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의 전당은 모든 야구 관계자들이 꿈꾸는 종착역이다. 현역 시절 공로를 인정 받고 오르는 가장 영예로운 자리다. 전미야구기자협회(BBWAA) 투표로 이뤄지며, 득표율 75% 이상 나와야 들어간다. 올해는 394명 중 296명의 선택을 받아야 했다.
명예의 전당이 탄생한 건 1936년이다. 타이 콥과 베이브 루스, 호너스 와그너, 크리스티 매튜슨, 월터 존슨이 첫 영광을 안았다. 당시에는 모든 선수들이 후보였기 때문에 경쟁률이 더 치열했다. 사이영상의 장본인, 사이 영도 이듬해 들어갔을 정도였다. 이후 몇 차례 변화를 거치면서 체계가 잡혔다.

명예의 전당은 매년 관전 포인트가 있다. 올해는 후보 자격을 갖춘 스즈키 이치로의 만장일치 여부가 큰 관심사였다. '통산 251승' 투수 CC 사바시아의 득표율, 한 시대를 풍미한 마무리 투수 빌리 와그너의 마지막 도전도 눈길을 끌었다.
만장일치
명예의 전당에서 만장일치는 항상 논란거리였다. 반대론자는 세상에 완벽한 선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야구의 위상을 높인 베이브 루스도 만장일치를 받지 못했는데(득표율 95.1%) 어떻게 만장일치 선수가 나올 수 있는지를 주장했다. 이 논리에 갇혀 윌리 메이스와 행크 애런, 놀란 라이언, 랜디 존슨 등이 모두 만장일치에 실패했다.
이러한 눈높이는 오랜 시간 지속됐다. 명예의 전당에 적합한 선수라고 해도 만장일치는 허락되지 않았다. 2016년 켄 그리피 주니어가 3명의 외면으로 득표율 99.3%를 기록하자, 앞으로도 만장일치 선수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2019년에 성역이 무너졌다. 마리아노 리베라가 모든 투표인단의 선택을 받음으로써 사상 첫 만장일치 득표자로 거듭났다. 역대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서 손색이 없는 성적, 불펜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리베라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더 체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불러오는 반발심이 강해지면서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토록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던 문이 마침내 열렸다. 이후 명예의 전당 기준이 완화됐다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이치로의 만장일치 가능성도 제기됐다.
2025 명예의 전당 득표율
99.7% - 스즈키 이치로
86.8% - CC 사바시아
82.5% - 빌리 와그너
70.3% - 카를로스 벨트란
66.2% - 앤드루 존스
39.8% - 체이스 어틀리
이치로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건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2001년 27세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진출, 데뷔 시즌에 신인왕과 MVP, 타격왕, 도루왕을 모두 차지하는 충격을 안겨줬다.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는 스테로이드가 만연하면서 홈런이 득세였다. 그런데 이치로는 정확성을 앞세운 자신만의 야구로 리그를 평정했다. 뒤늦은 나이에 넘어왔지만, 45세까지 19시즌을 뛰면서 통산 3,089안타를 때려냈다. 켄 그리피 주니어는 "메이저리그 안타왕은 피트 로즈지만, 세계적인 안타왕은 이치로"라고 극찬했다.
최다 200안타 시즌
10 - 스즈키 이치로 & 피트 로즈
9 - 타이 콥
8 - 윌리 켈러 & 폴 워너 & 루 게릭 & 데릭 지터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그러나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만장일치를 받지 못했다. 단 한 명이 이치로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전보다 눈높이가 낮아졌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벽'은 여전히 남아있다. 한편, 자신이 이치로를 뽑지 않았다고 밝힌 마크 구든(Mark Gooden)은 기자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인물로 알려져 진위가 엇갈리고 있다.
희비
올해 처음 후보로 나온 선수는 14명이었다. 이 가운데 이치로와 더불어 첫 해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가 사바시아다. 클리블랜드와 밀워키, 양키스에서 활약한 사바시아는 2007년 사이영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통산 성적도 명예의 전당 자격 요건을 충족했다.
첫 해 입성한 좌완 선발
1972 - 샌디 코팩스
1994 - 스티브 칼튼
2014 - 톰 글래빈
2015 - 랜디 존슨
2025 - CC 사바시아

과거 명예의 전당 투수의 기준은 '300승'이었다. 300승이 명예의 전당 보증수표였다. 하지만 다승의 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300승이 갖는 의미도 약해졌다. 또한 선발 투수의 역할이 달라지면서 향후 300승에 도전하는 투수도 보기 힘들다. 현역 최다승 저스틴 벌랜더도 장담할 수 없다(벌랜더 262승, 맥스 슈어저 216승).
