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의 외국인 좌완 왕옌청이 5월 22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커리어 첫 7이닝 완투를 완성하며 팀의 3연패 탈출을 이끌었다. 시즌 5승째를 추가한 그는 KBO 다승 공동 선두에 이름을 올렸지만, 경기 후 인터뷰에서 승리 투수답지 않은 복잡한 표정을 내비쳤다. 호투 위에 아쉬움이 공존하는, 왕옌청식 완벽주의의 민낯이 드러난 밤이었다.

한화 이글스의 2026시즌은 선발 로테이션 붕괴라는 그림자 속에서 출발했다. 주전급 선발 자원들이 부상과 부진으로 이탈하면서 팀 마운드는 사실상 위기 관리 모드에 돌입했다. 그 공백을 가장 효과적으로 메운 인물이 바로 왕옌청이다. 계약금은 단 10만 달러, 원화로 환산하면 약 1억 5000만 원 수준이다. KBO 외국인 선수 시장에서 이 금액은 사실상 최저가에 가깝다. 아시아쿼터 제도를 통해 영입된 투수 대부분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낸다는 것이 리그 전반의 공통된 인식이었고, 왕옌청 역시 시즌 초반에는 그 편견 안에서 평가받았다.
그러나 숫자는 달랐다. 왕옌청은 꾸준히 등판하며 이닝을 소화했고, 특히 6이닝 이상을 버티는 경기가 늘어나면서 팀 내 신뢰를 쌓아갔다. 그럼에도 하나의 벽이 있었다. 7회, 바로 그 이닝이었다. 올 시즌 왕옌청은 매번 7이닝 진입을 앞두고 교체되거나 무너지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체력 문제인지, 집중력의 분산인지, 아니면 팀의 투구수 관리 방침 때문인지—그 이유는 다양하게 해석됐지만, 어쨌든 7이닝은 왕옌청에게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숙제였다. 이날 경기는 그 숙제를 처음으로 완성한 날이기도 하다.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 2026 신한 SOL KBO리그 정규시즌. 왕옌청은 선발로 마운드에 올라 7이닝 5피안타 1볼넷 6탈삼진 2실점이라는 줄을 완성했다. 최고 구속 149km/h, 총 87개의 투구수. 수치만 보면 모범적인 퀄리티 스타트를 한참 뛰어넘는 성적이다.
1회부터 6회까지 왕옌청은 사실상 두산 타선을 무력화했다. 5회까지 소화한 투구수가 단 52개였다는 점이 이날 경기력의 밀도를 가장 잘 보여준다. 직구와 투심을 기본 축으로 삼고, 슬라이더와 포크볼, 커브를 상황에 따라 섞으며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았다. 특히 5회 강승호를 상대로 125km/h 스위퍼로 낫아웃 삼진을 잡아내고, 이어 김기연을 148km/h 직구로 헛스윙 처리하는 장면은 단순한 구위가 아닌 배합의 힘을 보여줬다.

7회는 달랐다. 박지훈-손아섭 연속 안타, 카메론 볼넷으로 순식간에 무사 만루 위기가 찾아왔다. 양의지에게 중전 적시타를 허용하며 2실점, 한화의 리드는 3-0에서 3-2로 줄었다. 한 점 차, 무사 1·2루.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왕옌청은 강승호의 땅볼로 주자를 지우고, 마지막 김기연을 병살로 처리하며 이닝을 닫았다. 데뷔 후 처음으로 7회 아웃카운트 세 개를 모두 직접 잡아낸 순간이었다.
팀은 최종 5-3으로 승리했다. 7회 이후 한화 타선이 노시환의 적시타와 상대 실책을 엮어 2점을 추가하며 쐐기를 박았고, 불펜이 뒤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한화는 21승 24패로 7위를 유지했지만, 공동 5위인 SSG·두산과의 격차가 단 1게임에 불과하다. 3연패 탈출과 동시에 순위 경쟁의 불씨도 살렸다.

왕옌청의 이날 경기 후 인터뷰는 흔한 '승리 소감'과 거리가 멀었다. "복잡한 심정"이라는 첫 마디, 그리고 감독에게 이닝을 더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망설이다가 타이밍을 놓쳤다는 고백. 보통 선수라면 이 정도 성적에 만족하고 웃으며 인터뷰실을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왕옌청은 달랐다. 류현진 선배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고, 다음 기회에는 반드시 말을 하겠다고 결심했다는 후기까지 덧붙였다. 이 장면은 단순한 욕심을 넘어 선발 투수로서의 책임감과 자기 관리 의식이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드러낸다. 이닝을 더 먹겠다는 것은 단순히 기록을 챙기려는 욕망이 아니라, 팀의 불펜 소모를 줄이고 선발로서 더 깊은 역할을 하겠다는 직업적 자존심의 표현이다.

7회 흔들림에 대한 자평도 인상적이다. 그는 영상을 돌려보고 포수 허인서와 함께 원인을 정리하겠다고 했다. 이 발언에는 피드백을 즉각 수용하고, 팀 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개선하겠다는 프로세스가 담겨 있다. 구속이 평소보다 낮게 나온 부분도 스스로 짚었다. 149km/h가 최고라면 낮은 수치는 아니지만, 왕옌청 기준에선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지금 이 시점 한화 팬덤이 왕옌청에게 열광하는 핵심 이유이기도 하다. 팬들은 단순히 성적이 좋은 선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이기고도 만족하지 않고, 조금 더 잘하려는 선수의 자세에서 신뢰를 쌓는다. 한화는 지난 몇 년간 에이스 없는 마운드로 긴 시간을 보냈다. 왕옌청이 보여주는 경기력과 태도는 단기 성과를 넘어 팬들에게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하고 있다. 10만 달러짜리 계약이 이제는 KBO 역대 최고의 가성비 영입 사례로 회자될 만하다. 다승 공동 1위, 평균자책점 3위(2.72). 숫자는 이미 말을 다 했다.
왕옌청은 오늘 처음으로 7이닝을 완성했다. 하지만 경기 후 그의 눈빛은 이미 8이닝을 향해 있었다. 만족을 모르는 투수, 팀이 가장 필요로 하는 그 존재가 지금 한화 마운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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