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하청업체 두 사장은 왜 거리에 나섰을까
2024. 9. 16. 06:00
“여기는 역대급” 갑질·불공정 거래 억울함 호소…성동조선은 “억지”
“조선업 부가가치 낮아 불공정 거래 반복…건설처럼 기준 마련해야”
“제가 조선업 30년 넘게 했지만…. 여그는 역대급입니다.”
HSG성동조선(이하 성동조선)의 하청업체 ‘건우’의 김동근 대표(50)는 지난 9월 10일 경남 통영의 한 카페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대표는 스무 살이 되던 해 삼성중공업에 입사해 용접일을 시작한 이래 인생 대부분을 조선소에서 보냈다. 조선소에서 하청노동자가 급증한 2000년대에는 3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하청업체를 차렸다. 7~8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조선업 특유의 파고를 어떻게든 넘어왔다. 그러나 지금 한계에 부딪혔다.
건우는 2022년 8월부터 성동조선의 일감을 받아 일했다. 그러다 2년을 꼬박 채운 지난 8월 28일 조업을 중단했다. 김 대표는 “돈이 안 됐다”고 했다. 그는 지난 23개월(아직 정산이 이뤄지지 않은 올해 8월 제외)간 건우의 수입·지출 내역을 보여줬다. 월별로 봤을 때 건우가 성동조선의 일을 하면서 수익을 낸 것은 단 2개월에 불과했다. 나머지 21개월은 모두 적자였고, 누적 적자는 10억원을 훌쩍 넘었다. 지난 6월부터는 직원들 임금도 다 주지 못했다. 이 손해가 사실이라면 이 일은 진즉 그만뒀어야 한다. 그는 “일을 시작할 때 (성동조선과) 추후 단가를 조정하기로 하고 저단가에 일을 시작했다. 그 말 믿고 고마 도장 찍고 일했다. 나중에 단가 올려 달라고 공문을 여러 차례 보냈는데 (성동조선은) 묵살로 일관했다. 야간 돌려가면서 밤낮으로 일했는데 10몇억원 빚만 남았다. 이런 경우 자체가 처음이다”라고 했다. 그는 직원들과 ‘업체가 흘린 피로 성장하는 성동 각성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와 집회를 하고 있다.
성동조선의 또 다른 하청업체인 ‘신일류기업’의 임직원들도 집회를 함께하고 있다. 신일류기업은 2022년 7월부터 성동조선의 일을 해왔는데 건우와 같은 이유로 지난 8월 28일 조업을 중단했다. 조선업계에서 원청의 일감을 받아 살아가는 하청업체가 원청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다시는 업계에 발을 들이지 못할 수 있다는 각오도 필요하다. 신일류기업의 김동환 대표(55)는 “원통하고 억울해서 나왔다. 접는 그날까지도 24시간 맞교대로 업을 이끌어왔다. 그랬는데도 올해만 적자가 8억원을 넘는다. 단가 안 맞는다고 수없이 공문을 보냈다. 원청 찾아가 호소도 많이 했다. 그런데 (원청에서는) ‘그러면 (하청업체를) 정리하라’고 한다. 하기 싫으면 나가라는 식”이라고 했다.
성동조선의 입장은 판이하다. 하청업체들이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본다. 성동조선은 지난 9월 4일 입장문을 통해 “사내하도급 협력사와 적법한 계약을 통해 정상적 거래를 유지하고 있다. 협력사가 주장하는 불공정한 거래는 사실이 아니며, 기업 운영에 충분한 공사대금을 책정 및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두 하청업체가 거리로 나오게 된 과정을 살펴봤다. 성동조선의 주장과는 달리 계약서도 쓰기 전에 하청업체가 공사에 투입되는 등 하도급법이 금지하는 불공정 행위도 있었다. 또 다단계 하도급에 의존하는 생산 구조, 원·하청 간 정보 및 협상력의 불균형 등 조선산업의 구조적 문제도 자리했다. 이는 조선업계에서 원·하청 불공정 거래 논란이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한국의 조선소에서 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원청은 만들어야 할 배를 여러 덩어리로 나눠 각각을 하청업체들에 맡긴다. 하청업체는 자체적으로 노동자들을 모아서 덩어리를 완성한 후 원청으로부터 기성금(도급비)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하청업체는 ‘노동자처럼 일하지만 형식적으로는 사업자’인 ‘물량팀’에 일감 일부를 재하청한다. 이렇게 완성된 각각의 덩어리를 이어 붙여 배 한 척이 건조된다.
