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 새 들통난 이기흥 체육회장 위증…‘제 살 깎아먹는’ 리더십

[김창금의 무회전 킥]
24일 문체위서 녹취록 나오자 인정
‘체육 대통령’ 행보 내부 비판 실종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이 24일 국회 문체위에서 박정하 의원의 질의를 듣고 있다. 전주MBC 유튜브 갈무리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의 ‘언어’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그동안 거침없는 입(막말)이 문제가 됐다면, 이번엔 언어의 진실성에서 허점을 드러냈다. 대한체육회 회장의 말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이기흥 회장은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질의에서 박정하 의원의 질문을 받았다. 박 의원은 이날 아침자 조간신문의 내용을 근거로, 전날 강원도 체육인들을 만나 문체부를 “괴물” “정치집단”이라고 표현했는지 물었다. 또 강원 양구 스포츠재단을 둘러싼 문제로 도지사와 도의장에게 “경고를 했다”고 했는데, 그것이 맞느냐고 질문했다. 이기흥 회장은 그런 적이 없으며 보도의 내용이 잘못됐다는 식으로 답했다.

오후에 상황이 바뀌었다. 박정하 의원은 전날 강원체육회 순회 간담회에서 이기흥 회장이 했던 육성 발언 녹음 자료를 공개했고, 이기흥 회장의 거짓말은 생방송을 통해 그대로 전달됐다. 문체위 위원장의 중재로 이기흥 회장은 “진심으로 사과드리겠다”며 궁색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허위 증언을 하고, 반나절도 안 돼 이를 다시 뒤집는 그의 얼굴색이나 목소리 톤에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

24일 아침 강원도민일보 스포츠면 톱 기사. 이기흥 회장은 이 기사의 내용을 부정했다가 녹취록이 나오자 사과했다. 강원도민일보 지면 갈무리

이기흥 회장은 이날 문체위 질의에서 정몽규 축구협회장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표적에서 벗어나 있었다. 질문을 받을 때는, 정몽규 회장의 눌변과 달리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하지만 신뢰를 잃어버린 그의 말이 사람들의 가슴에 박힐 것 같지는 않았다.

이기흥 회장은 지난해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U대회) 조직위가 사무총장을 임명할 때도 아전인수식으로 말했다. 당시 명예를 훼손했다며 사무총장을 “형사소추”하겠다고 말했고, “합의를 번복하는 문체부”라는 표현도 썼다. 하지만 형사소추는 민간인이 할 수 없고, 합의는 “협의”를 대체해 쓴 것이다. 문체부를 두고 ‘관료 카르텔’이라고 공격하거나, 험담도 예사롭지 않게 한다. 2024 파리올림픽 선수단의 공항 해단식 행사를 몰랐다고 한 것도 지나치다.

박정하 의원이 반나절 만에 위증으로 드러난 이기흥 회장의 녹취록을 보여주고 있다. 전주MBC 유튜브 갈무리

체육인이나 대중을 상대로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날 문체위 현안질의에서 이기흥 회장을 두고 ‘체육 대통령’이라는 지적이 나온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기흥 회장은 자기가 하면 모든 것이 옳고, 당연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거짓말이 들통나도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 방증한다. 더욱이 체육회 내부에서 이기흥 회장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들을 수가 없다.

이기흥 회장은 체육회장 3선 도전을 꿈꾸고 있다. 그동안 현장 목소리를 듣고, 정책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구실로 전국의 지방 체육회를 여러 차례 순회했다. 체육회장의 기득권을 최대치로 활용한 것이다.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의 3선 출마 자격 심사만 통과한다면 그는 선거 국면에서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상급기관인 문체부는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의 심의 자체를 ‘셀프 추천’이라며 부정시하고 있다. 내년 1월 선거 결과가 나오더라도 최종 승인권자로서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 과격한 말로 문체부와 감정 대립의 골을 깊이 파버린 이기흥 회장의 자업자득이다.

이기흥 회장은 문체위원들을 향해 “앞으로는 언행에 철저히 주의를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진정성, 정당성을 상실한 그의 말들은 품격과 리더십의 상처만 보여줄 뿐이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