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애플의 재직자 70%를 가입시킨 이 기업의 기발한 아이디어
전 세계 700만 직장인의 온라인 플랫폼, 오프라인까지 접수한 사연은?
전 세계 700만의 직장인 서비스 블라인드가 올해로 10살이 됐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되어 IT 업계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제는 미국의 아마존·애플 등 유명 기업의 재직자 70% 이상이 블라인드의 가입자가 됐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위상은 그 이상이다. 대기업 기준 재직자 80%가 플랫폼에 가입했다. 압도적으로 성장함과 동시에 직장인 사회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 하나의 작은 목소리는 나비 효과가 되어 기업 문화를 바꿨고, 구성원이 곧 조직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주체라는 인식 변화의 한가운데 블라인드가 있었다.
이런 대규모의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이 만들어지기까지 블라인드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당신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습니다(Your voice matters)’. 블라인드가 꾸준히 추구하던 비전을 이제는 오프라인으로 전파하기 시작했다. 블라인드의 굿즈팀 ‘필크(Puilq)’의 유지희 사업 총괄을 만나 블라인드가 오프라인에서 그려가고자 하는 미래를 들어봤다.
“중요한 것은 우리부터 실천하는 것”
구성원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회사, 팀블라인드
Q.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전,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블라인드 굿즈 팀 필크(Puilq)의 사업 총괄 유지희입니다. 금융권에서 3년, 티몬에서 8년 7개월간 티켓 및 배송 서비스 운영을 담당했습니다. 당시 사업이 확장되어 운영 정책 기획 실장으로 근무하면서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었는데요. 우연히 제안받은 좋은 기회에 운명처럼 이끌려 지금의 블라인드에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Q. 왜 블라인드에 합류하셨는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아도 될까요?
블라인드에 합류하기 전 티몬에서 문성욱 대표와 같은 프로젝트를 담당했습니다. 티몬이 지역 쿠폰 사업에서 전국 배송 서비스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던 프로젝트에 오픈 멤버로 있었는데요. 당시 문성욱 대표는 그 프로젝트의 배송 어드민 시스템을 만든 PM이었죠. 물류, 운영, CS 등 시스템을 통째로 바꿔야 하는 전사적 과제였기에 하루하루 고군분투 해야했지만, 결국에는 회사의 주 사업 모델을 전국 배송으로 바꿀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어요.
프로젝트가 잘 되고 나서 멤버들끼리 ‘그래서 다음엔 뭐할거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문성욱 대표가 ‘나는 목소리로 세상을 바꾸는 서비스를 만들 거다’라는 거예요. 처음에 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어요. 취지는 너무 좋았지만, 가능할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당시 모든 사람이 말렸으니 저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 거예요.
그런데 그 무모해 보이는 일이 차츰차츰 되어가더라고요. 한때 옆자리 동료이자 나와 같은 직장인이었던 사람이 자신의 꿈을 현실로 이뤄가는 걸 보면서, 제 마음 깊은 곳에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열망이 자라났던 것 같아요.
Q. 꿈꿔왔던 회사에 입사하셔서 기쁘셨을 것 같은데요. 입사 후에 결정을 후회한 적은 없나요?
그동안 쌓아왔던 경험을 블라인드에서 잘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 뿌듯했죠. 하지만 경험 발휘보다 좋았던 것은 블라인드만의 수평적인 조직 문화였어요. 필크 팀은 목소리의 가치를 전하는 게 업인 사람들인데, 정작 우리 회사가 구성원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조직이라면 밖에 나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주 부끄러웠을 것 같아요. 그러나 감사하게도 단 한 번도 그런 마음을 느끼지 않게 해준 회사입니다.
팀블라인드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문성욱 대표를 포함한 리더십의 의지가 중요했어요. 블라인드의 리더십은 ‘당신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습니다(Your voice matters)’라는 블라인드의 가치를 ‘우리부터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의에 가까운 진심이 있음을 느꼈어요.
실제로 저희 내부에서 블라인드로 1:1 Q&A를 진행합니다. 회사 내부에서도 항상 표현의 자유와 윤리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설령 잘못된 일이 생겨도 회사가 투명하게 처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구성원 모두에게 있음을 느낍니다. 다니면 다닐수록 회사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졌어요.
