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삶은 뒤 '발골'…약초꾼이 발견한 괴이한 백골
금전 거래, 도축업, 차량 전소…의혹에도 DNA 못찾아 미제로
(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14년 전 오늘. 전북 순창군 팔덕면 월곡리의 한 야산에서 약초를 캐고 있던 50대 약초꾼은 한 구덩이 속에 있는 소, 돼지 등 동물의 뼈 무더기에서 6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백골 시신을 발견했다.
옷가지가 모두 벗겨진 채 손목이 절단된 상태로 있었던 이 괴기한 형태의 백골에는 어떤 기구한 사연이 있는 것일까?
병원 간 남편 실종 함께했던 동서 의심스러운 정황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09년 7월 5일. 전북 임실군에 살고 있던 A 씨는 약속을 마치고 술에 많이 취한 듯 심하게 비틀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이 모습을 본 아내 C 씨(60대)는 "또 무슨 술을 그렇게 마시고 왔냐"며 잔소리를 했지만, 이상하게도 남편에게서 술 냄새는 나지 않았다.
다시 한번 C 씨는 어디에 다녀온 거냐고 캐물었지만, A 씨는 대답하지 못했고, 이내 마당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정신을 잃고 말았다.
놀란 C 씨는 A 씨에게 달려가서 흔들어 깨웠지만, 잠시 후 일어난 A 씨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소와 달리 어눌해진 남편의 모습에 덜컥 겁이 났던 C 씨는 서둘러 병원에 데려가려 했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남편을 여성 혼자 힘으로 병원으로 데려가는 것은 무리였다.
때마침 A 씨의 동서 B 씨(50대)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B 씨는 상황을 듣고는 자신이 A 씨를 전주에 있는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 시간 뒤 병원에 함께 갔던 B 씨는 혼자 귀가했다. 이에 C 씨가 "왜 혼자 온 거냐?"고 묻자, B 씨는 "형님이 갑자기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멀쩡해지더니 진료를 받지 않겠다며 내게 돈 20만 원을 빌린 뒤, 차에서 내려 어딘가 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것이 C 씨가 들을 수 있었던 남편의 마지막 행적이었다.
제부의 언행에 미심쩍은 느낌도 들었지만 이내 남편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의심을 거두고 밤늦게 잠이 든 C 씨는 결국 새벽까지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이튿날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방문했다는 병원에는 기록 없어, 용의자 차량은 원인 모를 화재로 전소
실종신고를 받은 경찰은 마지막까지 A 씨와 함께 있던 인물인 B 씨에게 마지막 목격장소에 대해 물었고, B 씨는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한 버스 정류장 근처에 내려달라고 해서 내려줬다"고 진술했다.
이후 경찰은 해당 장소를 찾아가 목격자 등을 탐문했지만, 평소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있어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또 A 씨와 B 씨가 함께 방문했다는 병원에는 진료나 접수 기록이 없었다. 경찰이 이에 대해 추궁하자 B 씨는 "병원에는 혼자만 들어가서 잘 모르겠다"라고 상황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부터 경찰은 B 씨가 A 씨의 실종과 어떠한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품게 된다.
B 씨에 대해 계속해서 조사를 이어가던 경찰은 이 둘 사이에 크고 작은 금전 관계가 오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들은 이로 인한 다툼도 종종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의 조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실종 당일 A 씨가 함께 탑승했던 동서 B 씨의 냉동탑차가 갑작스러운 화재로 완전히 전소되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경찰은 어떠한 증거도 찾지 못했고, A 씨는 실종된 채 1년 넘게 시간이 흘렀다.