철판을 잘라서 접고 굽히고 이어 붙이는 일이 대부분이고 자동화도 까다롭기에 노동집약적일 수밖에 없다. 직접 생산공정을 맡는 노동력의 대부분은 하청업체에서 나온다. 2022년 기준 조선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9만3000명인데, 원청이 4만1000명, 하청이 5만2000명이었다. 생산직만 보면 원청이 2만3000명, 하청이 4만8000명으로 하청 비중이 67.6%였고, 직접 생산인력으로 좁히면 전체 5만1000명 중 하청업체 소속이 4만명(78.4%)이었다. 조선업은 모든 업종 중 하청노동자의 비중이 가장 높다.
일한 대가로 하청업체가 받는 기성금의 90% 이상은 소속 노동자들의 인건비로 쓰인다. 일이 생각대로 안 풀릴 때 하청업체의 지상 과제는 인건비를 밀리지 않고 지불하는 것이 된다. 20년간 조선업에 종사한 한 하청업체 관계자는 “하청업체의 끝은 임금체불”이라며 “이 바닥에 오래 있었던 분 중에 자기 명의로 하청업체 운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성금이 부족하면 원청에서 가불을 받거나 대출을 받으면서 버티다가 그래도 부족하면 (노동자들) 4대 보험을 체납하고, 세금을 체납하고, 결국에는 임금을 체불한다. 계속 일을 하려면 사업자 명의를 바꿀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인건비를 줘야 하는 하청은 기성금을 쥐고 있는 원청에 끌려다닐 공산이 크다. 건우와 신일류기업은 물량팀을 포함해 각각 120여명의 인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건우는 지난 6월부터, 신일류기업은 지난 7월부터 임금을 다 지급하지 못했다. 성동조선의 기성금 지급일은 매달 20일. 건우는 지난 7월 기성금을 다른 하청업체들보다 늦은 25일에야 받았다. 기성금 지급일 며칠 전부터 원청의 관계자가 건우와 건우의 하청을 받는 물량팀의 출금 내역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김동근 대표는 “내가 내건 줄 수 있는데, 물량팀은 다른 사업자인데 어떻게 주냐고 했다. 그랬더니 안 가져오면 돈을 못 준다는 거다. 진짜 우리만 돈이 안 나왔다. 당장 (소속 노동자들) 임금 나가야 하는데 난리가 났다. 물량팀에 부탁해서 내역 받은 거 주고, 무릎 꿇다시피 했다. 그런데 각서를 쓰라고 하더라. 하도 적자를 보니까 그때 성동조선에서 가불을 받은 게 3억2000만원 정도 남아 있었는데 ‘12월 말일까지 다 갚는다, 못 갚으면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각서에 지장 찍고 나왔다.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했다. 건우는 협박, 강요, 개인정보법 위반 혐의로 성동조선 측을 경찰에 고발했다.
일반적으로 하청업체는 단가가 어떻게 정해지는지 알 수 없다. 건설업과 달리 조선업은 표준품셈과 같은 공통된 기준이 없고, 원청사는 단가를 책정하는 기준을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는다. 단가를 산정하는 계산식이 없는 셈이다. 통상 현장에서는 원·하청 간 협의로 인건비와 기성금 사이의 균형을 찾는다. 예컨대 인력을 얼마나 투입해야 하는 작업인지 알 수 없는 경우, 일단 작업을 시작해 투입된 시수(해당 작업을 완료하는 데 투입된 시간으로 여기에 인건비를 곱해 기성금이 정해진다)를 반영해 추후 단가를 조정한다.
