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브리아기 대폭발로 알려진 캄브리아기 방산에 동물의 배설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가설이 제기됐다. 장을 가진 동물이 늘면서 바다에 대량의 분변이 생겼고, 이것이 유기물과 영양분을 깊은 바다까지 실어 나르면서 새로운 생태 공간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주장이다.
호주 플린더스대학교와 독일 카를스루에 주립자연사박물관 공동 연구팀은 이달 초 국제 학술지 Trends in Ecology & Evolution에 이런 내용을 담은 조사 보고서를 냈다. 캄브리아기 방산은 약 5억 년 전 지구 생명체가 폭발적으로 다양해진 사건을 일컫는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분변 화석(coprolite)이다. 분변 화석은 동물이 먹이를 소화한 뒤 몸 밖으로 배출한 물질이 화석으로 남은 것으로, 당시 생물의 먹이와 소화 방식, 생태계 구조를 추측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흥미로운 점은 최초의 동물이 약 6억 년 전에 등장했는데, 분명한 분변 화석은 캄브리아기 초기에야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화석 기록을 보면, 캄브리아기 시작 무렵에는 분변 화석이 많지 않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크기와 형태가 다양해졌고, 캄브리아기 중기에 이르러 훨씬 큰 배설물이 등장했다.
이런 변화는 동물의 소화기관 진화와 맞물린다. 초기 동물 가운데는 먹이를 받아들이는 입과 배설물을 내보내는 기관이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후 먹이가 한 방향으로 통과하는 장을 가진 동물이 늘면서 소화된 먹이를 덩어리 형태, 즉 똥으로 배출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연구팀은 배설물이 단순한 생물의 부산물에 그치지 않았다고 봤다. 현재 바다에서도 동물이 배출한 분변은 해수 속 입자성 유기탄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특히 무게가 있는 분변은 해수면 부근에서 만들어진 유기물을 품은 채 아래로 가라앉아 깊은 바다까지 양분을 운반한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이 같은 과정이 캄브리아기에도 작동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장을 가진 동물이 늘고 배설물이 커지면서 해수면 가까이에 머물던 유기물과 영양소가 더 깊은 수심까지 내려갔다는 것이 연구팀 의견이다.
카를스루에 주립자연사박물관 고생물학자 줄리언 키미그 큐레이터는 “영양분이 부족해 생물이 정착하기 어려웠던 깊은 바다도 분변이 공급되면서 새로운 서식지로 변화했다”며 “해저에 떨어진 유기물을 먹는 생물이 늘고, 분변 자체를 이용하는 생태적 관계도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생물의 대형화가 이 흐름을 더 촉진했다고 추측했다. 캄브리아기가 진행되면서 동물의 몸집과 먹이 종류가 다양해졌고, 이에 따라 배설물 역시 커지고 복잡해졌다. 큰 동물은 더 많은 먹이를 먹고 더 많은 배설물을 남겼다. 이 배설물이 다시 깊은 바다로 더 많은 유기물과 영양분을 운반하면서 수많은 생물이 살아갈 환경이 만들어졌다.

연구팀은 이런 순환이 캄브리아 방산을 촉진한 주된 요인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장의 진화가 단순히 개별 동물의 소화 능력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바다 전체의 영양물질 이동 방식까지 바꿨다는 의미다.
줄리언 키미그 큐레이터는 “물론 캄브리아기 방산을 배설물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면서도 “당시 생물 다양성이 급증한 원인을 놓고는 해양과 대기의 산소 증가, 포식 관계의 등장, 생태적 경쟁, 새로운 신체 구조의 진화 등 다양한 설명이 제시돼 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연구 역시 새로운 화석을 발굴해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이 아니라 기존 분변 화석과 소화기관 화석, 캄브리아기 영양 순환 연구를 종합한 결과”라며 “배설물이 그동안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않았던 캄브리아기 생태계 변화의 한 축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한 점에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지연 기자 yeon@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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