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의 경제 더하기]
흔들리는 안전자산 지위: 미 국채 금리 급등 충격
트럼프발 관세전쟁은 국제금융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최근 미국 국채가격의 급락(금리 급등)은 달러 자산의 안전자산 지위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작년 하반기부터 가파르게 상승해, 한때 연 4.9%를 돌파하며 2007년 금융위기 직전 이후 16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불황 시 투자자자금 피난처로 통하던 미 국채에서 투자자들이 대거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자산에서 매도 공황이 나타나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트럼프의 관세전쟁으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위험을 우려해 미 국채를 외면하고 있다고 지했다. 미 국채는 전통적으로 글로벌 안전자산 1순위로 여겨졌지만, 무역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맞물려 연준(Fed)의 금리인하 여력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매력도가 떨어진 것이다.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관세 보복으로 미 국채를 던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왔다. 세계 금융의 최종 보루로 통하던 달러 자산이 이런 의심을 받는 것 자체가 국제경제 질서 재편의 신호탄이 오른 것으로 여겨진다.

미 국채 금리 상승의 구조적 배경: 외국 보유국의 매도와 달러 환류
미 국채 금리 상승의 한 축에는 미 국채 최대 보유국들의 미국채 보유 전략의 변화가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과 중국 등 무역흑자국들은 달러 교역흑자로 벌어들인 자금을 다시 미 국채 등에 투자하며 미국의 적자를 메워주는 '달러 환류'(recycling) 구조가 이어져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러한 국제 자금순환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
우선 일본은 초장기 저금리 기조를 서서히 전환하며 자국 투자수요가 늘자, 해외 자산인 미 국채 비중을 일부 줄이는 움직임을 보였다. 실제로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약 1조2천700억 달러로 세계 최대 수준이지만, 일본 재무상은 “외환보유는 필요시 환율개입 대비 목적일 뿐 협상 수단이 아니다”라며 보유 국채를 함부로 다루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지난해 일본 투자자들이 보유한 미 국채 잔고는 미국 금리 상승에 따라 크게 감소했고, 올해 들어 일부 회복세를 보이긴 했으나 이전과 같은 적극적 매입 추세는 약화된 상태다. 중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미중 무역갈등과 탈달러화 기조 속에서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액은 한때 1조3천억 달러를 넘었으나 현재 8천억 달러 수준까지 줄었다.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으로서는 미 국채 투자를 축소하는 한편 위안화 국제화 등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도 미 국채에 대한 태도가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 관세 부과에 반발하면서 WTO 제소 등 다자주의적 대응을 고려하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 미국산 제품에 상응관세로 응수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다만 EU의 경우 미국 국채를 무기화하는 극단책보다는 외교 채널과 협상을 통한 해결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미국 채권시장 불안은 해외 중앙은행과 투자자들의 수요 약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미국으로서는 외국 자본의 원활한 유입이 예전 같지 않은 지금, 국채시장 안정과 달러 신뢰를 지키기 위한 섬세한 관리가 절실한 상황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공세에 대해 중국과 EU 등 주요 교역 상대국도 다양한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
우선 중국은 이미 미국산 상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등 맞불을 놓고 있으며, 필요시 미 국채 보유를 무기화하는 극단적 옵션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언급했듯 중국은 여전히 막대한 규모의 미국 채권을 보유하고 있어, 이를 시장에 일시에 매도할 경우 미국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중국 정부가 관세 보복으로 미 국채를 덤핑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미국 채권시장에 나돌았고 트럼프 행정부도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중국 입장에서도 미 국채 매각은 자신들의 자산가치 하락을 초래할 수 있는 양날의 칼이므로 섣불리 사용하기보다는 협상 지렛대로 간접 거론할 가능성이 크다. 대신 중국이 현실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효과적인 보복 수단으로 희토류 수출 통제다. 중국은 전세계 희토류 생산의 70%가량을 담당하고, 정제 능력은 90%에 달하는 절대 우위가 있다. 2010년 일본과의 분쟁 때도 중국은 희토류 수출을 막아 상대를 압박한 전례가 있다. 첨단기술 산업에 필수적인 희토류 공급을 무기로 사용한다면(주- 4월 15일 중국이 희토류 수출통제를 발표했다.) 미국과 서방 산업계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어, 중국이 달러 자산 대신 이런 실물자원 카드로 맞설 수도 있다.