그런데 그 균형이 현저히 무너졌다는 게 두 대표의 주장이다. 건우의 김동근 대표는 센터코밍(안쪽으로 물이나 기름이 들어오지 못하게 볼록하게 솟아 있는 테두리 구조물) 작업을 예로 들었다. 지난해 8월 건우는 센터코밍 블록을 만들고 성동조선에 330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이 일을 하며 실제 쓴 돈은 1395만원에 달했다. 이 작업을 위해서는 철판을 설계대로 구부리거나 펴는 곡직이 필요한데, 숙련된 곡직사를 부르는 데만 120만원가량이 들었다. 매번 1000만원가량의 손해를 보면서 지난해 6월까지 이 작업을 6차례 했다. 건우는 지난 8월 성동조선에 “투입된 인건비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저단가로 인해 인건비에 대한 어려움으로 성동조선 ○○○과 미팅을 해 투입시수로 계산을 하기로 하고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이후 성동조선 ○○○에게 투입된 블록시수 자료를 드리고 블록에 투입된 시수를 계산하여 정산하여 줄 것을 요청했으나 지금 현재까지도 지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성동조선은 하청업체의 낮은 생산성이 원인이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하청업체라면 쉽게 끝낼 일에도 많은 인력을 오랜 시간 투입함으로써 스스로 손실을 키웠다는 얘기다. 두 업체만의 문제라면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성동조선에서 못 버티고 나간 업체는 이들만이 아니다. 성동조선은 하도급 불공정 거래 혐의로 이미 2건의 신고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접수됐다. 지난 8월에 건우와 신일류기업이 철수한 데 이어, 9월에는 2개 업체가 더 철수할 예정이다. 30여개에 달했던 성동조선의 사내하청업체 수는 9월 말 기준으로 22~23개 수준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성동조선의 하청업체로 일했던 A업체도 조만간 성동조선을 공정위에 신고할 계획이다. A업체의 관계자 B씨는 “1년을 다 못 채우고 도무지 버틸 수 없는 상태가 돼서 나왔다. 그때까지 6억원 정도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A업체의 정산 내역을 보면, 과연 업체의 생산성만이 문제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통상 조선업 원청은 목표를 제시하고 하청업체가 달성한 실적에 따라 기성금을 지급한다. 목표를 초과 달성하면 하청업체는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A업체는 월별로 두 차례 목표치 이상의 실적을 내고도 수천만원대 적자를 면치 못했다. B씨는 “하청업체가 다 잘했다는 것 아니다. 10시간 들어갈 일을 (우리가) 12시간 했을 수도 있고, 세 사람 할 일을 네 사람이 했을 수도 있다. 그걸 감안해도 월에 1000만~2000만원 펑크가 나야 이해라도 하지 어떻게 1억원 넘게 구멍이 나냐”고 했다. 애초 단가 설정이 지나치게 낮았다는 얘기다.
A업체는 계속되는 적자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성동조선에 요청했다. A업체가 맡은 작업장에 방치된 설비를 정리해 공간활용도를 높이고, 최소 2개월 전에 물량을 확정해주는 방안 등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성동조선은 뚜렷한 답을 하지 않았다. 하청업체의 낮은 생산성을 문제로 지적하면서도, 생산성 향상을 위한 원·하청 협력은 없었던 셈이다.
인건비 상승도 하나의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업 원·하청의 불공정 거래 사례를 보면, 이 문제는 특정 시점에 집중적으로 불거지는 경향을 보인다. 하나는 호황기에서 불황기로 접어들 때다. 일감이 줄어든 원청은 호황기에 늘렸던 유연한 노동력인 하청을 빠르게 줄여나간다. 갑작스러운 허리띠 졸라매기에 도산하는 하청업체가 늘어나고 불공정 거래 신고도 늘어난다. 또 다른 시기는 불황기에서 호황기로 접어들 때다. 갑자기 많은 인력이 필요해지는데 불황에 조선소를 떠난 인력을 복귀시키기 위해 인건비가 상승한다. 원청이 기성금에 인건비 상승분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으면 하청업체는 일을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된다. 불공정 거래의 이면에는 고용 부담의 상당 부분을 하청업체가 지고 있는 기형적인 구조가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적으로 새로 건조하는 선박의 가격은 2008년 말부터 하향세를 보이다가 2021년 상승세로 전환했다. 현재는 불황에서 호황으로 접어든 국면으로 인건비가 상승하고 있다. 김동환 신일류기업 대표는 “떠난 숙련공을 데려오자니 인건비가 많이 올랐다. 성동조선 일을 처음 시작하려고 사람을 모을 때는 한 달 치 월급을 선불로 주고 데려오기까지 했다.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시간당 3만원은 넘는다고 본다. 우리도 살아보려고 (노동자들 인건비를) 낮추는 부분이 있지만, 업체는 (우리보다 인건비를) 더 낮게 책정한다. 거의 2만4000~2만5000원 수준으로 책정했다고 본다”고 했다.
