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살아 숨 쉬는 배우, 강말금 [인터뷰]

김연주 2025. 12. 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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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당도'로 스크린 복귀
극중 '선영' 연기, 봉태규와 남매 호흡
오는 10일 개봉
배우 강말금이 영화 '고당도'로 관객과 만난다. 에이스팩토리. (주)트리플픽쳐스 제공

배우 자신과 작품 캐릭터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지는 연기다. 어떤 배역이든 그 역할로 흡수해버리는 연기다. 강말금의 이야기다.

강말금이 영화 '고당도'를 통해 스크린에 복귀한다. '고당도'는 아버지 부의금으로 조카의 의대 등록금을 마련하려는 가족의 가짜 장례 비즈니스를 그린 고진감래 가족 희비극이다. 그 누구도 선택할 수 없는 관계, 핏줄로 엮인 가족에 대한 탐구가 서스펜스와 블랙코미디로 어우러진다. 권용재 감독의 연출작으로 2019년 단편영화 '조의'를 장편화한 작품이다. 강말금은 '조의'에 이어 '고당도'에도 함께하게 됐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더 큰 부피를 가진 작품이 돼서 저한테 왔어요. 이전에 작업했던 감독님이 저를 다시 찾아줬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기뻤어요. 타이밍도 좋았어요. 독립영화는 촬영 회차가 짧아서 다른 작품과 병행하면 몰입하기가 어려운데, 마침 스케줄이 잘 맞아서 참여할 수 있었어요. 여러모로 운명적인 작품이에요."

강말금은 극 중 수년째 의식 없는 아버지를 간병해 온 간호사이자 임종이 임박한 아버지의 가짜 장례식을 주도하는 집안의 장녀 선영 역을 맡았다. 선영은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하며 남동생 일회와 그의 아내 효연에게 가짜 장례식을 제안한다. 의대에 합격한 조카 동호를 위한 선택이었다. 인간적으로 넘어선 안 되는 선을, 인간적인 이유로 넘게 되는 인물이다. 강말금은 다소 파격적인 소재의 작품에 설득력을 더하는 역할을 맡았다. 단순히 선영을 연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과 관객 사이에서 화자로서 기능한다.

"선영은 동호와 자신이 닮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선영 또한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했을 테고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의대에 진학하지 못했을 거라고 이해했어요. 그렇기에 동호가 의대에 가는 건 자신에게도 중요하죠. 무엇보다 다음 세대인 동호가 우리처럼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컸을 거예요."

'고당도'의 연출을 맡은 권용재 감독은 이번 작품으로 첫 장편 데뷔에 나선다. '굿바이! 굿마미'(2019), '조의'(2021), '개꿀'(2021) 등으로 국내외 다수 영화제에 초청되며 주목받았다. 권 감독은 촬영에 앞서 강말금에게 선영 캐릭터의 전사를 소설로 만들어 전달했다. 러닝타임에 담기지 않는 시간에서 선영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마음을 가진 인물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리딩에 앞서 감독님과 만나 하루 종일 작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30대 초반의 젊은 감독이 인간군상을 이렇게 재미있게 그릴 수 있나 감탄했어요. 캐릭터에 대한 생각도 뚜렷했어요. 현장에서 감독님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던 계기였죠. 제가 어떤 연기를 보여줘도 감독님이 생각하는 선영의 길로 저를 이끌어주실 거라 신뢰했어요."

강말금과 봉태규는 이번 작품을 통해 두 번째 호흡을 맞춘다. 앞서 두 사람은 2022년 단편영화 '몬티 쥬베이의 삶과 죽음'에서 인연을 맺은 바 있다. '고당도'에서 재회한 강말금과 봉태규는 서로 미움이 있지만 떼어놓을 수 없는 남매를 그린다. 두 사람의 미묘한 갈등과 복잡한 관계성은 러닝타임 88분에 녹아있다.

"오랜 시간 관객으로서 봉태규 배우를 만났어요. '가족의 탄생' '바람난 가족' 등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중심에 있었던 배우라 동료라기보다 어려움이 컸던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태규가 먼저 틀을 깨고 다가왔어요. 곁에서 지켜본 태규는 작품 속 일회와 비슷한 부분이 많았어요. 저와 태규가 닮았다고 하시는데 지금 그보다 좋은 칭찬은 없는 것 같아요."