30년 넘게 메이저리그를 취재하고 있는 <디애슬레틱> 제이슨 스탁은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사바시아의 첫 해 입성을 확신하지 못했다"고 밝혔다(I had zero confidence that CC Sabathia was about to become a first-ballot Hall of Famer). 그만큼 명예의 전당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사바시아의 첫 해 입성은 달라진 기준이 반영된 결과다.
그렇다고 명예의 전당 기준에서 다승이 완전히 배제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역시 첫 번째 도전에 나선 펠릭스 에르난데스는 득표율 20.6%에 그쳤다.
에르난데스는 2010년 사이영상 수상자로 전성기 시절은 리그 에이스였다. 하지만 30대가 되면서 빠르게 추락했다. 30대 이후 85경기(84선발) 평균자책점은 4.89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에르난데스는 사바시아가 넘은 250승과 3000탈삼진을 달성하지 못했다(169승, 2524탈삼진). 명예의 전당 투표는 도전 횟수가 거듭될수록 관대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에르난데스의 득표율도 어떻게 변할지 주목된다.
빌리 와그너는 마지막 10번째 도전 끝에 관문을 뚫었다. 세이브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1969년 이후 최다 세이브 8위 해당하는 422세이브를 기록했다. 853경기 동안 903이닝을 던지면서 통산 피안타율은 .184밖에 되지 않는다. 대단히 위력적인 마무리였다.
통산 최저 피안타율 (900이닝)
.184 - 빌리 와그너
.200 - 놀란 라이언
.202 - 샌디 코팩스
.203 - 조 네이선
2016년 첫 해 득표율이 10.5%였던 와그너는, 5년차에 접어들면서 득표율이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해 득표율이 73.8%로, 올해 입성이 유력한 후보였다. 그러나 마지막 도전에도 불구하고 득표가 크게 늘지 않은 건 특기할 만한 부분이다. 10년차에 입성한 선수들 중 전년 대비 두 번째로 적었다(41표, 2009년 짐 라이스 20표).
고배
<ESPN>은 이번 명예의 전당 투표의 가장 큰 패배자로 매니 라미레스를 뽑았다. 라미레스는 통산 555홈런, 타율 .312 OPS가 0.996에 달하지만,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되면서 커리어가 무너졌다. 불명예 은퇴를 한 선수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올해도 득표율이 34.3%에 머물러 내년 탈락이 확실시된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마찬가지다. 4년차 득표율이 37.1%로, 전년 대비 상승폭이 크지 않았다(2024년 34.8%). 이대로면 2022년에 낙마한 배리 본즈와 로저 클레멘스의 뒤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 한 시대를 대표한 선수들이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건 메이저리그의 얼룩진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카를로스 벨트란의 득표율은 흥미롭다. 지난해 57.1%에서 올해 70.3%까지 상승했다. 내년에는 75% 통과선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벨트란은 성적만 보면 들어갈 수 있는 선수다. 그러나 휴스턴 시절 사인 훔치기를 주도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사무국 징계를 받진 않았지만, 내정된 메츠 감독까지 사퇴할 정도로 비난 여론이 거셌다. 그 정도로 부정적인 스캔들에 연루됐던 선수가 명예의 전당 입성을 앞두고 있는 건 아이러니하다. 이는 훗날 휴스턴 선수들의 투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치로와 사바시아를 제외하면 첫 도전에서 축배를 든 선수는 없었다. 명예의 전당은 10년 동안 도전할 수 있지만, 득표율이 5% 미만이면 후보에서 제외된다. 이안 킨슬러(2.5%)를 비롯해 러셀 마틴(2.3%) 브라이언 매캔(1.8%) 트로이 툴로위츠키(1%) 등은 내년에 명단에서 볼 수 없다. 참고로 핸리 라미레스와 페르난도 로드니, 벤 조브리스트는 한 표도 받지 못했다.
내년에 처음 후보로 나오는 선수는 18명이다. 여기에 추신수가 콜 해멀스, 라이언 브론, 맷 켐프, 헌터 펜스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린다. 현실적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득표율이 어느 정도 나올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