성동조선 측은 현재의 기성금에 인건비 인상분도 충분히 반영됐다고 주장한다. 성동조선은 공식입장문에서 “특히 해당 협력사는 1인당 월매출액(월인당 기성)이 600만~700만원 수준으로 상당한 기업이윤이 예상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근로자들은 임금 체불로 인해 노동부 신고까지 발생되고 있다”고 했다.
비교적 명백한 법 위반 사례도 엿보인다. 조선업이 불황에 직면한 2010년대에 들어, 공정위는 원·하청 불공정 거래를 이유로 조선업 원청사들에 줄줄이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가 문제라고 본 건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원청의 일방적인 하도급 대금 책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공사를 먼저 시키고 계약은 나중에 체결하는 ‘선공사 후계약 관행’이었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하도급법 위반 사항으로 좀처럼 인정되지 않았다. 상호 협의하에 하청의 생산성 향상분을 기성금에서 제외했다는 원청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등 양측의 협의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다만 선공사 후계약은 법 위반 사항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청업체들은 성동조선에서도 ‘선공사 후계약’이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신일류기업은 2023년 5월부터 공사를 시작했지만, 해당 공사에 대한 계약은 시작 후 1년 만에 체결했다고 했다. 건우 측은 10개월가량 계약서를 쓰지 않고 공사를 진행한 건이 있다고 했다. 이는 이들이 생산에 착수한 초기에 책정된 1t당 단가가 장기간 유지되는 상황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맡았다는 뜻으로, 단가 조정이 없었다는 업체 측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하도급법 전문가인 법무법인 도담의 김남주 변호사는 “조선업 원·하청에서 불공정 거래가 반복되는 원인은 조선업 자체가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이기 때문이다. 임금을 쥐어짜야 이윤이 생긴다. 원·하청이 대등하게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데다, 표준품셈이 공개되지 않는 것도 한 원인이다. 하청업체에는 대금이라는 결론만 알려주고, 그 결과가 나오는 공식은 알려주지 않는다”며 “건설업처럼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불공정 거래 행위를 엄격히 처벌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조선업 부가가치 낮아 불공정 거래 반복…건설처럼 기준 마련해야”
“제가 조선업 30년 넘게 했지만…. 여그는 역대급입니다.”
HSG성동조선(이하 성동조선)의 하청업체 ‘건우’의 김동근 대표(50)는 지난 9월 10일 경남 통영의 한 카페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대표는 스무 살이 되던 해 삼성중공업에 입사해 용접일을 시작한 이래 인생 대부분을 조선소에서 보냈다. 조선소에서 하청노동자가 급증한 2000년대에는 3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하청업체를 차렸다. 7~8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조선업 특유의 파고를 어떻게든 넘어왔다. 그러나 지금 한계에 부딪혔다.
건우는 2022년 8월부터 성동조선의 일감을 받아 일했다. 그러다 2년을 꼬박 채운 지난 8월 28일 조업을 중단했다. 김 대표는 “돈이 안 됐다”고 했다. 그는 지난 23개월(아직 정산이 이뤄지지 않은 올해 8월 제외)간 건우의 수입·지출 내역을 보여줬다. 월별로 봤을 때 건우가 성동조선의 일을 하면서 수익을 낸 것은 단 2개월에 불과했다. 나머지 21개월은 모두 적자였고, 누적 적자는 10억원을 훌쩍 넘었다. 지난 6월부터는 직원들 임금도 다 주지 못했다. 이 손해가 사실이라면 이 일은 진즉 그만뒀어야 한다. 그는 “일을 시작할 때 (성동조선과) 추후 단가를 조정하기로 하고 저단가에 일을 시작했다. 그 말 믿고 고마 도장 찍고 일했다. 나중에 단가 올려 달라고 공문을 여러 차례 보냈는데 (성동조선은) 묵살로 일관했다. 야간 돌려가면서 밤낮으로 일했는데 10몇억원 빚만 남았다. 이런 경우 자체가 처음이다”라고 했다. 그는 직원들과 ‘업체가 흘린 피로 성장하는 성동 각성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와 집회를 하고 있다.
