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발로 한국에 온 선수를 마무리로 돌린 것만으로도 이미 이례적이었다. 그런데 그 마무리에게 3이닝 세이브를 맡겼다. 3일 대구 삼성전, 김경문 감독이 7회부터 쿠싱을 올리는 승부수를 던졌고 결말은 9회 디아즈의 끝내기 역전 3점 홈런이었다. 한화는 6-7로 졌다.
쿠싱이 왜 마무리냐

잭 쿠싱은 원래 선발 투수다. 2019년 오클랜드에 22라운드로 지명된 뒤 마이너리그에서 커리어 대부분을 선발로 소화했고, 지난해 트리플A에서 38경기 중 선발만 6번이었다.

한화도 화이트 부상 대체자로 그를 영입하면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런데 한화 불펜이 시즌 초반부터 무너지면서 KBO 데뷔 자체를 선발로 했음에도 마무리로 보직이 바뀌었다. 한화 불펜 붕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3이닝 세이브, 왜 무리수인가

쿠싱이 7회부터 올라온 이유는 명확하다. 필승조인 박상원, 조동욱, 정우주가 연투로 등판이 어려웠고, 그나마 연투가 걸리지 않은 김종수도 직전 두 경기에서 3실점과 1피홈런으로 페이스가 좋지 않았다. 쓸 수 있는 불펜이 없었다는 뜻이다.

한화 벤치가 선택한 답이 선발 출신 마무리에게 3이닝을 맡기는 것이었는데, 현대 야구에서 마무리 3이닝 세이브는 사실상 1980~90년대 방식이다. 이닝 분업화가 야구 표준이 된 지 오래인데, 정규시즌 1점 차 경기에서 이 카드를 꺼낸 것은 무리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7회 블론, 그래도 버텼는데

쿠싱은 7회 박승규 볼넷, 최형우 동점 적시타로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래도 류지혁과 전병우를 연속 삼진으로 잡으며 역전은 막아냈다.

8회에는 볼넷 하나만 내주고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한화가 8회초 채은성 적시타와 황영묵 밀어내기 볼넷으로 6-4 리드를 잡는 동안 승리투수 자격까지 갖췄다. 여기서 쿠싱을 내리는 게 맞는 판단이었다. 이미 8회까지 39구를 던진 상태였다.
9회가 문제였다

그런데 쿠싱은 9회에도 마운드에 섰다. 선두타자 김지찬, 최형우에게 연속 안타를 맞으며 무사 1·2루가 됐다. 최형우는 이 안타로 KBO 역대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하는 역사적인 장면을 만들었는데, 그 기록의 피해자가 쿠싱이었다.
결정적인 장면은 이어 나왔다. 디아즈 상대로 0볼 2스트라이크까지 몰아붙였는데, 3구째 134km 스위퍼가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로 밀려들어왔다. 디아즈가 놓치지 않고 비거리 106m짜리 역전 끝내기 3점 홈런을 꽂아 넣었다. 7-6, 한화의 패배였다.

쿠싱을 탓할 수 없다. 맡겨진 역할에서 최선을 다했고 두 이닝 반을 버텼다. 탓해야 한다면 선발 출신 마무리에게 3이닝을 맡긴 벤치였다.
한화 불펜 자원이 고갈된 상황이라는 건 이해하지만, 그 고갈의 원인이 김서현 장기 기용과 반복된 불펜 혹사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국 같은 문제가 돌고 돌아 같은 방식으로 터진 것이다. 쿠싱은 4일 휴식 후에도 50구 가까이 던진 탓에 5일 KIA전 등판이 불투명하다. 한화는 또 한 번 불펜 가용 자원이 줄어든 채 다음 시리즈를 맞이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