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의 가을이 가장 높고 깊은 곳으로 향한다. '최고 중의 최고'를 가리는 월드시리즈가 내일부터 시작된다. 올해는 LA 다저스와 뉴욕 양키스가 격돌하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벌써부터 흥분의 도가니인 이번 월드시리즈의 관전 포인트를 알아봤다.
역사
두 팀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메이저리그의 과거이자 현재, 미래를 선도한다. 메이저리그는 잘 모를지언정, 다저스와 양키스를 모르는 야구팬은 없다.

지금 메이저리그는 다저스의 시대다.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이 가운데 11번의 지구 우승을 달성했고, 월드시리즈 진출도 최근 8년간 네 번째다. 올해도 정규시즌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1위였다(98승64패 .605). 경기 당 평균 관중도 가장 많았다(4만8,657명).
양키스는 메이저리그가 창설된 이래 가장 찬란한 팀이다. 메이저리그를 지배하면서, 메이저리그의 흥행을 이끌었다. 통산 월드시리즈 우승 27회는 감히 명함을 내밀 수 있는 팀이 없다(다저스 7회). 지난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올해 정규시즌 아메리칸리그 승률 1위(94승68패 .580)를 차지하고, 15년 만의 월드시리즈 무대로 돌아왔다.
원래 두 팀은 맞수였다. 한때 뉴욕을 본거지로 삼아 자주 부딪쳤다. 양키스는 브롱스, 다저스는 브루클린에서 세력을 키웠다.
그 시절 다저스는 양키스와 7번의 월드시리즈에서 1승6패로 크게 밀렸다. 하지만 서부 LA로 연고지를 이전한 이후 월드시리즈 전적은 2승2패로 팽팽했다. 특히 가장 최근 맞대결인 1981년에 다저스가 우승했다.
1981년 다저스는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의 등장으로도 기억된다. 20살의 나이로 신인왕과 사이영상을 동시 석권하며 '페르난도마니아(Fernandomania)' 돌풍을 일으켰다. 그 해 다저스는 월드시리즈 1,2차전을 패하면서 위기에 몰렸는데, 3차전 선발 발렌수엘라가 9이닝 4실점 완투승을 따냈다. 이 승리를 발판삼아 4연승을 내달려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한편, 지난 수요일 갑작스러운 비보가 전해졌다. 43년 전 두 팀의 월드시리즈에서 다저스에게 첫 승을 안겨준 발렌수엘라가 세상을 떠났다. 다저스의 각오가 남다를 것으로 보인다.
왕중왕전
리그를 대표하는 두 선수가 정면승부에 돌입한다. 오타니 쇼헤이와 애런 저지다. 정규시즌 내내 끊이지 않았던 '누가 더 최고의 선수인가'에 대한 논쟁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됐다.

올해 오타니는 투타겸업 대신 호타준족이었다. 마운드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타석에서 풀어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50홈런 50도루 시즌을 선보였다(54홈런 59도루).
포스트시즌에서도 매섭다. 11경기 타율 .286 3홈런 10타점, OPS 0.934을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루상에 주자가 있을 때 성적은 13타수 8안타(.615) 2홈런 6볼넷이다. 오타니 자체도 위협적이지만, 양키스로선 다저스의 하위 타선을 내보내면 '주자 있을 때' 오타니를 마주해야 한다. 이는 하위 타선을 상대할 때 상당한 압박감을 준다.
정규시즌 오타니는 타석 당 볼넷률이 11.1%였다. 그런데 포스트시즌에서는 20.8%다. 타석 당 지켜보는 공의 개수도 정규시즌 3.88개에서 포스트시즌 4.32개로 늘어났다. 더 신중하게 공을 보면서 상대 투수를 괴롭히고 있다. 그러면서 출루율이 .434로 높은 편인데, 그에 비해 도루 시도를 많이 하지 않았다(1실패). 올해 오타니는 도루 성공률이 메이저리그 역사상 손에 꼽히는 주자이기도 했다. 양키스 포수들이 경계해야 한다.
