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사제총기 사건 누명에 고초"…부마항쟁 관련자 13인 수기집 발간

신심범 기자 2023. 1. 2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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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당시 '마산 사제총기 사건'의 총기 제작자로 몰려 억울한 고초를 당한 사연이 수기집을 통해 공개돼 눈길을 끈다.

설진환 회장은 "마산 사제총기 사건의 당사자 증언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지금 우리들이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 실천해야 할 것은 '그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고, 이를 분석하고 해석을 붙이는 작업이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해 이번 사업을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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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당시 ‘마산 사제총기 사건’의 총기 제작자로 몰려 억울한 고초를 당한 사연이 수기집을 통해 공개돼 눈길을 끈다.

사진=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항쟁 참여자와 목격자 등 13명의 기억을 담은 수기집 ‘아직도 생생한 그 날의 기억’을 출간했다고 26일 밝혔다. 지난해 9월 체험수기 공모를 진행한 사업회는 두 달에 걸쳐 접수된 13편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고문과 협박을 견디지 못해 친구 3명을 동조자로 지목한 뒤 죄책감에 평생을 고통받은 사연 등이 담겼다.

수기집에는 이른바 ‘마산 사제총기 사건’ 관련자로 지목돼 억울한 고초를 겪은 정광준(66) 씨의 증언이 실렸다. 1979년 10월 20일, 최창림 당시 마산경찰서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시위 현장에서 총기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이를 근거로 그는 “배후에 조직적 불순세력이 개입된 징후가 농후하다”고 주장했다. 18일 밤 10시 마산시 창동 황금당 골목 시위 현장에서 성명불상의 누군가 총기를 발사했고, 이를 본 시민이 그를 추격하자 총을 버리고 도주했다는 것이다. 길이 15㎝(총신 10㎝)의 이 총기는 손잡이 없이 스프링 고리가 달려 있었다. 총기보다는 공사장에서 쓰이는 신호탄에 가까운 형태였다.

당시 정 씨는 창원공단 내 삼성라디에이터에서 부품 품질 검사원으로 일했다. 부마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그의 책상에서 스프링이 나왔다는 이유로 정 씨를 사제 총기 제작자로 지목해 끌고갔다. 그의 절친한 벗이자 부마항쟁 참여자인 고(故) 김종철 씨가 당시 대학에서 운동권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 영향을 줬다. 수사본부는 정 씨에게 그가 총기를 제작했으며, 친구 김 씨는 공산권의 사주를 받은 간첩이라고 몰아갔다.

정 씨는 “사제 총과의 관련은 그야말로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었다”며 “(사제 총기 근거로 지목된) 그 스프링은 라디에이터 캡에 들어가는 필수 부품이고 나는 그 스프링도 품질 검사하는 사원이었다”고 썼다. 그는 또 “사제 총을 내가 제작했다는 얘기가 없자 그 과정에서 온갖 구타를 당해야만 했던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마산 사제총기 사건은 군에 의한 조작 사건으로 판정딘 바 있다.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및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는 2021년 12월 채택된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보고서’에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이 시위자 관련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허위 자백을 받기 위한 고문, 폭행 등 가혹행위가 자행됐고, 배후세력을 만들기 위해 마산 사제총기 사건을 조작했다고 판단했다.

설진환 회장은 “마산 사제총기 사건의 당사자 증언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지금 우리들이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 실천해야 할 것은 ‘그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고, 이를 분석하고 해석을 붙이는 작업이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해 이번 사업을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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