성동조선의 또 다른 하청업체인 ‘신일류기업’의 임직원들도 집회를 함께하고 있다. 신일류기업은 2022년 7월부터 성동조선의 일을 해왔는데 건우와 같은 이유로 지난 8월 28일 조업을 중단했다. 조선업계에서 원청의 일감을 받아 살아가는 하청업체가 원청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다시는 업계에 발을 들이지 못할 수 있다는 각오도 필요하다. 신일류기업의 김동환 대표(55)는 “원통하고 억울해서 나왔다. 접는 그날까지도 24시간 맞교대로 업을 이끌어왔다. 그랬는데도 올해만 적자가 8억원을 넘는다. 단가 안 맞는다고 수없이 공문을 보냈다. 원청 찾아가 호소도 많이 했다. 그런데 (원청에서는) ‘그러면 (하청업체를) 정리하라’고 한다. 하기 싫으면 나가라는 식”이라고 했다.
성동조선의 입장은 판이하다. 하청업체들이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본다. 성동조선은 지난 9월 4일 입장문을 통해 “사내하도급 협력사와 적법한 계약을 통해 정상적 거래를 유지하고 있다. 협력사가 주장하는 불공정한 거래는 사실이 아니며, 기업 운영에 충분한 공사대금을 책정 및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두 하청업체가 거리로 나오게 된 과정을 살펴봤다. 성동조선의 주장과는 달리 계약서도 쓰기 전에 하청업체가 공사에 투입되는 등 하도급법이 금지하는 불공정 행위도 있었다. 또 다단계 하도급에 의존하는 생산 구조, 원·하청 간 정보 및 협상력의 불균형 등 조선산업의 구조적 문제도 자리했다. 이는 조선업계에서 원·하청 불공정 거래 논란이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청업체의 끝은 임금체불
한국의 조선소에서 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원청은 만들어야 할 배를 여러 덩어리로 나눠 각각을 하청업체들에 맡긴다. 하청업체는 자체적으로 노동자들을 모아서 덩어리를 완성한 후 원청으로부터 기성금(도급비)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하청업체는 ‘노동자처럼 일하지만 형식적으로는 사업자’인 ‘물량팀’에 일감 일부를 재하청한다. 이렇게 완성된 각각의 덩어리를 이어 붙여 배 한 척이 건조된다.
철판을 잘라서 접고 굽히고 이어 붙이는 일이 대부분이고 자동화도 까다롭기에 노동집약적일 수밖에 없다. 직접 생산공정을 맡는 노동력의 대부분은 하청업체에서 나온다. 2022년 기준 조선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9만3000명인데, 원청이 4만1000명, 하청이 5만2000명이었다. 생산직만 보면 원청이 2만3000명, 하청이 4만8000명으로 하청 비중이 67.6%였고, 직접 생산인력으로 좁히면 전체 5만1000명 중 하청업체 소속이 4만명(78.4%)이었다. 조선업은 모든 업종 중 하청노동자의 비중이 가장 높다.
일한 대가로 하청업체가 받는 기성금의 90% 이상은 소속 노동자들의 인건비로 쓰인다. 일이 생각대로 안 풀릴 때 하청업체의 지상 과제는 인건비를 밀리지 않고 지불하는 것이 된다. 20년간 조선업에 종사한 한 하청업체 관계자는 “하청업체의 끝은 임금체불”이라며 “이 바닥에 오래 있었던 분 중에 자기 명의로 하청업체 운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성금이 부족하면 원청에서 가불을 받거나 대출을 받으면서 버티다가 그래도 부족하면 (노동자들) 4대 보험을 체납하고, 세금을 체납하고, 결국에는 임금을 체불한다. 계속 일을 하려면 사업자 명의를 바꿀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인건비를 줘야 하는 하청은 기성금을 쥐고 있는 원청에 끌려다닐 공산이 크다. 건우와 신일류기업은 물량팀을 포함해 각각 120여명의 인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건우는 지난 6월부터, 신일류기업은 지난 7월부터 임금을 다 지급하지 못했다. 성동조선의 기성금 지급일은 매달 20일. 건우는 지난 7월 기성금을 다른 하청업체들보다 늦은 25일에야 받았다. 기성금 지급일 며칠 전부터 원청의 관계자가 건우와 건우의 하청을 받는 물량팀의 출금 내역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김동근 대표는 “내가 내건 줄 수 있는데, 물량팀은 다른 사업자인데 어떻게 주냐고 했다. 그랬더니 안 가져오면 돈을 못 준다는 거다. 진짜 우리만 돈이 안 나왔다. 당장 (소속 노동자들) 임금 나가야 하는데 난리가 났다. 물량팀에 부탁해서 내역 받은 거 주고, 무릎 꿇다시피 했다. 그런데 각서를 쓰라고 하더라. 하도 적자를 보니까 그때 성동조선에서 가불을 받은 게 3억2000만원 정도 남아 있었는데 ‘12월 말일까지 다 갚는다, 못 갚으면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각서에 지장 찍고 나왔다.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했다. 건우는 협박, 강요, 개인정보법 위반 혐의로 성동조선 측을 경찰에 고발했다.
