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빌런? 루키 해설자 오재원에 대한 재평가

“분명한 옵스트럭션. 심판은 놓치면 안됩니다.”

해설자 : 지금은 옵스트럭션이예요. 주자와 1루수가 부딪혔기 때문에 옵스럭션입니다.

캐스터 : 방해가 됐다는 거죠?

해설자 : 예, 방해입니다. 지금은. 옵스트럭션입니다.

2일 LG-KT전(수원) 도중이다. 9-9 동점이던 9회 말 1사 후. 투수(이정용)의 견제구가 뒤로 빠졌다. 이 틈에 1루 주자(송민섭)는 2루로 달리다가 태그 아웃당했다.

그러자 어려운 영어 단어(obstruction)가 등장한다. 한두번이 아니다. 몇 차례나 반복된다. 그것도 약간 흥분한 어조로 계속 강조한다. 출처는 SPOTV 중계석이다. LG 1루수(김민성)의 주루 방해가 분명하다는 견해였다. 해설자 오재원의 단언이다.

사실 어려운 장면이다. 승부에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상황도 민감하다. 방해라는 판정 역시 쉽지 않다. 견제가 빠지며 주자와 수비가 엉킨 과정이었다. 1루수(김민성)가 나뒹굴고, 주자 역시 다리가 걸렸다. 그럼에도 돌발 상황에 대한 즉각적이고 명쾌한 진단이었다.

그라운드는 여전한 혼란 상태다. (아웃이 아니라고) KT 1루코치가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1루심(김병주)은 손을 저었다. 방해가 아니라는 시그널이다. 그러자 이강철 감독도 뛰쳐나왔다. 재심을 위해 심판들이 서로 상의하기 시작했다.

와중에 해설자의 설명은 점점 구체화된다. “지금은 무조건 2루 진루를 허용해야 하는 상황이고, 심판들은 이걸 놓치면 안됩니다. 수비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한 일입니다. 하지만 공을 따라가다가 부딪힌 상황, 무조건 주자에게 우선권이 있습니다.” 적절한 비유까지 제시한다. “2륜차를 4륜차가 보호해야 하듯이 우선권은 주자에게 있습니다.”

결국 해설자의 말대로 된다. 판정이 바뀐다. 심판진은 염경엽 감독에게 사실을 통보한다. 반발이 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장내 마이크를 통해 관중들에게도 해명한다. 1루수의 방해가 인정돼 주자의 안전 진루권을 허용한다는 설명이다.

염갈량의 스퀴즈에 대한 깊이 있는 추론

루키 해설자의 활약은 계속된다. 연장 11회 결승점 상황이다. LG가 1사 3루의 기회를 잡았다. 양쪽 벤치는 깜짝 카드를 뽑아든다. 홈 팀은 고영표를 마운드에 올린다. 그러자 원정 팀도 타자를 바꾼다. 박해민 대신 이천웅이 헬멧을 쓴다.

그리고 초구다. 또다시 중계석의 데시벨이 올라간다. 거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다. “어~.” “번트 댑니다. 번트~.” 짜내기 작전이다. 기습적인 스퀴즈 번트로 3루 주자가 홈을 밟았다. 4시간 반이 넘는 승부를 결정짓는 플레이였다.

이 상황에 대한 오재원 위원의 해설이다. “정확하게 설명을 드리면, (1사 3루에서 외야 플라이를 맞으면 안되니까) 땅볼을 유도하려면 체인지업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체인지업은 번트 대기가 쉬운 공입니다.”

이미 그는 몰입 상태다. 마치 실전을 치르는 당사자 같다. “설마설마 했습니다. 와~. 체인지업을 던질 상황을 생각했는데, 거기에 불현듯 떠오른 게 LG 감독이었거든요. 지금 소름이 돋았어요. 왜냐하면 직구를 던질 때는 3루 주자가 스타트하는 것을 보면서 투수가 (순간적으로) 공을 뺄 수가 있거든요. 하지만 체인지업을 손에 낀 상태에서 뺀다? 이거는 불가능하거든요.”