EU의 반응도 주목할 만하다. 유럽연합은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 관세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면서, WTO 제소와 유럽산에 대한 미국 관세 철회 압박 등 외교적 대응을 우선하고 있다. 그러나 사태가 악화될 경우 EU 역시 맞대응 관세 부과나 미국산 제품 보이콧 등 단호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
유럽은 미국과 동맹이지만, 무역 이슈에서는 자국 이익을 지키기 위해 중국 등과 공조할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U는 기본적으로 현 국제통화 질서 안정을 중시하기 때문에 달러나 미국 자산을 흔드는 데 신중할 것이지만 트럼프의 관세폭탄으로 미국을 믿을 수 없다며 EU 자체적으로 군사력을 포함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결국 중국과 EU 모두 정면 충돌보다는 선택적 대응을 통해 미국의 관세 공세에 맞서되, 동시에 미국의 약한 고리를 지렛대로 활용하는 전략을 취할 것이다. 이는 미국으로 하여금 관세 압박의 한계를 깨닫게 함과 동시에,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 의도다.
드러나는 한계: 트럼프 관세 전략의 약점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은 분명 강력해 보이지만, 그 한계 역시 분명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상대국들이 미국의 약점을 간파하고 있어, 트럼프의 블러핑에 쉽게 굴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가장 큰 취약점은 막대한 대외부채와 재정·무역적자다. 미국은 달러 패권을 유지하는 대가로 거대한 적자를 감수해왔고, 이는 타국에 금융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동시에 약점으로 노출되는 양면성이 있다. 중국을 비롯한 상대국들은 미국 경제의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가 관세를 치켜들고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더라도 섣불리 양보하지 않고 맞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상호관세를 부과한 후 시장 흐름이 이것을 보여준다. 트럼프가 관세를 90일 유예한 이유는 S&P, Nasdaq 등 주가 급락도 있지만 미 국채금리의 급등이다. 미 국채 금리의 급등은 일부 외국의 국채 보유국이 달러를 안전자산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신호임과 동시에 미국 유권자들의 일상 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시그널이다. 즉 부동산 모기지 등 기준금리의 상승을 동반하여 소비를 위축시키고 유권자가 가장 싫어하는 인플레를 가속화시킨다.
바이든의 민주당이 트럼프에게 진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좋은 경제지표에도 불구하고 인플레로 인해 유권자가 등을 돌린 것이다. 많은 유권자들의 노후와 관련된 401k 연금의 기대소득 감소 등 미래소득의 감소와 현재의 인플레가 겹친 것이다. 상호관세는 인플레를 수반하여 실물경제도 위축시킬 수 밖에 없어 실물, 금융, 부동산 등 모든 측면의 부작용이 덮친다. 트럼프가 상호관세를 계속 밀고 나가겠다고 하다가 갑자기 관세를 유예하면서 국채금리를 언급한 이유다.
미국 국채 수익률은 또 미국의 시중금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장기주택담보대출(mortgage) 금리, 자동차·기업 대출 등 전반적인 차입 비용이 치솟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 트럼프 전략의 약점이 드러난 것이다. 상호관세 90일 유예를 발표한 후 트럼프가 "국채시장은 매우 까다롭다"면서 "어젯밤에 사람들이 좀 불안한 모습을 봤다"고 약한 모습을 보인 이유다.