단일 시즌 도루 성공률 (50회 이상)
96.2% - 맥스 커레이(1922)
94.0% - 지미 롤린스(2008)
93.7% - 오타니 쇼헤이(2024)
92.9% - 자코비 엘스버리(2013)
오타니가 오타니 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저지는 포스트시즌에서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다. 9경기 31타수 5안타, 타율 .161에 그치고 있다. 챔피언십시리즈에서 홈런 두 개를 때려냈지만, 장타율도 .387에 불과하다. 저지는 정규시즌 장타율이 .701에 달했다.

올해 저지는 역대 최고의 우타자였다. 타율(.322) 홈런(58) 타점(144)의 클래식 지표뿐만 아니라 세이버 지표도 뛰어났다. 조정득점생산력(wRC+) 218은 단일 시즌 우타자 최고 기록이다(1924년 로저스 혼스비 214). 하지만 포스트시즌 현재 조정득점생산력은 94로 평균 100에 미치지 못한다. 양키스는 저지가 생산력을 발휘해줘야 타선의 무게감이 완성된다.
저지가 부진하다는 건 저지가 정상궤도에 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다른 선수들이 선전했지만, 결국 양키스는 저지가 살아나야 하는 팀이다. 그래야 다저스와 분위기 싸움에서도 대등하게 갈 수 있다. 저지로선 이번 기회에 부담을 벗어던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시리즈 초반에 빨리 홈런을 신고해야 한다.
별들의 전쟁
두 팀은 스타군단이다.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설레게 하는 선수들이 여럿 있다. 타선의 트리오는 애칭도 생겼다. 다저스는 '오베프(오타니 베츠 프리먼)', 양키스는 '소저스(소토 저지 스탠튼)'라고 불린다.
무키 베츠는 자존심을 회복했다. 포스트시즌에 약하다는 오명이 있었지만, 챔피언십시리즈 6경기 26타수 9안타(.346) 2홈런 9타점으로 타선을 이끌었다. 양키스는 보스턴 시절 자주 만났다. 우측 펜스가 짧은 양키스타디움은 우익수 수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양키스는 지안카를로 스탠튼이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포스트시즌 9경기 동안 34타수 10안타(.294) 5홈런 11타점, OPS가 1.179다. 챔피언십시리즈 MVP에 선정될 만큼 엄청난 활약이었다. 덕분에 양키스는 저지가 아쉬웠어도 월드시리즈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예비 FA' 후안 소토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자신의 몸값을 높이고 있다(9경기 타율 .333 3홈런 OPS 1.106). 소토는 1번 글레이버 토레스와 3번 저지 사이에서 때로는 해결사, 때로는 조력자가 돼야 한다. 여기에 다저스는 선발진에 좌완이 없다. 소토가 좌완에게 지나친 약점이 있는 건 아니더라도 한결 편안한 상황인 건 분명하다.
소토 유형별 상대 성적 (통산)
우완 [타율] .293 [OPS] 1.000
좌완 [타율] .268 [OPS] 0.857
다저스는 프레디 프리먼의 발목 상태가 미지수다. 경기 출전은 강행하고 있지만, 부상 여파가 성적에서 드러난다(8경기 타율 .219 OPS .461). '챔피언십시리즈 MVP' 토미 에드먼을 비롯해 가을에 강한 키케 에르난데스, 파워를 제공하는 맥스 먼시와 테오스카 에르난데스 등이 힘을 합쳐야 한다. 다저스는 이번 포스트시즌 11경기 70득점으로, 경기 당 평균 6.4점을 올렸다. 경기 당 평균 4.8득점의 양키스보다 타선의 짜임새는 더 좋았다.
원투펀치
이번 포스트시즌은 초반에 선발 투수들의 역투가 돋보였다. 잭 윌러(필라델피아)와 타릭 스쿠벌(디트로이트) 마이클 킹(샌디에이고) 등 선발 투수가 지배한 경기들이 있었다. 그런데 갈수록 선발 투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었다. 선발진을 갖추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나마 선발 야구를 지탱하는 팀이 양키스다. 게릿 콜과 카를로스 로돈이 버텨주고 있다. 아무리 이전 같지 않아도 콜은 에이스다(3경기 1승 ERA 3.31). 에이스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최소한의 실점으로 막아줄 수 있다. 양키스는 이번 포스트시즌 콜이 나온 3경기는 모두 승리했다. 2선발 로돈도 타자를 힘으로 누를 수 있는 구위를 가지고 있다.
