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불법 알고도 ‘블랙리스트’ 활용 정황…“입사 막기 위함” 명시

김채린 2026. 1. 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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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 과거 직고용 배송 노동자인 '쿠팡친구'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블랙리스트' 성격의 명단을 관리하며 활용한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앞서 쿠팡의 물류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가 노동자들의 재취업을 제한하기 위한 블랙리스트(PNG 리스트)를 운영했다는 MBC 보도가 2024년 나왔었지만, 쿠팡 본사 차원의 '블랙리스트' 활용 정황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특히 쿠팡은 이같은 명단을 활용하는 행위에 대해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가 크다"고 자체 평가했던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 쿠팡친구 채용 시 '심사숙고 고려대상자 명단' 있었다…영어로 "blacklist" 표기

KBS가 확보한 쿠팡 내부 이메일을 보면, 쿠팡 인사·노무 준법 담당부서(HR Compliance) 직원 A 씨는 2020년 11월 12일 " 채용절차법에 대한 고용노동부 점검(11/20예정) 대비 회의 결과 공유"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내부 구성원 10여 명과, 김앤장 변호사(인사·노무 파트) 1명에게 발송했습니다. (해당 변호사는 현재 쿠팡으로 자리를 옮겨 전무급으로 근무하고 있는 걸로 확인됐습니다.)

이 메일 수신자에는 헤럴드 로저스 현 쿠팡 대표(당시 쿠팡 경영관리 총괄 수석부사장)가 포함됐습니다.

A 씨는 이메일에서 "오늘(11월12일 목요일) 저녁에 채용절차법에 대한 고용노동부 점검 대비를 위해 ○○님, ○○님, ○○님 등이 참석한 가운데 김앤장, 법무팀과 함께 회의를 가졌다"며 "이 중 몇 가지 의사결정이 필요한 중요한 사항이 있어 이에 대해 간단히 보고드린다"고 밝혔습니다.

중요한 사항 가운데는 " 쿠팡친구 채용 과정에서 활용되는 심사숙고 고려대상자 리스트 문제"가 포함됐습니다.

쿠팡친구는 쿠팡이 직접 고용하는 배송기사입니다. 쿠팡은 2014년 처음으로 배송직원을 고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이들을 '쿠팡맨'이라고 불렀고, 2020년 7월 말부터는 '쿠팡친구'로 명칭을 바꿨습니다.

2020년 9월 ‘쿠팡친구 채용’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쿠팡친구 홍보 글


이메일 내용을 보면, 심사숙고 고려대상자 리스트"고령자, 운전테스트시 태도불량자, 해고로 퇴사한 인력, 성범죄이력자 등을 리스트로 관리하다가 해당 인력이 쿠팡친구에 입사 지원을 할 경우 해당 인력의 입사를 사전에 막기 위한 것"으로 소개됐습니다.

'심사숙고'라는 모호한 표현을 썼지만, 쿠팡 설명을 보면 실질적으로는 특정 지원자가 채용되는 것을 사전에 배제하고 차단하기 위한 용도의 리스트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로저스 당시 수석부사장 등을 위해 내부 번역을 거쳐 보내진 영어 이메일에는 더 직접적인 용어가 쓰였습니다.

심사숙고 고려대상자 리스트를 blacklist 또는 special attention list로 번역한 겁니다.

■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 커…정당화 법률 있는지 김앤장이 연구해 보고할 예정"

쿠팡도 이 리스트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메일에서는 이 리스트에 "법적 제약조건"이 있다며 "근로기준법 제40조 근로자에 대한 취업방해 금지 규정에 저촉됨(위반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고 쓴 내용이 확인됩니다.

근로기준법 40조는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 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ㆍ사용하거나 통신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는데, 심사숙고 고려대상자 리스트가 이 조항에 위반된다고 쿠팡 스스로 검토한 겁니다.

이 때문에 약 일주일 뒤에 예정된 고용노동부의 점검 전에, 이 문제를 '중요한 사항'으로 보고한 걸로 보입니다.

이메일은 이어 이 리스트의 "이슈"라며 " 심사숙고 고려대상자 리스트 없이 쿠팡친구의 채용을 진행할 경우, 배송업무시 고객이나 공중의 안전을 해칠 위험이 있는 자가 채용될 위험이 있음"을 언급했습니다.

'블랙리스트'를 별도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배송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을 채용 시에 걸러내기 어렵다고 봤던 겁니다.

이에 이메일은 "의사결정 대안"을 설명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현재의 심사숙고 고려대상자 리스트는 취업방해를 할 인력을 직접적으로 관리하기에 근로기준법 제40조 위반 소지가 큼"이라고 재차 지적한 뒤, "그러나 (1)다른 우회적 방법으로 쿠팡친구 중 고객이나 공중의 안전을 위협할 잠재적 위험 인물의 입사를 예방할 수 있는지 여부 (2)근기법 제40조 취업방해금지 조항에도 불구하고, 심사숙고 고려대상자 리스트의 사용을 정당화할 수 있는 다른 법률이 있는지 여부 등을 김앤장이 추가 연구하여 보고할 예정임"이라고 돼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일(11월 13일 금요일) 중 김앤장의 자료가 준비되는대로 추가 회의를 열어 HL(헤럴드 로저스)님, ○○님, ○○님의 의사결정을 받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블랙리스트' 관리 외에 "잠재적 위험 인물의 입사를 예방"하는 또 다른 "우회적 방법"을 찾아보거나, 다른 방법이 마땅치 않다면 이 리스트 활용을 법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논리가 있을지 살펴봄으로써 노동부 점검 전에 대책을 세우려 했던 걸로 보입니다.

