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포커스=곽도훈 기자] 11번가가 SK그룹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한때 총 거래액 기준 온라인 쇼핑 1위까지 오르는 영광도 있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면서 추락했다.
적자가 누적돼 희망퇴직을 받는 데다가 IPO(기업 공개) 실패로 5년 전 투자받은 수천억원까지 돌려줘야 하는 처지다. SK그룹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11번가는 2018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시작했다. 기간은 12월 8일까진데, 나이 기준은 만 35세 이상의 5년 차 위의 직원으로 정했다.
11번가 관계자는 “목표치는 없다. 자발적인 신청자만 대상”이라고 했지만, 유통 업계 타 기업들과는 달리 나이 기준을 낮게 잡은 건 그만큼 회사 상황이 어렵다는 분석이다. GS리테일의 경우 77년생 이상 장기 근속자, 롯데홈쇼핑은 만 45세 이상에게 희망퇴직을 받는다.
보상 규모도 지나치게 작다. 11번가는 희망퇴직자를 대상으로 4개월분 급여를 지원한다. 앞서 말한 두 기업이 각각 18개월 치 급여와 학자금지원, 2년 치 연봉과 재취업 지원금, 자녀교육 지원금을 지원하는 것과 대조된다.
한 11번가 직원은 커뮤니티에 “35살에 4개월 치 급여 받고 나가라니..황당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옥션, G마켓보다 늦은 2008년 설립된 11번가는 2017년 기준 총 거래액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지속된 출혈 경쟁으로 인해 적자는 쌓여갔다. 경쟁사들에 비해 특별한 점도 없다고 평가 받으며 점점 쿠팡, 네이버 쇼핑 등에게 밀려났다.
2020년 11번가의 영업손실은 98억원, 2021년 694억원, 2022년 1515억원으로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올해 3분기까지는 91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사면초가’ SK스퀘어..방법이 없다
모기업이자 SK 그룹 중간 지주사인 SK스퀘어의 상황도 좋지 않다. 주력 기업인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시장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15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스퀘어는 3분기 연결 기준 영업손실 5607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863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이후 매 분기 적자 행진이다.
위기를 타개하려는 상황에 11번가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SK스퀘어는 최소 5500억원의 현금을 투입하거나, 1조원의 자산을 날려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2018년 SK 플래닛(당시 운영사)은 나일홀딩스컨소시엄에 5000억원을 투자받으며 18.18%의 지분을 넘긴 적이 있다.
계약은 ‘드래그 앤드 콜’ 방식으로 체결했는데, 2023년 9월 30일까지 11번가의 IPO(기업공개)를 성공하지 못하면 SK가 지분을 다시 사갈 수 있는 콜 옵션이 있다.
문제는 2018년 당시 기업가치인 2조7500억원으로 사와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11번가의 가치는 5년 전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얼마 전 큐텐과 매각 협상을 벌였을 때 1조원 이상의 가치는 인정받지 못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SK스퀘어는 현금이 많다. 3분기 기준 현금·현금성자산은 총 1조3,000억원이다. 5,500억원 정도는 충분히 지급하고 지분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가져와도 문제다. 11번가는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어 실적이 최악이다. 동종 업계에 비해 특별한 경쟁력이 없어 성장 동력이나 돌파구도 보이지 않는다.
또 11번가를 계속 운영해 나가기 위해서는 자금이 계속 수혈돼야 하는 상황인데, 지분 인수 자금을 포함해 1조원 이상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 상황이 어려워 내년 유상증자 얘기까지 나오는 터에 좋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포기하자니 1조원 가량의 주식 자산이 날아갈 가능성도 있다. 현재 SK스퀘어가 보유 중인 11번가 지분은 80.2퍼센트로, 가치는 1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만약 SK스퀘어가 콜 옵션을 포기한다면 FI(재무적 투자자)들은 SK가 보유 중인 주식 전부를 강제로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투자금 회수를 위한 조치인데, 컨소시엄 측이 약 5000억원의 금액에 11번가를 매각해 버리면 SK 측은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자회사를 잃게 된다.
나일홀딩스컨소시엄이 무리해서 팔 리가 없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모르는 일이다.
컨소시엄에는 국민연금이 포함돼 있다. 3500억원의 자금을 투입했는데, 별다른 이득을 보지 못한 것은 크나큰 실책이다. 이런 상황에서 드래그얼롱을 발동하지 않는 것은 정경유착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이미 비슷한 사례로 검찰 조사까지 진행되고 있다. 삼성그룹이 이재용 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은 최대 2451억원의 손실을 입었지만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고, 검찰은 이를 국민연금 의결권을 얻기 위해 삼성 측이 불법을 저질렀다고 보고 있다.
kwakd@e-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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