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고려아연 ‘이그니오 의혹’ 증거 공방···美는 인용, 韓은 장고
국내선 문서제출명령 지연···제3자 심문 진행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고려아연 이그니오 투자 의혹과 관련된 국내 주주대표소송과 연계된 증거 확보 절차에서 미국과 한국 법원의 진행 속도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증거개시가 항소심까지 거쳐 유지된 반면, 국내에서는 문서제출명령 여부를 두고 판단이 미뤄지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제2연방순회항소법원은 지난 22일 고려아연 측 미국 법인 페달포인트가 제기한 항소를 기각하고 영풍 측의 증거개시를 허용한 1심 결정을 유지했다. 페달포인트는 고려아연이 2022년 약 5800억원을 들여 전자폐기물 재활용 업체 이그니오홀딩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투자 구조를 수행한 미국 법인으로, 관련 의사결정과 자금 흐름 자료를 보유한 핵심 주체로 지목된다.
이그니오 인수를 둘러싼 쟁점은 투자 적정성 여부다. 영풍은 고려아연이 자본잠식 상태 기업을 고가에 인수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한다. 반면 고려아연은 자원순환 사업 확대와 원료 공급망 확보를 위한 전략적 투자였다고 반박한다.
영풍은 2025년 1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등 이사진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이후, 미국 내 자료 확보를 위해 증거개시 절차를 병행해왔다. 이번 항소심 결정으로 페달포인트를 상대로 문서 제출과 관계자 증언 확보 절차가 계속 진행될 수 있게 됐다.
영풍 측은 이그니오 인수 당시 가치평가와 거래 구조, 의사결정 경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 접근이 가능해졌다는 입장이다. 반면 고려아연 측은 미국 법원 결정이 증거 수집 절차에 관한 판단일 뿐, 투자 의혹의 타당성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국내 재판에서는 증거 확보 절차가 지연되는 모습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9부(재판장 고승일 부장판사)는 지난 2일 첫 변론기일에서 영풍 측이 신청한 문서제출명령에 대해 10일 내 판단을 내리겠다는 취지를 밝혔으나, 27일 현재까지 인용 또는 기각 결정은 확인되지 않는다.
영풍 측은 이그니오 인수 과정에서 계약상 절차의 적정성과 의사결정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했다. 신청 대상은 이사회 회의록 등 의사결정 자료로,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을 경우 투자심의위원회 관련 문서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주대표소송에서는 원고가 회사 내부 자료에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로 인해 특정 문서를 정확히 특정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문서제출명령 신청은 개별 문서를 특정하기보다 의사결정이 이뤄졌을 것으로 예상되는 범위를 기준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사건기록에 따르면 재판부는 지난 13일 제3자를 상대로 문서제출명령 신청에 따른 심문서를 송달했다. 문서제출명령은 이사 개인이 아닌 자료를 보유한 제3자를 상대로 진행되는 절차로, 사건 구조상 해당 제3자는 고려아연 주식회사일 가능성이 거론된다. 제3자 의견 확인 절차가 진행되면서 당초 예고된 시점보다 판단이 늦어지는 흐름이다.
영풍 측의 문서제출명령 신청에 대해 고려아연 이사들 측은 영업비밀과 내부 검토 자료로서 제출 의무가 없는 자기이용문서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재판부는 의사결정 과정 검증 필요성을 언급하며 문서제출명령 인용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제3자 심문 절차 이후 재판부의 인용 여부가 최종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문서제출명령이 인용될 경우 영풍은 국내외에서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그니오 인수의 적정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다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소송은 단순한 투자 적정성 판단을 넘어 영풍과 고려아연 간 경영권 분쟁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양측은 공동경영 체제가 2022년 최윤범 회장 취임 이후 흔들리면서 본격 충돌했고, 자사주 거래와 지분 구조, 이사회 구성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이어왔다. 이번 주주대표소송은 이러한 분쟁 속에서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직접 겨냥한 법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향후 분쟁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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