결론만 있고 계산식은 없다
일반적으로 하청업체는 단가가 어떻게 정해지는지 알 수 없다. 건설업과 달리 조선업은 표준품셈과 같은 공통된 기준이 없고, 원청사는 단가를 책정하는 기준을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는다. 단가를 산정하는 계산식이 없는 셈이다. 통상 현장에서는 원·하청 간 협의로 인건비와 기성금 사이의 균형을 찾는다. 예컨대 인력을 얼마나 투입해야 하는 작업인지 알 수 없는 경우, 일단 작업을 시작해 투입된 시수(해당 작업을 완료하는 데 투입된 시간으로 여기에 인건비를 곱해 기성금이 정해진다)를 반영해 추후 단가를 조정한다.
그런데 그 균형이 현저히 무너졌다는 게 두 대표의 주장이다. 건우의 김동근 대표는 센터코밍(안쪽으로 물이나 기름이 들어오지 못하게 볼록하게 솟아 있는 테두리 구조물) 작업을 예로 들었다. 지난해 8월 건우는 센터코밍 블록을 만들고 성동조선에 330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이 일을 하며 실제 쓴 돈은 1395만원에 달했다. 이 작업을 위해서는 철판을 설계대로 구부리거나 펴는 곡직이 필요한데, 숙련된 곡직사를 부르는 데만 120만원가량이 들었다. 매번 1000만원가량의 손해를 보면서 지난해 6월까지 이 작업을 6차례 했다. 건우는 지난 8월 성동조선에 “투입된 인건비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저단가로 인해 인건비에 대한 어려움으로 성동조선 ○○○과 미팅을 해 투입시수로 계산을 하기로 하고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이후 성동조선 ○○○에게 투입된 블록시수 자료를 드리고 블록에 투입된 시수를 계산하여 정산하여 줄 것을 요청했으나 지금 현재까지도 지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성동조선은 하청업체의 낮은 생산성이 원인이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하청업체라면 쉽게 끝낼 일에도 많은 인력을 오랜 시간 투입함으로써 스스로 손실을 키웠다는 얘기다. 두 업체만의 문제라면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성동조선에서 못 버티고 나간 업체는 이들만이 아니다. 성동조선은 하도급 불공정 거래 혐의로 이미 2건의 신고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접수됐다. 지난 8월에 건우와 신일류기업이 철수한 데 이어, 9월에는 2개 업체가 더 철수할 예정이다. 30여개에 달했던 성동조선의 사내하청업체 수는 9월 말 기준으로 22~23개 수준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성동조선의 하청업체로 일했던 A업체도 조만간 성동조선을 공정위에 신고할 계획이다. A업체의 관계자 B씨는 “1년을 다 못 채우고 도무지 버틸 수 없는 상태가 돼서 나왔다. 그때까지 6억원 정도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A업체의 정산 내역을 보면, 과연 업체의 생산성만이 문제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통상 조선업 원청은 목표를 제시하고 하청업체가 달성한 실적에 따라 기성금을 지급한다. 목표를 초과 달성하면 하청업체는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A업체는 월별로 두 차례 목표치 이상의 실적을 내고도 수천만원대 적자를 면치 못했다. B씨는 “하청업체가 다 잘했다는 것 아니다. 10시간 들어갈 일을 (우리가) 12시간 했을 수도 있고, 세 사람 할 일을 네 사람이 했을 수도 있다. 그걸 감안해도 월에 1000만~2000만원 펑크가 나야 이해라도 하지 어떻게 1억원 넘게 구멍이 나냐”고 했다. 애초 단가 설정이 지나치게 낮았다는 얘기다.
