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로 나뉜 삶, 두 개의 정원
세상에는 수많은 설계가 나오지만 그 모두가 건축물이 되지는 못한다. 대지 여건과 건축주의 상황, 건축가의 철학 등 다양한 요소가 담긴 설계 중 놓치기 아쉬운 사례를 만나 본다.

두 개의 레벨이 만든 두 개의 정원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높은 지형에 자리한 이 주택은 층마다 생활의 온도와 속도가 다르게 설계되어 있다. 1층은 개인의 취미 생활이 중심이 되는 ‘집중의 레벨’, 2층은 가족과 지인이 모여 머무는 ‘공유의 레벨’, 3층은 부부의 내실이 위치한 ‘휴식의 레벨’로 구성된다. 외부 공간 또한 이 생활의 구조를 따라 하나의 정원을 크게 펼치기보다 두 개의 레벨로 나누어 서로 다른 경험을 갖도록 계획했다.
나만의 풍경을 위한 조건 설계
입구에서 측면이 보이고 실내에서 정면이 읽히는 1층 이끼정원은 이 집에서 가장 사적인 장면을 담당한다. 이곳의 핵심은 ‘식재 리스트’가 아니라 그늘과 습도의 구조다. 키가 크고 지하고가 높은 메타세쿼이아를 중심 수목으로 두어 수관이 만드는 그늘의 밀도를 확보했고, 그 아래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누릴 수 있도록 시선의 높이와 체류 감도를 조정했다. 큰 나무가 공간을 압도하지 않도록 하부 공간의 여백을 남기고, 그 여백이 오히려 안정감을 주도록 ‘그늘의 방’ 같은 분위기를 의도했다.
실내에서 창 밖을 바라볼 때, 정원의 지면은 단순한 바닥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으로 읽혀야 한다. 따라서 화단을 설치한 뒤 이끼 마운딩으로 지면의 높낮이를 미세하게 조절해 ‘깊이’를 만들었다. 키 큰 나무의 목대와 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은 시간대에 따라 표정이 바뀌고, 이는 같은 공간을 매일 다르게 경험하게 한다.




경사지가 주는 테라스 감각과 마당의 개방감
계단을 올라 현관을 지나 실내로 들어서면 거실 밖으로 마당이 펼쳐진다. 경사진 성토 지반은 계획을 어렵게 만들지만, 반대로 잘 다루면 마당을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 이 마당은 테라스처럼 아기자기한 친밀감을 갖추면서도 마당 특유의 개방감을 유지하는 균형을 목표로 했다. 즉, ‘작은 테라스의 매력’과 ‘마당의 시원함’을 동시에 잡는 방식이다.
정원을 바라볼 때 왼편에는 인접 건물이 가까이 붙어 있어 시선 정리가 필요했다. 이 방향에는 상록 침엽수를 일렬로 배치해 사계절 내내 안정적인 배경을 만들고자 했다. 단순 차폐가 아니라, 거실에서 정원을 볼 때 프레임처럼 작동하게끔 높이감과 밀도를 조정해 마당의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했다.
정면에는 코르텐강 철제 화단으로 내추럴한 식재 구역을 설정했다. 오른편은 다이닝과 가장 가까운 조경 영역으로, 생활 장면과 직접 맞닿는 자리다. 이곳에는 모과나무를 포인트로 두어 공간의 온도를 올렸다. 모과는 꽃–열매–수형의 변화가 뚜렷해 계절감이 명확하고, 열매의 향이 공간의 기억을 만들어준다. 무엇보다 기품 있는 수형이 과하지 않게 존재감을 만들어, 간단한 티테이블을 놓았을 때도 자연스럽게 ‘머무는 자리’가 완성된다.
잔디는 ‘면적’보다 ‘사용 방식’이 더 중요하다
마당 전체는 잔디를 베이스로 계획했다. 다만 넓은 잔디 면적이 주는 관리 부담을 고려해, 잔디를 단순히 줄이는 대신 잔디가 소비되는 방식을 바꿨다. 두 개의 다른 디딤석 동선이 만나는 구조를 만들어, 규칙적인 흐름과 불규칙한 배열이 교차하도록 계획한 것이다. 이로 인해 마당은 하나의 평면이 아니라, 걷고 멈추고 방향을 바꾸는 리듬이 생긴다.
가까이에서 읽히는 레이어링, 사계절의 디테일
3층 테라스는 식재 레이어링의 섬세함에 집중했다. 테라스는 멀리서 바라보는 정원과 달리, 가장 가까이에서 잎의 질감과 색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따라서 이 레이아웃의 설계는 면적의 크기보다 높이 단계(하층–중층–상층), 질감 대비(부드러움–거침), 계절 포인트의 순서가 중요하다. 개방감을 유지하면서도 프라이빗한 느낌을 확보하기 위해 화단 폭을 넉넉하게 계획하고, ‘ㄱ’자와 ‘ㄷ’자의 중간 정도로 공간을 감싸는 레이아웃을 적용해 안정감을 극대화했다.
정원은 낮과 밤이 다른 표정을 가진다
이 집의 정원은 낮의 시원함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해가 기울면 이끼 정원은 공기의 밀도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철제 화단은 재료의 질감으로 경계를 정리하며, 상록수의 배경 레이어는 공간의 깊이를 만든다. 정원은 결국 식재만으로 완성되지 않고, 동선·경계·시선·습도·관리라는 조건이 서로 맞물릴 때 장면이 된다. 두 개의 레벨로 나뉜 정원이 각기 다른 리듬을 갖되, 하나의 집으로 읽히도록 조율한 이번 기획은 생활의 속도와 감각을 외부 공간에 정밀하게 옮겨, 그 자체가 풍경으로 자리 잡게 한 정원이다.



GARDEN PLAN
대지위치 : 경상북도 칠곡군
대지면적 : 572.09㎡(173.05평)
조경면적 : 234.44㎡(70.91평)
바닥재 : 마사자갈, 잔디, 석재 타일, 디딤석
담장재 : 철제 난간
화단 : 코르텐강
식재 : 메타세콰이아, 세열단풍, 모과나무, 미산딸, 낙산홍, 스카이로켓, 즈이나, 셀릭스 등
조경 설계 : PLANDERS 플랜더스

글_ 조경가 이정규, 한유리 : PLANDERS 플랜더스

구성_ 신기영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26년 1월호 / Vol. 323 www.uuj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