다저스는 잭 플래허티와 야마모토 요시노부로 대응한다. 두 투수 모두 잘 던진 경기가 있었지만, 크게 무너진 경기도 있었다. 심지어 1차전 선발로 예고된 플래허티는 직전 등판 내용이 3이닝 8실점이었다. 시즌 막판 구속 저하 이슈가 있었는데, 지난 등판도 포심 구속이 더 떨어졌다. 결과도 결과지만, 과정이 좋지 않은 점이 불안하다.
플래허티 포심 평균 구속 변화
디비전 2차전 : 93.6마일 <42구>
챔피언 1차전 : 92.6마일 <45구>
챔피언 5차전 : 91.4마일 <26구>
*정규시즌 포심 평균 93.3마일
7전 4선승제 시리즈에서 원투펀치는 두 번 이상 나올 수 있다. 1차전 선발은 위급할 때 불펜 투수로도 올라온다. 양키스는 콜과 로돈이 포문을 잘 열어줘야 한다. 두 팀 전력에서 확실한 우위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거기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면 승산은 떨어진다.
불펜
포스트시즌에서 불펜은 우승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됐다. 또한 이번 포스트시즌은 선발보다 불펜이 소화한 이닝이 더 많다(선발 323이닝, 불펜 347.1이닝). 불펜 야구가 대세가 됐다.
불펜 야구가 익숙한 팀은 다저스다. 디비전시리즈부터 최소 한 경기는 오프너를 내세운 불펜 야구를 해왔다. 전성기 시절 구위를 뽐내는 블레이크 트라이넨을 중심으로 에반 필립스와 마이클 코펙, 앤서니 반다 등이 잘해주고 있다. 다저스는 오른쪽 옆구리 부상으로 챔피언십시리즈를 결장한 알렉스 베시아도 복귀가 유력하다. 반다와 베시아가 소토를 필두로 한 양키스 좌타자 라인(리조 웰스 버두고)을 막아줘야 한다.
양키스는 디비전시리즈에서 불펜진이 15.2이닝 무실점을 합작했다. 챔피언십시리즈는 23이닝 11실점(ERA 4.30)으로 출혈이 있었지만, 만만하게 뚫을 수 있는 불펜은 결코 아니다. 마무리 루크 위버의 피칭이 물이 올랐다. 관건은 위버를 필요할 때만 쓸 수 있도록 다른 동료들이 도와줄 수 있는지다. 그 누구도 혹사 앞에선 장사가 될 수 없다.

로버츠
로버츠 감독은 인물이 인물이다. 가을만 되면 웬만한 선수들보다 더 주목 받는다. 단기전은 감독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가을마다 큰 화제가 되는 감독은 보기 드물다.
올해 로버츠 감독은 야구가 계획대로 풀린다. 디비전시리즈 4차전 불펜 경기가 그랬고,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전체적인 구상도 그랬다. 단기전에서 '내줄 경기는 내준다'는 건 논란이 될 수 있는데, 로버츠 감독은 결과로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러한 운영을 통해 불펜 과부하가 걸리는 것도 막았다.
타순 구성도 모두를 놀라게 했다. 챔피언십시리즈 4차전과 6차전에서 파격적으로 에드먼을 4번에 기용했다. 그리고 에드먼은 2안타 3타점, 2안타(홈런) 4타점으로 로버츠 감독 믿음에 부응했다. 다저스의 다득점 경기 이면에는 로버츠 감독의 용병술도 있었다.
올해 로버츠는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하는 입장이었다. 포스트시즌에서 일찍 탈락했다면 감독 자리가 위험했다. 하지만 달라진 모습으로 월드시리즈 진출을 이뤄냈다. 로버츠 감독의 위풍당당한 표정이 월드시리즈에서도 나올지 지켜봐야 한다.
-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