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 0원, 서울독립영화제의 미래는?

임지영 기자 2024. 10. 25.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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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도 서울독립영화제 지원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영화인들이 반발하고 있다. ‘창작자의 요람이자 산실’인 영화제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10월2일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왼쪽)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현수막을 들고 입장하고 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제공

1999년 11월, 서울 종로구 허리우드극장에서 제25회 한국독립단편영화제가 열렸다. 총 343편의 영화가 출품됐고 당시 류승완 감독의 단편영화 〈현대인〉이 ‘새로운 도전’ 최우수작품상과 관객상을 수상했다. 수상작 13편에 상금 총 4000만원과 부상이 수여됐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지난 7월 공개한 ‘영화진흥위원회 50년사’에 따르면 당시 ‘한국독립단편영화제는 독립영화인들과 관객, 그리고 언론으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이후 위원회의 독립영화 지원사업들이 힘을 받기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25년이 지난 올해, 그사이 서울독립영화제(서독제)로 이름을 바꾼 영화제가 50주년을 앞두고 있다. 행사를 두어 달 앞두고 2025년 서독제 지원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축제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예산 삭감의 근거가 되는 문건은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5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사업설명자료(Ⅱ-1)’다. 영화발전기금 항목 중 ‘독립영화제 개최 지원’ 분야를 보면 ‘(‘24) 296→(’25요구) 0’이라 쓰여 있다. 올해 2억9600만원이던 서독제 예산이 내년에 0원이 된다는 의미다.

한국독립영화협회(한독협)와 서독제 집행위원회를 비롯한 영화인들은 성명서를 내고 ‘서울독립영화제의 예산 증발은 독립영화에 대한 명백한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들은 ‘서울독립영화제 예산의 삭감은 팔길이 원칙(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에 입각한 거버넌스에 대한 노골적인 부정이자, 민간기구인 영진위 자율성에 대한 현격한 위협의 증거’라고 주장하며 예산 복원과 정상 개최를 요구하고 있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에서 〈시사IN〉의 연락을 받은 백재호 한독협 이사장의 심경도 복잡했다. 그는 “50년의 역사가 있고 독립영화의 심장이라는 상징적 위상이 있는데 이렇게 영화제 예산을 전액 삭감한다는 사실에 영화인들이 충격을 받은 것 같다”라며 영화제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의 말대로 서독제는 한 해 동안의 한국독립영화를 결산하는 국내 유일의 독립영화 경쟁 영화제로, 1975년 한국청소년영화제의 전통을 계승한다. 몇 차례 이름이 바뀌었고 2001년부터는 한독협과 영진위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있다. 영화인들은 이 영화제가 봉준호·나홍진·연상호·이병헌·변영주·한준희·엄태화·유재선·구교환 등의 감독과 배우를 배출한 ‘창작자의 요람이자 산실’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서울독립영화제 포스터.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영화제 공동주최의 한 축인 한독협은 영진위와 사전에 어떠한 협의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백 이사장은 “7월부터 관련 공문을 보냈지만 확정된 바가 없어 할 말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사실 순서가 잘못됐다. 삭감을 하더라도 영진위가 우리와 공동주최를 하지 않겠다는 논의를 먼저 한 다음 하는 게 맞지 않나”라고 말했다. 독립영화계는 영진위가 민간 자율기구로 거듭나며 민관 거버넌스를 구체화한 최초의 사례가 서독제라고 강조한다. 1999년 5월 영화진흥법 개정으로 영진위가 출범(전신은 영화진흥공사)된 이후 독립·예술영화 유통·상영을 지원하기 위해 가장 먼저 진행한 사업이 독립영화제 개최였다.

문체부로부터 영화에 관한 지원 역할을 위임받아 설립된 영진위는 1998년 국제 영화제 지원을 시작으로 2016년부터는 국내 영화제 지원 사업도 하고 있다. ‘국내외 영화제 육성’ 항목 아래 ‘국내 및 국제 영화제 지원’과 ‘독립영화제 개최 지원’이 묶여 있다. 서독제는 여타 다른 영화제와 별도로 지원을 받아온 셈이다. ‘독립영화제 개최 지원’ 예산은 2023년 3억7000만원에서 2024년 2억9600만원으로 이미 20% 삭감된 상태다. 지난해 서독제뿐만 아니라 영화제 지원 예산이 대폭 줄었다. 2023년 영화제에 56억원을 지원했던 정부가 2024년에는 28억원을 지원하기로 한 사실이 알려져 관계자들의 반발이 일었다.