2025년 12월 31일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해럴드 로저스 쿠팡 대표


■ 쿠팡, 노동부 점검 일주일 전 '블랙리스트' 삭제 결정

그럼 결국 쿠팡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위 메일 발송일로부터 이틀이 지난 2020년 11월 14일, A 씨는 " 채용절차법 점검 대비 Action item 공유"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내부 구성원 10여 명과, 김앤장 변호사(인사·노무 파트) 2명에게 발송했습니다.

action item이란 지금 당장 해야 할 조치를 뜻하는데, 심사숙고 고려대상자 리스트에 대한 조치도 이메일에 등장합니다.

이메일은 "11월 13일자 회의에서 합의된 내용 정리"라는 제목 아래 2번 항목으로 "쿠팡친구 심사숙고자 리스트"를 넣었습니다.

그 내용으로는 "‘심사숙고자 리스트’ 및 ‘과거재직자 재입사 추천/비추천 정보’ 모두 삭제"와 " ‘과거재직자 정보’는 보관(단, ‘재입사 추천/비추천 정보’ 모두 삭제)" "(기타: 구글시트 리스트는 Sharepoint로 transition 필요)"가 확인됩니다.

의사결정권자들의 논의를 거쳐, 해당 '블랙리스트'를 삭제하기로 결정했단 내용입니다.

이 리스트 외에도 쿠팡은 과거재직자들에 대해 '재입사 추천·비추천 관련 정보'를 관리한 사실이 위 이메일 내용으로 확인되는데, 이 정보 역시 문제 소지가 있어 삭제하기로 결정한 걸로 보입니다.

또 구글 시트에 있던 리스트를 회사 공식 문서 관리 시스템인 SharePoint로 옮기라는 내용도 있는데,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를 줄이기 위한 조치였던 걸로 추정됩니다.

이 이메일에 따르면, 쿠팡은 심사숙고 고려대상자 리스트 삭제의 책임자로 쿠팡친구(CPF) 채용 및 교육 담당자 B 씨를 지정했습니다.

그러면서 "Action item은 11월18일(수)까지 모두 마무리해야 합니다"라고 마감 기한을 못박았습니다. B 씨의 경우, 심사숙고 고려대상자 리스트 삭제를 이때까지 끝내야 했던 겁니다.

이틀 뒤인 11월 16일 A 씨가 쿠팡 내부 구성원 10여 명과 김앤장 변호사 3명에게 보낸 이메일을 보면, B 씨가 "특별 관리 리스트는 삭제되었다"고 확인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다만 B 씨는 오늘(8일) KBS 기자와의 통화에서 "심사숙고 고려대상자 리스트가 있었냐" "당시 그 리스트를 지웠냐"라는 질문을 받고 "말씀드리기 어려울 거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KBS는 쿠팡 측에 '심사숙고 고려대상자 리스트'를 작성하고 활용한 적이 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고용노동부 점검을 앞두고 삭제한 사실이 있는지 물었지만, 관련 답변을 받진 못했습니다.

쿠팡은 다만 "해임된 임원이 불만을 가지고 왜곡된 주장을 일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 "불법·위헌적 리스트…어디까지 활용됐나"

이메일 내용을 쭉 살펴보면, 적어도 2020년 당시 쿠팡에 쿠팡친구 채용 과정에서 활용한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노사관계와 인적자원관리 분야를 연구하는 신은종 교수(단국대 경영학과)는 이에 대해 "쿠팡이 이런 리스트를 관리했다는 게 놀랍다"며 "매우 전근대적인 초기 산업화 시절의 블랙리스트하고 똑같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쿠팡이 입사를 사전에 막기 위한 기준으로 세운 "고령자, 운전테스트시 태도불량자, 해고로 퇴사한 인력, 성범죄이력자 등"의 내용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신 교수는 "'운전테스트 시 태도불량자'는 시험에서 시켜보고 거르면 되는데 왜 리스트로 보관하냐"며 "특히 해고자는 해고의 사유가 다양한데, 그 사유가 정당한지 부당한지를 고려하지도 않은 채 단지 해고자라는 이유로 심사숙고 대상자로 넣었다는 건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해고 당했다는 사실, 성범죄 전력이 있다는 사실은 모두 본인이 아니면 접근하기 쉽지 않은 개인정보"라며 "그런 정보를 불법적으로 수집하고, 동종업계에서 공유한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도 강조했습니다.

또 '성범죄이력자'와 관련해서는 "유죄 판결이 확정된 사람일지라도, 이미 국가에서 형벌을 받았는데 채용에 불이익을 준다면 그건 부당한 이중처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같은 블랙리스트는 헌법 제32조 제1항이 보장하는 '근로의 권리'를 침해해 위헌적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노사관계와 인사조직 전문가인 정흥준 교수(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는 "우리 헌법은 일할 권리를 광범위하게 보장하고, 국내 법률에서 취업 제한은 성범죄자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제한, 공직 퇴직자의 취업 제한 등 매우 예외적으로만 허용된다"면서 "쿠팡은 '리스트' 활용 이유로 소비자 안전을 내세웠지만,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기준으로 취업을 방해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쿠팡이 만약 모-자회사 간, 또는 자회사간 이같은 리스트를 공유했다면 더 큰 문제"라면서 "쿠팡이 어디까지 이 리스트를 활용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결국 자세한 사실관계들을 밝히려면, 심사숙고 고려대상자 리스트에 대한 수사가 필요할 걸로 보입니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2024년 알려진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의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데, 이에 더해 쿠팡 본사 차원에서도 블랙리스트가 작성돼 활용됐단 사실이 확인되면 기존 수사에 더 속도가 붙을 걸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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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린 기자 (di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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