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리면 재산은 ○ ○ 에게”… 늘어나는 유언신탁, 4조 육박

김지현 기자 2025. 9. 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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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사에 자산관리 맡기고 상속 설계… 가입자 매년 증가세
현금·증권·부동산 등 신탁 대상
상속 방식 설계한 뒤 변경 쉽고
금액기준 등 ‘가입문턱’도 낮아
고령화속 1인가구 늘며 수요↑
5대 은행, 전담 조직 속속 출범

유언대용신탁에 대한 관심이 노년층을 넘어 중장년층 사이에서도 확대되고 있다. 유언대용신탁은 생전에 계약을 맺어 금융사에 자산관리를 맡기고 계약자가 사망하면 체결한 계약 내용에 따라 재산을 배분하는 신탁 상품이다.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가치 상승으로 상속 재산이 증가하는 데다 가입 문턱도 낮아지면서 대중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유언대용신탁 잔액은 지난 7월 기준 3조88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말과 비교해 약 3800억 원 증가하며 지난해 연간 증가분에 육박했다. 이 같은 증가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안에 잔액이 4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언대용신탁 시장 규모는 지난 2020년 말 8700억 원에 불과했으나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2021년 1조 원을 돌파한 뒤 2022년 2조500억 원, 2023년 3조1100억 원으로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났다.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노후 자산 관리와 상속을 설계하려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부양가족이 없는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치매 등에 대비해 은퇴 이후 자산 설계에 나서려는 중장년층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유언대용신탁은 고객(위탁자)이 금융사(수탁자)와 계약을 맺고 재산을 맡긴 후 배우자, 자녀, 손자 등에게 배분하는 금융서비스다. 고객은 생전에 금융사를 통해 재산을 운용하다가 사후에 가족에게 재산을 지급할 수 있다. 현금, 증권, 채권, 부동산 등 자산이 신탁 대상이다.

유언대용신탁의 가장 큰 장점은 재산 관리 및 상속 방식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들은 빼고 손자에게만 재산을 물려주는 등의 방식으로 상속자를 선택적으로 지정할 수 있다. 딸이 미성년일 때는 연금 형식으로 매달 100만 원씩 준 뒤 성인이 되면 잔액을 지급하는 등 구체적인 지급방식도 정할 수 있다. 자녀가 부양 의무를 다해야 재산을 상속한다는 조건을 달 수도 있다.

유연하게 설계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유언 내용 변경도 자유롭다. 유언장은 내용을 바꾸려면 새로 써야 하고 자필증서, 녹음, 공증 등이 필요해 작성 과정이 복잡하다. 하지만 유언대용신탁은 은행을 통해 계약서를 변경하는 것으로 쉽게 내용을 바꿀 수 있다. 유언장 진위 여부나 분실 위험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은행권은 가입 금액에 대한 부담을 낮춰 고액 자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평범한 중산층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신한은행이 지난 4월 출시한 간편형 상품은 최소 가입금액 기준을 없애고 수수료도 대폭 낮췄다. 지난달 초에는 유언대용신탁 금전기본계약 상품을 내놨는데 역시 최저 금액 제한이 없다.

국민은행은 가입금액을 1000만 원으로 낮춘 간편형 상품을 지난 6월 선보였다. 10억 원이었던 최소 가입 금액이 크게 낮아지면서 신탁계약자가 몰려 잔액이 수백억 원 늘어났다. 우리은행도 최저 금액을 1000만 원으로 낮춘 상품을 이달 중에 출시한다. 농협은행은 금전형 상품의 경우 500만 원부터 가입할 수 있고, 종합형은 최소 가입금액을 3억 원에서 5000만 원으로 낮췄다.

국내 금융권 중 유언대용신탁 시장에 가장 먼저 진출한 하나은행은 단순히 사후 자산 분배에만 국한하지 않고, 고객 생애 전반에 걸쳐 신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치매 발병 전에 미리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재산 관리 방식을 계약해두고, 발병 이후에는 법원 절차와 연계해 성년후견지원신탁을 진행하는 식이다. 금융권 최초로 치매 전담 특화 조직인 ‘치매안심금융센터’도 신설했다.

신탁 상품은 고객 필요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사후에 고객이 지정한 사회단체에 자금을 기부하는 ‘기부 신탁’, 장애인 고객이 증여받은 재산을 관리하는 ‘장애인 신탁’, 노후 의료비·요양비 지출에 대비해 자금을 예치해두고 필요할 때 출금하는 ‘메디케어출금신탁’ 등 상품을 두고 있다. 국민은행은 사망보험금을 사전에 정한 방식대로 지급하는 ‘KB보험금청구권신탁’을 지난해 11월 출시했다.

전담 조직도 속속 갖추고 있다. 하나은행은 유언대용신탁 전문가로 구성된 ‘시니어마스터’ 조직을 신설해 관련 업무를 전담하고 있으며, 우리은행은 ‘가족신탁팀’에서 유언대용신탁을 비롯한 각종 신탁 관련 법률 및 세무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시니어 전담 컨설팅센터 ‘KB골든라이프센터’를 운영 중이며, 신한은행은 ‘쏠메이트라운지’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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