영화 '고당도'는 오는 10일 개봉 예정이다. (주)트리플픽쳐스 제공

"누군가의 꿈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다"

강말금은 연극 '꼬메디아'(2007)로 데뷔해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로 첫 장편 주연을 맡았다. 이후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2021), JTBC 드라마 '신성한, 이혼'(2023), '나쁜 엄마'(2023) 등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이며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특히 올해 큰 반응을 얻었던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2025)와 영화 '로비'(2025)에서 여인숙 주인 금자와 부패 관료 조 장관 역으로 선과 악을 넘나드는 연기를 보여 이목을 끌었다. 어떤 색채의 캐릭터든, 어떤 비중이든 몰입도 높은 연기로 작품을 채운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대본을 읽고 이렇게 좋은 작품이 나에게 왔다니 믿을 수 없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새로운 작품들을 만나며 지금까지 걸어왔어요."

강말금이 '로비'를 만나게 된 배경에는 영화 같은 스토리가 있다. 2021년 청룡영화상에서 수상한 강말금이 무대에서 말한 수상 소감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누군가의 꿈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고, 하정우는 조 장관 캐스팅 때 그 소감을 떠올려 출연이 성사됐다.

"감독님이 말씀하시길 제 수상 소감이 우아했대요.(웃음) 그 우아함을 살려 조 장관을 연기해달라고 하셨죠. 하정우 감독은 사랑과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에요.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셔서 제가 마이너스가 됐던 적이 없어요. 앞으로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까 고민하던 시기에 감독님을 만났는데, 감독님을 통해 작품과 연기를 대하는 마음을 배웠어요. 그때 주셨던 사랑과 에너지를 지금도 생각해요. 나아가야 할 길에 힌트를 주신 분이에요."

배우 강말금은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통해 첫 장편 영화에 데뷔했다. 해당 작품으로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찬란 제공

첫 장편작으로 영화상 싹쓸이, 강말금의 존재감

강말금은 대학 졸업 후 6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30살이 되던 해 연기자로 전향했다. 대학 시절 극회 활동을 하며 배우의 꿈을 갖고 있었고 오랜 갈망 끝에 연기를 다시 시작했다. 안정적인 길을 벗어나 다른 길을 걷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결정이다. 연극무대를 통해 연기를 시작한 그는 대사가 없는 배역부터 시작해 정식 데뷔했고 10년을 버텼다.

"연기 시작이요? 일을 저지른 거죠.(웃음) 안정적인 수입을 뒤로하고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는 게 막막했어요.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에요. 연기를 시작하면 끝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시작이었죠. 부산 사투리를 쓰고 있어서 연기하는 데도 쉽지 않았던 게 사실이에요."

10년이 흘러 만난 영화가 '찬실이는 복도 많지'다. 강말금의 약점으로 여겨졌던 부산 사투리는 극 중 찬실이의 매력을 배가시켰다. 그는 '찬실이는 복도 많지'로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부일영화상 등 각종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쓸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사실 마음으로는 늘 주인공이고 싶었어요. 그렇게 여러 무대를 거쳐 찬실이를 만났어요. 일단 글이 너무 좋았어요. 찬실이가 처한 상황과 제 인생이 닮은 부분도 많아서 공감됐어요. 그런 작품을 만나게 돼 얼떨떨했지만, 큰 책임감도 느꼈어요."

데뷔 18년 차. 포기하지 않고 버틴 강말금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강말금이 아니면 안 되는 연기, 강말금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연기. 대체불가한 배우로 자리 잡고 있다.

"믿고 보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하루하루 열심히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장에서 맡은 바를 잘 해내는 것만이 방법 같아요. 매너리즘은 체력에서 오는 거 같아서 요즘은 체력관리를 열심히 해요. 이렇게 지내다 보면 제가 원하는 제가 돼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당도'는 오는 12월 10일 개봉 예정이다.

김연주 기자 yeonju.kim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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