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년 만에 대만에 추월당한 한국의 성장 둔화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2025년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에서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순위는 세계 37위로 떨어졌다. 지난해 34위였던 한국은 1년 만에 세 계단 하락했고, 반대로 대만은 38위에서 35위로 올라 22년 만에 한국을 역전했다. IMF는 한국의 올해 1인당 GDP를 3만5962달러로 예측했다. 이는 작년 3만6239달러보다 0.8% 하락한 수치다. 반면 대만은 반도체 및 AI 산업 호황으로 3만7827달러를 기록하며, 전체 197개 국가 중 상승폭 11.1%로 세계 상위권 성장률을 보였다. IMF는 한국이 2028년에 4만달러를 돌파하겠지만, 순위는 계속 하락해 2029년에는 41위까지 미끄러질 것으로 전망했다.

대만은 치고 나가고, 한국은 제자리—격차 벌리는 첨단 산업
이번 역전의 이면에는 기술 산업 구조의 차이가 있다. 대만의 성장 엔진은 ‘TSMC 효과’로 불리는 첨단 반도체 강세다. 인공지능(AI) 칩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대만의 2025년 수출은 전년 대비 18% 이상 급등했고, 제조업 총생산은 아시아 2위까지 치솟았다. TSMC는 세계 점유율 56%를 유지하며 엔비디아·애플 등의 AI 칩 위탁생산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메모리 중심의 산업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채 시스템반도체, AI칩, 바이오프로나틱스 시장에서 후발주자로 머물러 있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AI용 HBM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으나, 산업 전반의 성장세를 이끌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환율과 소비 위축, 수치에 드러난 ‘내수 침체’
IMF는 한국의 실질 GDP 성장이 2024년 1.4%, 2025년 1.6%로 전망했으며, 이는 OECD 평균인 2.3%에 미치지 못한다. 원화 약세와 고금리 환경으로 기업과 가계의 투자 여력이 줄고, 소비 둔화가 내수 회복을 발목 잡았다. 수출 지표는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개선됐지만, 견인력의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것이 IMF의 분석이다. 원화 가치 하락으로 달러 환산 1인당 GDP가 낮아진 점도 순위 하락의 주요 요인이다. 한국 경제는 2022년부터 이어진 ‘고물가·고금리·저성장 3중고’ 국면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30년간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의 성장 모델이 이제 한계에 이르며, 소득과 구매력의 차이가 세계 순위에서도 가시화된 셈이다.

낮은 투자 효율과 생산성 정체
IMF는 과거 한국 성장의 원천이었던 제조업 기반이 생산성 정체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노동 강도 대비 산업 효율은 OECD 35개 국 가운데 27위로 낮은 편이다. R&D 투자 비율은 여전히 OECD 1위지만, 정작 산업화 성과로 이어지는 수익률은 하락세다. 청년 실업률(8.7%)과 고령 인구 증가 속도(세계 3위) 역시 내수 침체를 심화시키고 있다. IMF 경제학자 라도 미로프는 보고서에서 “한국은 선진국형 사회구조로 이행하며 ‘투자 대비 효율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성장률 2% 시대를 지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저성장 구조가 고착화되면 1인당 GDP 격차는 대만뿐 아니라 싱가포르, 홍콩 등 주변 도시국가에까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대만은 AI 주도, 한국은 규제가 발목”
전문가들은 한국과 대만의 산업 전략, 정치 환경 차이를 이번 결과의 원인으로 꼽는다. 대만은 정부가 AI반도체, 차세대 차량용 칩, 첨단 제조 인력 양성에 ‘전폭적 자유’를 부여한 데 반해, 한국은 반도체 클러스터 개발조차 환경·입지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또한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도 대만은 엔비디아, 퀄컴, ARM 등 글로벌 기업과 직접 협력 모델을 구축한 반면, 한국은 대기업 중심의 공급망에 여전히 의존한다. 하나금융연구소는 “대만은 기술혁신에 따른 부가가치 창출형 성장, 한국은 비효율적 분업 중심 성장 패턴”이라며 구조적 개선이 뒤따르지 않으면 격차는 최소 10년 이상 벌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앞으로 5년, ‘수치’보다 중요한 체질 변화
IMF는 한국이 2028년 4만 802달러, 2030년에는 4만 4262달러로 1인당 GDP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 전망했다. 그러나 순위는 세계 41위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대만은 같은 해 5만 252달러로 한국을 10,000달러 가까이 앞설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단순히 ‘대만이 치고 올라왔다’보다 ‘한국의 성장 엔진이 식었다’는 시그널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환율이나 단기 소비로 순위를 회복할 수는 없으며, AI·디지털 인프라 개혁과 노동시장 유연화 없이는 2030년대 한국의 경제 위상이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한국 1인당 GDP 37위’ — 이 숫자는 위기라기보다 현실이다. 한때 ‘한강의 기적’을 만든 나라가, 이제는 질적 성장을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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