 손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사태로 인해 은행에서 비은행 계열사로, 금융당국에서 사법당국까지로 압박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금감원이 내년에 진행할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 등에 대한 정기검사를 앞당겨 오는 10월 진행하면서 분위기는 더 뒤숭숭해졌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우리금융 경영진의 내부통제 ‘책임론’을 강조하면서 거취 결정은 “이사회와 주주의 몫”이라며 간접적인 압박을 주자 임 회장의 조기 사퇴설까지 나돌았다. 임 회장의 임기는 2026년 3월까지다.
임 회장은 이번 사태에 대한 개인 입장을 한 번도 밝힌 적이 없다. 당초 9월 11일 열기로 한 김병환 금융위원장과 5대 금융지주 회장의 간담회가 9월 마지막 주로 연기되면서 임 회장의 두문불출이 더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임 회장이 간담회에 참석한다면 이번 사건 이후 외부 공식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것. 김 위원장과 전직 금융위원장인 임 회장의 ‘투 샷’을 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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