그의 해설을 정리하면 이런 얘기다. 고영표 기용은 외야 플라이를 주지 않기 위한 교체다. 주무기인 체인지업으로 내야 땅볼을 유도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그 공은 번트 대기가 쉽다. 스퀴즈 작전이 성공하기 적합한 환경이라는 뜻이다.

오 위원의 말은 계속된다. “(경기 시작한 지) 4시간 37분이 됐지만 전체적인 시간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 가운데 4시간 36분에는 어떤 작전을 할 것인가. 그걸 쪼개는 것이 감독의 역할입니다.”

감탄과 경험담은 이어진다. “경기 후 인터뷰를 하게 되면 염경엽 감독에게 ‘체인지업을 생각하고 작전을 낸 것인지’ 꼭 물어보겠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냐 하면 제가 현역 때 정말 많이 당했거든요. 2루 수비를 하면서 상대방의 작전을 막아내는 데 진땀을 많이 빼 본 경험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캐스터와 구분이 어려운 말끔한 ‘딕션’

새로운 시즌이다. 많은 새 얼굴도 등장한다. 선수, 코치, 감독, 치어리더 등등. 미디어 쪽도 마찬가지다. 특히 관심을 많이 받는 직종이 있다. 중계방송 해설자다. 올 시즌에도 뉴 페이스들 여럿이 선보였다. 직전 시즌 감독 출신도 2명이나 데뷔했다.

해설자 오재원. 기발한 발탁이라는 느낌이다. 선수 시절 이력 덕분이다. 워낙 개성이 강하고, 뚜렷한 캐릭터였다. 또 세밀하고, 다채로운 플레이에 능하다. 수읽기도 둘째 가라면 서럽다. MVP급은 아니지만, 센스만큼은 발군이었다.

무엇보다 자기 주장이 뚜렷하다. 그런 장점이 해설에서도 나타난다. 잘못된 플레이나 판정에 대한 코멘트도 꺼리지 않는다. 선수시절의 튀는 언행은 '팀을 위한 것'이라는 명분이었다. 같은 논리다. '시청자의 이해와 공감을 위해' 마이크를 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런 느낌이다.

그렇다고 영 눈치 없는 스타일은 아니다. 적당히 거를 것은 거른다. 게다가 흔히 말하는 딕션도 탁월하다. 캐스터와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여러 커뮤니티에서도 “목소리 좋다” “해설 잘한다”는 반응이 많다.

물론 아직 루키 시즌이다. 넥타이가 서툰 입사 1~2개월차다. 매끄러움, 능수능란함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흥분해서 오디오가 겹치기도 하고, 튀는 표현도 나온다. 톤 조절이 낯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갸웃거림을 모두 이겨내는 장점이 있다. 바로 ‘깊이’다.

그라운드의 플레이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본다. 어떤 의도가 담겼고, 왜 저런 현상이 나타나는 지를 해박하게 설명해낸다. 오랜 시간의 고민과 연구가 아낌없이 드러난다. 지극히 실전적이고, 개연성 높은 설명과 추측들이다. 예컨대 이런 코멘트들이다.

“지금 투수가 2루를 한번 쳐다보고 바로 고개를 돌려서 홈으로 던지거든요. 세번째 계속 그러는데. LG 주루 코치가 모를 리 없습니다. 어쩌면 바로 3루를 노릴 수도 있어요. 조심해야 합니다.”

“경기 시간이 4시간이 넘네요. 포수들이 무척 힘들 겁니다. 그런데 박동원 선수는 그럴수록 집중력이 높아지는 것 같네요. 투수를 리드하는 동작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바뀝니다. 보세요. 미트로 표적을 만들어주는 모습이 크고 확실해졌어요. 저러면 투수들도 공 하나하나에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현역 때는 간혹 논란의 대상이 됐다. 거친 플레이와 태도로 빌런역을 자처하기도 했다. 오식빵, 우리혐 같은 달갑지 않은 별명도 붙었다. 그러다가 ‘오열사’라는 칭호를 얻었다. 도쿄돔에서의 퍼포먼스 덕이다. 당시 이런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오재원이 우리 편일 때 이런 기분이구나.’

이제 그는 남의 편이 아니다. 모든 시청자의 편이 됐다. 멋진 패션 모델, 그리고 해박한 해설자. ‘오재원 버전2’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