트럼프 협상기술의 핵심은 예상치 못한 과감한 요구(자기에도 피해가 있는 요구)를 하고 서로 양보를 이끌어 내는 것인데, 이 기술이 성공하려면 자신의 피해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대범함을 보여야 한다. 이른바 치킨게임에서 먼저 피하지 않고 버티는 자세가 요구된다. 문제는 트럼프가 자신의 약점을 스스로 노출했다는 점이다. 이 약점을 더 커지게 한 배경은 미국이 세계경제에 차지하는 위상이 저하되고 있다는 점과 세계의 가치사슬에서 중국을 단번에 뺄 수 없다는 점이다.

변화하는 중국: 낮아지는 대외의존도와 높아지는 경제 영향력
트럼프 관세공세의 주요 표적인 중국은 과거에 비해 대미 무역의존도가 상당히 낮아졌다. 이는 중국이 받는 타격을 줄여주고 대응 여력을 높여주는 요인이다. 중국 경제의 무역 지표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 수출 의존도: 중국의 연간 수출액은 2006년에는 GDP 대비 36%에 달했으나, 2023년에는 약 20% 수준으로 낮아졌다. 중국 경제에서 내수와 서비스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수출 비중은 줄어든 것이다.
● 세계 제조업 비중: 2004년 중국 제조업은 전세계 생산의 9%를 차지했는데, 2023년에는 29%로 증가하여 세계 1위 제조업 국가가 되었다. 중국의 제조업 부가가치는 미·일·독·인도 4개국을 합친 것보다도 크며, 미국(약 17%)을 크게 앞서고 있다.
● 희토류 등 자원 장악력: 중국은 2023년 기준 전세계 희토류 비중의 70%를 생산하며, 정련·가공 능력은 90%에 달한다. 태양광 폴리실리콘, 리튬·코발트 제련 등 신산업 핵심자재 분야에서도 중국의 점유율은 60~80%에 달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이 지표 변화는 중국이 더 이상 20여 년 전처럼 “세계의 공장” 역할만 하는 수출 주도 경제가 아니며, 내수시장 규모와 기술력, 자원 통제력 면에서 초대국형 경제로 부상했음을 의미한다.
미국이 관세를 통해 중국을 압박했던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현재 중국 경제는 양적·질적으로 대폭 성장하여 충격 흡수 능력이 훨씬 커졌다. 중국 정부도 미중 무역분쟁에 대비해 수출시장 다변화와 첨단 제조 자립도 제고, 거대한 내수 소비 진작 디커플링(decoupling) 전략을 추진해왔다. 그 결과 대미 수출 비중이 감소하고, ASEAN이나 아프리카, 중남미 등 신흥시장으로의 교역을 확대하면서 미국 의존도를 낮추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 등을 통해 중국 중심의 무역·금융권을 육성함으로써, 미국 중심 글로벌 공급망에 대응하고 있다.
중국의 이런 변화는 관세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의 관세 압박에 맞서 중국이 장기전으로 갈 수 있는 버팀목인 것이다. 특히 핵심 자원인 희토류를 비롯한 전략물자 공급망에서 중국이 쥐고 있는 카드들은 유사시 미국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어, 중국의 협상력을 높여주는 요소다.
이에 반해 미국은 반도체 등 일부 첨단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고는 있으나, 물량 면에서 중국 경제를 고립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있다. 내수 14억 명의 시장을 가진 중국이 분열 없이 성장이 지속된다면, 관세를 통한 외부 압박만으로 중국의 정책 변경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③편으로 이어짐
※ 이용우는 제21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주로 정무위원회와 연금개혁특위 등에서 기업의 지배구조, 대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정거래 이슈 관련 입법 활동을 많이 했다. 아울러 기후위기 등 대전환의 시대에 주목하여야 하는 ESG 제도 정립에 대해 21대 국회에서 최초로 문제제기하고 제도화하기 위한 활동을 하였다. 국회의원 전에는 현대그룹, 한국투자금융지주, 한국투자신탁운용 총괄CIO,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 공동대표 등을 지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동대학원 석박사 학위를 보유하고 있고, SAIS(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 Johns Hopkins University Visiting Scholar(방문학자)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