가치관을 담아낸 굿즈 사업은 ‘새로운 도전’
“이제는 온라인을 넘어 목소리를 내고 싶어요”
Q. 블라인드의 현재 근황은 어떤가요?
전 세계 700만 가입자가 있고, 한국 직장인 절반 이상이 쓰는 서비스에요. 최근에 메타, 트위터 등에서 대규모 해고 사태가 일어나고 있고, 코로나 이후 고용 상황도 급변하고 있는데요. 미국 본사의 경우 중부, 동부 지역과 같은 보수적인 업계로 확장해서 IT 업계 외에 다른 분야 기업에서도 알아주실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하고 있어요. 지금은 미국에서 확장이 우선이고, 추후 미국 전역에서 한국만큼의 지배적인 플랫폼이 된다면 영국이나 캐나다처럼 트래픽이 많이 나오는 지역으로 확장할 계획입니다.
사업 확장을 넘어 블라인드의 궁극적 목표는 하나예요. 바로 구성원 목소리로 만들어가는 건강한 기업 문화입니다. 블라인드는 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을 세 단계로 보고 있어요. 먼저 구성원이 자신의 이야기를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하고요. 회사는 구성원 이야기를 왜곡 없이 들을 수 있어야 하죠. 그래야만 저희의 궁극적 목표, 건강한 변화가 가능해진다고 믿어요.
10년 동안 저희에게 가장 어려웠던 숙제는 특히 첫 번째 단계였습니다. ‘나 하나 이야기해서 뭐가 달라지겠어’라는 무력감과 싸워야 했거든요.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블라인드라는 플랫폼을 믿고 자신의 이야기를 용기 있게 꺼내 주신 많은 직장인 분이 계셨어요. 그랬기에 블라인드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거고요. 이제 다음 과제에 집중하고 있어요.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기업 의사결정자들이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Q.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으로도 엄청난 성장을 이뤘는데, 갑자기 굿즈 출시 사업을 하시게 된 계기를 여쭤보고 싶어요.
블라인드는 전 세계 국가 중 한국에서 최초로 서비스를 오픈했는데요. 한국 직장인 사회에서 블라인드의 비전 '목소리로 여는 건강한 기업문화'가 확산되는 것을 목표로 했어요. 목표를 이룰 수 있다면 채널이 온라인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블라인드의 가치를 오프라인에서 직접적으로 전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블라인드의 꿈에 한 발짝 가까워지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사전 출시 첫날 전량 매진… 수익은 직장인들에게 환원
“어차피 쓰는 치약·칫솔인데 기부된대서 산다.”
Q. 필크(Puilq)라는 단어가 생소한데요. 어떤 뜻을 담고 있나요? 첫 굿즈를 칫솔과 치약으로 출시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블라인드의 영문명 blind를 거꾸로 뒤집으면 필크(puilq)가 돼요. 우리 직장인들이 오프라인에서도 자기 목소리의 힘을 경험할 수 있다면, 블라인드의 꿈 ‘목소리로 여는 건강한 직장 문화’에 한 발 가까워질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블라인드의 원래 이름을 변형하는 쪽으로 생각했어요.
저희의 핵심 가치인 목소리를 직관적으로 전하는 동시에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무엇일지를 생각했습니다. 직접적인 체험을 주는 것에도 비중을 많이 두었고요. 아무래도 목소리가 직관적으로 ‘입’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깨끗한 입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라’라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려 칫솔과 치약을 판매하기로 했어요. 필크 제품에 ‘Keep it fresh’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있는 것이 그 이유에요. 가치관을 굿즈에 담은 것이라 볼 수 있죠.
Q. 첫 상품으로 솔트레인과 콜라보한 이유가 있나요?
아이템 선정 기준은 두 가지였어요. 직장인이라면 일상에서 누구나 사용하는 물건일 것, 우리의 핵심 가치인 목소리를 직관적으로 전할 수 있을 것. 자연스럽게 후보군의 범위가 좁혀졌죠.