약초꾼에 의해 발견된 동물 뼈 무더기…사람 두개골, 등뼈 발견
A 씨가 실종된 지 15개월 뒤, 순창의 한 야산에 약초를 캐려고 올랐던 한 약초꾼은 산 중턱에서 동물 뼛조각이 마구 흩뿌려져 있는 특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당연히 동물 뼈가 들어있는 쓰레기 봉지가 들짐승들에 의해 찢어져 있던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사람의 두개골과 기다란 등뼈로 보이는 백골이 함께 발견됐고, 약초꾼은 침착하게 현장을 잘 보존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백골 사체의 신분이 A 씨였다는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이 신원을 확인하려 했지만, 유골 주변에는 그 사람의 신원을 찾을 수 있는 어떠한 유류품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 시신이 워낙 부패가 많이 진행된 상태였기 때문에 유골에서는 사인도 찾을 수 없었다.
양쪽 손목 없는 사체…"도구 없이 손기술로만 탈골 시킨 범인"
사체의 특징은 양쪽 손목이 없다는 점이었다. 당시 수사원은 범인이 A 씨의 양손과 손톱에 남아있을지도 모를 자기 피부 살점 등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를 없애버렸을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특이점은 손목뼈에는 흉기에 의한 외상이 없었고, 매끄럽게 겉단면이 유지돼 있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이에 경찰은 정교한 작업을 거쳐 사체가 훼손된 것이라고 판단했고, 함께 부검에 참여한 법의학자들은 "누군가 도구를 쓰지 않고 시신을 삶은 뒤 손기술만으로 손목뼈를 탈골시켜 빼낸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범인은 탈골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 뼈와 뼈를 분리를 해본 사람일 가능성이 유력했다. 이에 부합하는 인물은 가축의 도축과 발골에 능통한 도축업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대부분의 단서가 범인으로 지목하는 동서…노름으로 큰 빚
유골이 발견된 지 3개월여의 시간이 흘렀고, 마침내 18개월 전 임실에서 실종된 A 씨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먼저 유골이 발견된 장소가 A 씨가 실종된 지점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점에서 경찰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A 씨를 누군가 순창까지 싣고 가서 유기했다고 판단했지만, A 씨의 시신에는 어떠한 외상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고, 뺑소니 사고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다시 살인에 초점을 맞추고 최초 실종 관련 의심자였던 B 씨에 대해 재조사를 시작한 경찰은, B 씨가 과거 개 도축장을 운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법의학자들의 분석 등을 토대로 B 씨를 더욱 의심할 수밖에 없던 경찰은 실종 당일 A 씨의 거동이 불편했던 이유에 대해 '술에 취한 것이 아닌 도축에 쓰이는 전기충격기에 의한 전기 충격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또 B 씨가 직업 특성상 A 씨의 사체와 함께 묻혀 있었던 소, 돼지 등의 뼈를 구하기 용이했을 것이고, 사람의 팔목 뼈를 탈골 시키는 것도 쉽게 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의심 가는 행적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A 씨의 시신이 발견된 순창 방향 인근 도로의 CCTV에는 B 씨가 타고 다녔던 것과 유사한 차량이 당시 이동 중인 모습도 찍혀있었다.
특히 A 씨의 유골이 발견된 곳은 일제 강점기 때만 사용했던 도로였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만 아는 곳이었다. 즉, 범인은 해당 지역의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었으며, 유력 용의자였던 B 씨는 그 야산이 있는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또 노름에 손을 댔던 B 씨는 손윗동서 A 씨 부부 몰래 그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약 1억 4500만 원에 달하는 빚까지 지고 있었다.
범행 전부 부인하는 동서…DNA 확보 못해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아
모든 정황증거는 A 씨의 동서인 B 씨가 범인이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경찰 역시 금전에 얽힌 살인 사건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B 씨는 자신의 범행을 전부 부인했고, 경찰은 이를 입증할 만한 DNA 등 결정적 증거, 범죄에 이용한 도구 등 어떠한 것도 확보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단서로 사용할 수 있었던 사건 당일 동선이 일치했던 차량에 대한 번호판 식별 역시 당시의 기술력으론 불가능했고, 결국 희생자의 동서인 B 씨를 범인으로 체포하지 못한 채 사건은 현재까지 미제로 남게 됐다.
khj80@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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