지난 9월 국회에서 열린 ‘지속 가능한 영화 생태계를 위한 영화제 정책 토론회’는 영화제 예산과 관련된 정부의 기조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날 영화제 예산 삭감에 대한 영화인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 문체부 관계자는 영화제의 ‘재정자립도’를 언급했다. 재정자립도가 미달하는 영화제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게 맞는지 문제의식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당시를 회상하던 백 이사장은 당황했다고 말했다. “영화제는 수익사업이 아니다. 영화를 발굴하고 문화 다변화를 꾀하기 위한 행사다. 재정자립도를 높이려면 상업적 행사를 하거나 기업 후원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면) 영화제의 자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영화제의 근본적 기능을 상실하는 것이다. 영화제의 성격 자체를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내년도 영화제 지원 예산 자체는 늘어날 전망이다. 2024년 28억원이던 예산이 33억원으로 5억원 늘었다. 여전히 2023년 56억원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문체부에 따르면 전체 영화 지원 예산은 올해보다 92억원 늘어난 829억원을 편성했다.

블랙리스트 때도 살아 있던 예산인데

영화인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영화계 블랙리스트’를 아프게 기억하고 있다. 수많은 창작자와 영화단체가 지원에서 배제되는 가운데 영진위와 민간이 협력해 구축한 독립영화 전용관, 미디어센터 등도 공모 형태로 전환되었다. 감사원의 감사를 받은 서독제에 대한 지원도 2010년부터 2년 동안 일시 중단됐다. 한독협 단독 주최로 축소 운영되었다. 당시에는 예산이 있지만 지원을 못 받은 경우이고 이번에는 예산의 근거 자체가 사라졌다는 주장이다. 한 독립영화계 관계자는 “가장 위기였던 블랙리스트 때도 살아 있었던 예산이다. 예산은 한번 사라지고 나면 복원하기가 정말 어렵다. 영진위 출범 이후 만들어진 민관의 협치 모델이 붕괴됐고 유일하게 남은 게 서독제다. 이 사업에 대한 지원마저 논의 없이 사라진다면 민간 자율기구라는 정체성을 지닌 영진위가 고유의 방향성을 저버렸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산업 위기 극복 영화인 토론회'에 모인 영화인들이 서울독립영화제 예산 삭감 반대 현수막을 들고 서 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제공

영화제에는 창작자와 관객만 있지 않다. 산업 관계자와 평론가도 모인다. 2006년 서독제에 합류해 사무국장과 부집행위원장을 거쳐 집행위원장에 이른 김동현 서독제 집행위원장은 영화제가 가진 ‘마법 같은 힘’에 대해 설명했다. “영화계 인사들이 모여 일정 기간 집중적으로 협의하며 관계를 설정하는 자리다.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 사업을 설계하는 발판이 된다. 나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함께 문화를 바꿔나갈 수 있을 거라는 용기를 얻게 되기도 한다. 근본적인 방향성이 그렇기 때문에 영화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관객을 만나기 힘든 독립영화 상영의 주요 경로가 되는 자리도 서독제다. 올해 영화제에 출품된 작품 수는 1704편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1975년 출품작 60여 편으로 출발했다. 매년 최대 출품 편수를 경신하는 추세이고 누적 상영작은 2700편에 이른다.

독립영화계는 예산 삭감 철회를 위한 연명을 받고 있다. 국회와 정부 관계자를 설득하고 영화인과 관객들의 관심과 지지를 모을 방법도 모색 중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영진위 관계자는 ‘예산 전액 삭감’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독립예술영화가 미약했을 때 공동주최하는 식으로 지원을 했지만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로 영화제 예산이 많이 줄었다. 서울독립영화제만 따로 지원을 하는 게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어서 (서독제도) 국내외 영화제 공모사업에 지원해 심사를 받아달라고 협의 중인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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