아이템은 범용적이되 브랜드는 프리미엄을 지향했어요. 제가 커머스 업계에서 배운 건 PB 상품의 성패는 결국 가격이 결정한다는 거예요. 그때 배운 대로라면 필크는 시장에서 가장 싼 제품이어야 했지만 저흰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필크는 제품을 넘어 우리 블라인드라는 브랜드의 메시지를 전하는 미디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솔트레인은 단색 배경에 볼드하게 로고가 노출되는 특유의 패키지 디자인으로 유명해졌지만, 제품력이 탁월한 브랜드예요. 한국 소금의 우수성을 전하고 싶어 모인 팀인데, 한국 소금 중에서도 천일염보다 20배 비싼 토판염을 고집합니다. 솔트레인 패키지에 우리 슬로건이 보이면 가독성이 높을 거라는 생각은 있었어요. (웃음) 치약은 시그니처 소재인 토판염을 사용해서 맵지는 않고 깔끔한 사용감을 가졌는데요. 토판염 자체도 천연 갯벌에서 전통 방식으로 생산하는 소금으로, 무기질 함량까지 높아 프리미엄 소금으로 불려요. 제품력이 보장된 상품인 거죠.
Q. 판매는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시장 반응도 궁금해요.
10월 사전 출시를 거쳐 12월 본격적으로 정식 판매를 시작했어요. 가입자분들 반응이 어떨지 가늠되지 않아서 출시 전에 엄청나게 긴장했어요. 그런데 사전 출시 첫날 초도 물량이 다 팔렸다는 거예요. 믿기지 않아서 직접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는데, 보고도 현실감이 없더라고요. 플랫폼 사업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했던 계기가 된 것 같아요. 플랫폼이 사람들의 행동을 만들어간다고 믿었던 제 생각이 완전히 틀린 거죠. 사람들의 욕망과 욕구는 플랫폼 출시 전부터 이미 존재하는 것이고, 플랫폼은 그걸 연결할 뿐인 거라는 사실을 배웠죠.
블라인드에 글도 올라오더라고요. ‘어차피 맨날 쓰는 치약 칫솔인데 애들한테 기부된대서 샀다’. 일찍 용기 낼 걸 후회하기도 했고요. 이제 수요가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더 많은 분께 ‘저희 이런 거 해요’라고 알리는 일만 남았죠.
“수익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블라인드의 영향력”
어려움을 겪는 직장인을 돕는 것이 목표
Q. 구체적으로 어떤 분들에게 기부금이 전달되고 있나요?
필크 프로젝트의 수익은 직장인들에게 기부됩니다. 필크 구매자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경험하려면 기부 과정과 결과를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기부처는 직장인 유가족인데요. 수익금은 가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과 어린이의 학비로 사용되고 있어요.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업무협약(MOU)을 맺어서 수익금을 재단의 ‘꿈 자람 사업’에도 기부하기로 약속했습니다.
Q. 굿즈 사업을 기부성으로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요.
기부는 블라인드가 하는 게 아니라, 저희 가입자 분들이 하는 거예요. 블라인드가 기업 문화를 바꿨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사실 블라인드는 플랫폼일 뿐이고 가입자분들이 하신 거잖아요. 필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는 플랫폼을 만들었을 뿐이고 기부는 가입자들이 하는 거죠.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들이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
모두에게 긍정의 힘이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
Q. 필크(Puilq)의 다음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앞으로도 목소리를 모티브로 한 굿즈를 계속해서 만들어 갈 거예요. 수익은 직장인들을 위해 사용하고요. 유형, 무형에 국한되지 않고. 직장인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있을지를 생각해서 아이템 선정을 준비 중입니다.
Q. 필크(Puilq)의 궁극적 목표도 궁금합니다.
구성원들이 스스로 문화를 변화시켜본 경험을 한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의 문화적 격차는 말할 수 없이 커요. 제품 구매라는 허들이 낮고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체험할 수 있다면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도 두려움을 이겨내기가 수월해질 거라고 믿어요.
Q. 굿즈 사업이 궁극적으로 블라인드에 어떤 영향이 갈까요?
저희는 블라인드를 모르는 사람한테 알리는 것보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블라인드의 가치관을 잘 받아들여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블라인드를 쓰시던 분 중 호기심이 있는 분들이 구매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기부도 되고, 저희의 가치관도 함께 전달할 수 있으니 앱 사용자분들에게 긍정적인 체험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기업의 비전을 달성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