A업체는 계속되는 적자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성동조선에 요청했다. A업체가 맡은 작업장에 방치된 설비를 정리해 공간활용도를 높이고, 최소 2개월 전에 물량을 확정해주는 방안 등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성동조선은 뚜렷한 답을 하지 않았다. 하청업체의 낮은 생산성을 문제로 지적하면서도, 생산성 향상을 위한 원·하청 협력은 없었던 셈이다.
고용 부담은 하청업체 몫
인건비 상승도 하나의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업 원·하청의 불공정 거래 사례를 보면, 이 문제는 특정 시점에 집중적으로 불거지는 경향을 보인다. 하나는 호황기에서 불황기로 접어들 때다. 일감이 줄어든 원청은 호황기에 늘렸던 유연한 노동력인 하청을 빠르게 줄여나간다. 갑작스러운 허리띠 졸라매기에 도산하는 하청업체가 늘어나고 불공정 거래 신고도 늘어난다. 또 다른 시기는 불황기에서 호황기로 접어들 때다. 갑자기 많은 인력이 필요해지는데 불황에 조선소를 떠난 인력을 복귀시키기 위해 인건비가 상승한다. 원청이 기성금에 인건비 상승분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으면 하청업체는 일을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된다. 불공정 거래의 이면에는 고용 부담의 상당 부분을 하청업체가 지고 있는 기형적인 구조가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적으로 새로 건조하는 선박의 가격은 2008년 말부터 하향세를 보이다가 2021년 상승세로 전환했다. 현재는 불황에서 호황으로 접어든 국면으로 인건비가 상승하고 있다. 김동환 신일류기업 대표는 “떠난 숙련공을 데려오자니 인건비가 많이 올랐다. 성동조선 일을 처음 시작하려고 사람을 모을 때는 한 달 치 월급을 선불로 주고 데려오기까지 했다.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시간당 3만원은 넘는다고 본다. 우리도 살아보려고 (노동자들 인건비를) 낮추는 부분이 있지만, 업체는 (우리보다 인건비를) 더 낮게 책정한다. 거의 2만4000~2만5000원 수준으로 책정했다고 본다”고 했다.
성동조선 측은 현재의 기성금에 인건비 인상분도 충분히 반영됐다고 주장한다. 성동조선은 공식입장문에서 “특히 해당 협력사는 1인당 월매출액(월인당 기성)이 600만~700만원 수준으로 상당한 기업이윤이 예상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근로자들은 임금 체불로 인해 노동부 신고까지 발생되고 있다”고 했다.
비교적 명백한 법 위반 사례도 엿보인다. 조선업이 불황에 직면한 2010년대에 들어, 공정위는 원·하청 불공정 거래를 이유로 조선업 원청사들에 줄줄이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가 문제라고 본 건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원청의 일방적인 하도급 대금 책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공사를 먼저 시키고 계약은 나중에 체결하는 ‘선공사 후계약 관행’이었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하도급법 위반 사항으로 좀처럼 인정되지 않았다. 상호 협의하에 하청의 생산성 향상분을 기성금에서 제외했다는 원청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등 양측의 협의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다만 선공사 후계약은 법 위반 사항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청업체들은 성동조선에서도 ‘선공사 후계약’이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신일류기업은 2023년 5월부터 공사를 시작했지만, 해당 공사에 대한 계약은 시작 후 1년 만에 체결했다고 했다. 건우 측은 10개월가량 계약서를 쓰지 않고 공사를 진행한 건이 있다고 했다. 이는 이들이 생산에 착수한 초기에 책정된 1t당 단가가 장기간 유지되는 상황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맡았다는 뜻으로, 단가 조정이 없었다는 업체 측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하도급법 전문가인 법무법인 도담의 김남주 변호사는 “조선업 원·하청에서 불공정 거래가 반복되는 원인은 조선업 자체가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이기 때문이다. 임금을 쥐어짜야 이윤이 생긴다. 원·하청이 대등하게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데다, 표준품셈이 공개되지 않는 것도 한 원인이다. 하청업체에는 대금이라는 결론만 알려주고, 그 결과가 나오는 공식은 알려주지 않는다”며 “건설업처럼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불공정 거래 행위를 엄격히 처벌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주간경향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