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신이 완성한 ‘인간’ 베토벤···더 깊어진 뮤지컬 ‘베토벤’
로맨스 걷어내고 베토벤의 예술적 여정 초점
박효신, 깊은 음색과 절제된 연기로
청력 잃은 고독한 예술가 내면 그려내

“환희여, 아름다운 신들의 불꽃이여.”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교향곡 ‘합창’. 그러나 이 불멸의 선율은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는 한 작곡가의 절망 속에서 탄생했다. 뮤지컬 <베토벤>은 그 역설적인 삶을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2023년 초연 이후 3년 만에 대대적인 개작을 거쳐 다시 관객과 만난다.
재연으로 돌아온 <베토벤>은 불세출 천재의 성공담보다 청력을 잃고도 끝내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던 루드비히 반 베토벤(1770~1827)의 고독과 집념에 집중한다. 가장 큰 변화는 서사다. 초연이 베토벤과 그의 지지자 안토니 브렌타노의 로맨스에 무게를 뒀다면, 이번 시즌은 절망 속에서도 교향곡을 완성해가는 예술가의 고독한 여정을 전면에 내세웠다.
초연에 이어 연출을 맡은 길 메머트는 “초연을 기반으로 작품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고자 했다”며 “한국 관객들이 보다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인물의 감정선과 관계를 재정비하는 데 주력했다”고 밝혔다.


1810년 오스트리아 빈, 유럽 최고의 작곡가였지만 청력을 잃어가는 베토벤은 세상과 단절된 채 오직 음악에만 매달린다. 들리지 않는 세상에서 그는 자신의 마지막 사명처럼 새로운 교향곡을 완성해 간다.
실제 베토벤의 삶은 그의 음악만큼이나 비극적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았고 젊은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서른 살 무렵부터 청력을 잃기 시작했고 끝내 거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게 됐다. 사랑도 번번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불멸의 연인에게’라고 쓰인 편지를 남겼는데 누구를 향한 편지였는지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절망 속에서 그는 교향곡 ‘운명’, ‘전원’, ‘합창’ 같은 걸작을 남겼다.

박효신과 홍광호라는 뮤지컬계 대표 흥행 배우의 더블 캐스팅으로 개막 전부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박효신은 특유의 깊은 음색과 절제된 감성, 위태로운 분위기로 절망에 빠진 천재 음악가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박효신은 감정을 격렬하게 분출하기보다 오래 눌러 담는다.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책임감, 가까운 이들을 잃은 상실감, 귀족 사회의 조롱 속에서 청력마저 잃어가는 인간 베토벤의 절망이 과장된 연기 대신 침묵과 여백 속에서 차곡차곡 쌓인다.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배우를 넘어 인물의 삶을 무대 위에서 살아낸다는 인상을 남긴다.
음악도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비창’ ‘월광’ 등 베토벤의 대표 교향곡과 피아노 소나타가 뮤지컬 넘버로 재해석돼 독특한 감흥을 선사한다. 총 51곡에 달하는 넘버 중 절반 가까이를 새롭게 손질해 서사에 녹여냈는데, 원곡이 어떻게 편곡됐는지 비교하며 감상하는 것도 극을 즐기는 방법이다.

아쉬움도 있다. 사건을 극적으로 전개하기보다 베토벤의 심리를 따라가는 방식이어서 긴장감은 다소 약하다. 작품 전반을 감도는 우울하고 무거운 정서 역시 관객에 따라서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 베토벤의 삶을 떠올리면 이 무거운 정조는 오히려 작품의 주제의식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공연이 끝난 뒤,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것은 화려한 무대가 아니다. 커튼콜에서조차 홀로 등장해 홀연히 사라지는 베토벤의 뒷모습,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세상에서 끝내 ‘환희’를 작곡해낸 한 예술가의 지독한 고독이다. 8월 1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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